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2)

글쎄.. 이것도 긴 여행인가봐....

by 쏘냐 정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1): https://brunch.co.kr/@jsrsoda/55

이 글은 위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혹시 아직 안보셨다면 먼저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을거에요.^^



응급실에서 안내를 맡은 간호사를 따라가는 나도, 이제 집에 가야하는 의대생 친구도, 서로에게 눈을 떼지 못했던 그 깜깜한 응급실 앞. "내가 내일 다시 와서 얘기 잘 해볼께." 친구는 다시 나를 안심시켰다. "알았어." 그렇게 나는 혼자 병원 본관으로 들어섰다.


fabio-santaniello-bruun-8BgmKIuQ-GU-unsplash.jpg Photo by Fabio Santaniello Bruun on Unsplash


간호사는 환자인 나에게 이불과 베개를 안겨주었다. 그러더니 복도 중간쯤에 있는 병실로 들어가 빈 침대 아무데나 누우면 된다고 말했다. 침대는 6개. 그 중 2개가 비어있었다. 나는 제일 구석에 있는 침대를 내 자리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침대까지 가는동안 다시 복통이 시작되었다. 도저히 이불을 펼 수 없는 정도의 통증. 이불펴기를 포기하고 그 침대 위에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누웠다. '창 밖에 해가 뜨면 의사가 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통증을 버티고 버텼다.


버티다보니 어렴풋한 빛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이러다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병원이잖아. 의사나 간호사가 어딘가에 있겠지.' 겨우 몸을 일으켜 복도로 나갔다. 내 기억은 거기까지.

'춥고 딱딱해.' 얼마나 멈추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시작된 기억은 이렇게 이어졌다. 눈만 깜빡깜빡하다가 알게됐다. 그곳은 바닥. 화장실을 가려고 병실을 나서던 또다른 환자가 나를 발견하고 어딘가로 뛰어가는게 보였다. 뒤이어 그녀와 함께 나타난 간호사들. 나를 들어 병실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그들 중 한 명이 내 침대시트를 펴서 깔아주었고 나는 그 위에 누울 수 있었다. 뭔지 모를 주사를 놔주고 약도 먹였다.


그들은 정신차리라며 찬 물을 계속 뿌려댔다. 그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손이라도 씻겠다며 세면대 앞에 서서 보았던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얼굴이 하얗다 못해 투명해진 그 모습. 그날 이후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피부가 비칠 듯 투명하다.'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병실은 깜깜했고 머리카락은 흠뻑 젖어 얼굴에 붙어있었고 그 얼굴은 투명했다. 이런게 귀신같다는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제야 이곳이 병원답다 싶었다. 그대로 잠이 들 수 있었으니까.


다음날 아침 드디어 의사선생님이 왔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다시 난감해졌다. 의사선생님은 러시아어만을 사용했고, 나는 의학용어는 고사하고 중급이상의 러시아어는 알지 못했다. 의사의 입을 열심히 쳐다보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던 그때 들려온 한 마디. "Pregnent"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건너편 침대에 앉아있던 또래의 환자가 배가 불룩한 모습을 흉내내고 있었다. '아, 임신 가능성을 묻는거구나.' "녯, 녯. (No)" 그 병실의 모든 이들이 이 구석 침대자리에 귀를 쫑긋하고 있다는걸 그제서야 눈치챘다. 그렇게 30분 가량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의 환자카드를 쓰고 의사선생님과 대화했다. 진료가 끝나자 적당한 약이 처방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했던 건 당시 그 병원의 식단이었다. 모든 처방이 끝나고 나온 첫 식사. 내 식판에는 버터나 우유가 들어간 듯 보이는 죽과 빵이 놓여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장염 증상에 절대로 먹지 않는 음식. 밀가루와 유제품. 식판을 들고 간호사에게 가서 나에게 배정된 식판이 맞냐 물었다. 그들은 "그걸 왜물어?" 하는 표정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빵순이인 나에게는 반가운 음식들. '에라, 모르겠다. 여긴 병원이고 알아서들 하겠지.' 그런데 그 음식들보다 더 신기한건 그런 음식을 먹는데도 증상이 빠르게 사라졌다는 점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이 얘기를 했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그럼 그때 먹었던 약을 좀 사왔어야지." 아. 정말 그랬어야 했다. 원래부터 위장이 약한 사람. 나는 한번 아프면 한달씩 죽만 먹어야 겨우 낫곤 했다. 이런 나에게 그 약은 정말 마법의 약이나 다르없었는데....


이렇게 세균병원에서의 첫 날이 시작되었다. 나는 새벽 응급실 앞에서의 친구와의 약속을 믿고 있었다. 곧 그 친구가 올테고 의사선생님과 이야기하겠지.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갈거야. 그.런.데. 의사를 만나고 온 친구는 퇴원이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의사의 허가가 나지 않았다는. 의사의 허가가 날 때까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말. (그마저도 면회금지라 전화로 전해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기약없는 세균병원에서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 쓰다보니 점점 더 선명해지는 그때의 기억들. 이 다음날부터의 기억은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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