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1)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그 여행의 시작.

by 쏘냐 정

"그런데 너는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 거야?"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우리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동거. 그곳은 모스크바 외곽의 어느 병원이었다.


면회조차 금지된 어느 병원의 병실. 그곳에 온 지 5일. 나는 구석 자리 침대의 먼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러시아어가 서툰 조그만 동양 여자애. 나는 어느 날 새벽 갑자기 그곳에 던져졌다. 쓰고 보니 정말이지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던. 져. 졌. 다.




노어노문학을 전공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노어노문학 전공자가 아닌 애매한 위치. 덕분에 모스크바 국립대학 교환학생 신청은 바로 거절당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지 모집 마지막 날 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한 자리가 남아 타과생이라도 보내기로 했으니 마음이 있다면 빨리 와서 지원서를 쓰라고. 바로 대상자가 확정되어야 하는 급박한 일정. 덕분에 나는 어학 테스트도 없이 선발되었다. (원래 러시아 교환학생 지원자는 어학 면접 후 선발한다.) 아무도 나의 노어 실력을 몰랐기에 가능했던 모스크바 행.


한 학기의 교환학생 생활은 모든 시간이 도전이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측은 내가 교환학생으로 등장하자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뭐지. 러시아어라고는 인사밖에 못하는 이 학생을 우리더러 어쩌라고.' 그 학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나 같은 노어 무식자를 위한 수업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첫날 수업이 끝나자 그들은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도저히 같은 교실에서 수업이 불가한 나를 위해. 그들은 나에게 며칠 기숙사에 머물며 연락을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나의 모든 수업을 어학당 기초 클래스로 옮겨주겠다는 것이었다.


"쓰빠씨바 (감사합니다)." 그렇게 나의 한 학기가 시작되었다. 클래스메이트는 알바니아어를 가르치러 러시아에 온 알바니안 친구였다.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는 참 예뻤던 친구. 여전히 유색인종에 대한 테러가 빈번했던 2004년의 러시아에서 백인인 그녀는 알 필요가 없었던 일을 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를 꼭 껴안았던 그녀. 그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나는 그런 거 전혀 몰랐어. 나는 혼자 다녀도 아무렇지 않은데 너는 혼자 다니는 것조차 무서웠겠구나. 앞으로는 나랑 같이 다니자. 우리랑 같이 다니면 너도 괜찮을 거야."


alexander-smagin-MEWRrCmEiGc-unsplash.jpg Photo by Alexander Smagin on Unsplash


참으로 운이 좋았던 그 학기. 알바니아인 강사가 마침 딱 그 학기에 파견되었기에 기초반이 만들어졌고, 덕분에 나는 러시아어 기초를 들으며 학점을 채울 수 있었던 그 학기의 끝.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여행을 계획했다. 페테르부르크로의 여행이었다. 한 달 전부터 루트를 짜고 기차표를 사고. 들뜬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출발하기로 한 날 아침. 갑자기 복통이 시작되더니 급기야는 움직이지 못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의대에 다니던 유학생 친구가 기숙사까지 찾아왔다. 주사와 약까지 다 챙겨 들고 왔기에 곧 낫겠지 기대했는데, 상태를 보더니 친구가 말했다. "앰뷸런스 불러서 병원에 가자." 헉, 병원이라니. 내가 그때까지 들어온 러시아 병원은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전설처럼 유학생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 맹장수술을 해야 하니 개복수술을 하자고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개복을 하더니 "아닌가 보네."하고 닫았다는.... 일단 배부터 열고 본다는 그 무시무시한 러시아 병원. "절대 안가. 무서워."라고 말하는 나를 그는 계속 설득했다. "너 지금 상태면 한국에도 돌아갈 수 없어. 이 상태로는 비행기도 못 타. 여기에서 치료하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몇시간 뒤, 나는 러시아 앰뷸런스에 타고 있었다. 의대생 친구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데리고 갈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 말만 믿고 앰뷸런스에 탔건만 그들에게 요청을 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규정상 우리가 원하는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을. 그들은 나의 증상을 자세히 물었고 가이드에 따라 내가 갈 곳을 결정했다. 당시 나의 증상은 전형적인 위경련과 급성 위염, 장염 증상이었는데 (아마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예상 가능한 그 증상....) 그들이 결정한 내 목적지는 정말이지 그 증상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 하지만 나는 피하고 싶은 그런 곳. 바로 세. 균. 병. 원.이었다. (당시 러시아어로 어떻게 불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걸 해석하면 '세균 병원'이라는 뜻이라고 누군가가 알려주었다.)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입원과 동시에 통보된 '면회 금지' 규정. 그곳이 세균 병원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러시아 병원들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응급실에서 통역을 맡아주었던 의대생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기초 러시아어를 겨우 하는 나는 어두운 병실에 홀로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페테르부르크행 기차를 타는 대신 앰뷸런스를 탔고,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호텔 대신 모스크바 외곽 세균 병원의 병실에 몸을 뉘었다.


*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살짝 끊어가려고요. 러시아어를 못하는 쪼끄만 동양인 여자애의 러시아 세균 병원 입원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됐어? (2): https://brunch.co.kr/@jsrsoda/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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