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4)

이 여행도 계획 중의 하나였을지도 몰라.

by 쏘냐 정

-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1): https://brunch.co.kr/@jsrsoda/55

*이 글은 너는 앞선 세 개의 시리즈 글의 마지막 글이에요. 위의 링크로 가서 먼저 쭉 읽고오시면 더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으실거에요.^^




"괜찮아?" 세균 병원에서 돌아온 기숙사에서 이제 막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들을 만났다. 참 이렇게도 딱 떨어지는 일정이라니. 정확하게 여행 출발 날 나는 입원을 했고 다시 돌아오기로 했던 그 날 퇴원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세균 병원 입원기가 그저 여행기로 느껴졌다.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은 미안해했다. 아파서 입원해 있는 동안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한 것을. 그 시간에 즐겁게 여행한 것을. 하지만 사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시간들이 강렬했기 때문일까. 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페테르부르크 여행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느낌. 그저 그들은 페테르부르크에 다녀왔고 나는 아니었다 정도.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오고 한 학기가 더 지나고 나는 졸업을 했다. 그리고 입사한 회사에서 러시아/ CIS 지역 담당자가 되었다.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의 한 학기 교환학생 이력 덕분이었다. 당시 러시아/ CIS 지역은 꽤나 주목받는 곳이었다. 그 자리를 맡은 나는 신입사원 치고 많은 기대를 받으며 업무를 배워나갔다. 매년 한 번 이상은 담당지역 출장이 잡혔다. 몇 년을 매년 러시아에 갔다. 카자흐스탄도 가고, 우크라이나도 가고, 라트비아도 갔는데, 러시아는 매번 모스크바였다. 페테르부르크를 갈 기회는 그 후에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가끔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벤트가 있기도 했는데 내 출장 일정과 겹친 적은 없었다.


이상했다. "나 페테르부르크를 꼭 한 번 가고 싶어."라고 늘 이야기하면서도 한 번도 페테르 여행을 계획하지도 않았다. 아직 나는 한 번도 페테르부르크를 가보지 못했다. 노어노문학을 부전공했고, 러시아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고, 회사에서는 러시아 담당자였고.... 그렇지만 아직 내가 밟아본 러시아 땅은 모스크바뿐이다.


왜일까. 페트르부르크행은 이상하게 어렵게만 느껴진다. 17년 전 처음 페테르 여행을 준비할 때 많이 설레어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런데 그 후에는 페테르부르크 여행을 상상해봐도 심드렁하기만 하다. 어쩌면 내 무의식이 페테르부르크와 세균 병원을 하나로 인식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더 재밌는 건 언젠가부터 이 세균 병원의 기억이 너무나 의미 있는 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특별한 여행이 있을까. 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아도 세균 병원의 면회 금지 감금 입원을 경험한 사람은 몇 명이나 더 있을까? 덕분에 지금 나는 그 특별한 스토리를 여기에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도 선명히 그려지는 그곳의 풍경은 나만의 것. 거기에서 나는 먼지가 되어 나를 비우는 법을 배웠고, 그런 당황스러운 순간에도 큰일은 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페테르부르크 여행은 소박한 교환학생의 마지막 목표였다. 계획을 세우는 내내 반짝반짝했었다. 그런 여행을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 뒤틀림들도 지나고 보면 점에 지나지 않음 역시 알게 되었다. 이 작은 뒤틀림은 이후 나의 큰 뒤틀림들을 만났을 때 담담한 힘이 되었다.


shashi-ch-CGSm5AmNk4U-unsplash.jpg Photo by Shashi Ch on Unsplash


지금 나는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 이 이야기가 어색한 상황에서 나를 몇 번이나 구원했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은 10이면 10 모두 눈을 반짝이며 들어준다. 그래. 어쩌면 이게 제일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가진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졌다는 것.


덕분에 이제는 알게 되었다. 매끄럽지 않은 것이 때로는 더 빛날 수도 있다는 것을. 매 순간 그저 이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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