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쉬킨이라는 고급 레스토랑에 갔었거든.
-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1): https://brunch.co.kr/@jsrsoda/55
-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2): https://brunch.co.kr/@jsrsoda/56
* 이 글은 위의 두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예요. 먼저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은 두려움이 되었다.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던 날 그들은 나에게 병원복을 주며 입고 있던 옷을 달라고 했었다. 어차피 도망갈 생각도 없었지만, 혹시 도망가고 싶다고 해도 입고 갈 옷이 없다는 사실이 왠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옷을 병원에서 보관한다고 한 걸까?' 병실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 그런 생각을 했다.
일단 나는 당장 나갈 수 없다. 며칠이 될지 모르는 병원생활을 준비해야 했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페테르부르크로 떠나고 없는 상황. (그날 나는 기차를 못 탈 거라고 느끼자마자 내 몫의 기차표를 이용할 또 한 명의 친구를 찾았고 친구들은 계획대로 여행을 떠났다. 물론 나는 내 걱정 말고 여행 가라고 말했었고.) 안면이 있는 기숙사의 한국인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내 방에 들어가 속옷과 씻을거리를 좀 챙겨달라고. 그리고 병원으로의 전달은 당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러시아 생활이 오래된 노련한 오빠에게 맡겨졌다.
그리고 그날 나는 병원 복도이니 나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병원 입구에서 뇌물을 주고 슬쩍 병실 앞까지 와주었던 너무나 반가웠던 그 방문. 손엔 만화책 열 권도 함께 들려있었다. 덕분에 하루는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지금의 러시아는 알 수 없지만, 당시의 러시아는 돈이면 다 해결되는 곳이었다. 경찰들도 그저 돈을 뜯기 위해 아무 잘못 없는 길 가는 외국인들을 불러 세우는 그런 곳. 면회 금지 병원에서도 그게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역시 그 오빤 우리와는 다르게 노련했다.)
3일째쯤 되니 긴장이 풀리고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입원한 후 한 명이 더 들어와서 6명이 꽉 찼던 병실에 외국인은 나 하나였다. 같은 병실의 러시아 친구들의 가족이나 친구는 창밖에서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러면 창에 붙어 그들과 통화하거나 창을 열고 큰 소리로 대화하곤 했다. 참 신기한 풍경. 한국 병원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 사실 병원보다는 수용소 같다는 느낌이 들었었는데 폴더폰을 쓰던 시절이라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간 병원이었기에 만화책 열 권을 다 보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없이 누워서 자거나 웅크리고 앉아있거나. 그러다 보니 이러다 미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기라도 쓰자.' 복도에 나가 간호사에게 펜 하나와 종이 몇 장 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얻어온 A4 3장과 볼펜 하나. 하루 종일 쓰기 시작했다. 첫날부터의 이야기. 병실 구조도도 그리고 내 자리도 표시하고. 한정된 종이에 깨알같이 쓰다 보니 그 종이도 꽉 차 버리고 말았다.
'이제 뭐하지?' 구석 자리의 먼지가 되어 병실 안을 관찰만 하던 나에게 병실 안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병실에 들어오고 처음 느껴본 환한 햇살이었다. 진짜 그게 첫 햇살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 기억이 그러할 뿐. 그날의 병실은 유독 환했다.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환자 카드를 쓸 때 도와주었던 친구가 영어와 러시아어를 섞어 질문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 병원에 오기 전날 '푸쉬킨'이라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었거든. 그런데 그다음 날 아침 배가 아프기 시작했어." "진짜? '푸쉬킨'은 진짜 고급 레스토랑이잖아. 우리는 모두 길거리 음식을 먹거나 허름한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탈이 나서 왔는데, 너는 왜 그런 고급 레스토랑 음식을 먹고 탈이 났지?"
"하하, 글쎄. 그러게 말이야... 왜 그랬을까?" 나에게 묻기 전에 그들은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빠른 말로 이미 대화를 끝낸 모양이었다. 그리고 '푸쉬킨'을 다녀와서 여기에 오게 됐다는 나의 말에 그들은 또 한참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푸쉬킨은 모스크바의 대표적인 고급 레스토랑이다. 누구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접대하기도 했다는 그런 곳.
나 역시 그곳에 간 것은 딱 한 번이었다. 학생이 가기엔 비싼 곳이라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얻어먹으러 간 자리. 정말 입에 살살 녹는 음식을 신나게 먹고 왔는데 다음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아마 음식 탓은 아니었을 테지. 교환학생 생활 내내 길거리 음식이나 기숙사 음식만 먹다가 첨으로 먹는 고급 레스토랑 음식에 흥분한 내가 과식한 게 문제. 원래 약한 내 위장이 그걸 소화시킬 수 없었던 것.
만약 내가 또 러시아에 간다면. 출장이 아닌 여행으로 가서 어디든 내 맘대로 갈 수 있다면 한번 더 들르고 싶은 곳. 이제 학생이 아니라 좀 비싼 한 끼쯤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 곳에서의 멋진 식사가 날 세균 병원으로 실어갔던 이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의대생 친구가 다시 병원을 찾았다. 어떻게든 퇴원 허가를 받아내겠다면서. 그리고 의사가 나를 불렀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더니 퇴원을 허했다. '이야. 드디어 집으로 간다.' 혹시나 안 주면 어쩌지 싶었던 옷은 병원에 들어갈 때 제출한 그대로 다시 건네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더니 친구가 있었다. "어떻게 퇴원 허락받은 거야?" "아, 너 당장 내일 비행기 타야 한다고 했어. 한국행 비행기 끊어놨고 당장 돌아가야 한다고."
병원에서 나의 출국 여부를 확인하지는 않겠지만 왠지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혹시라도 다시 아프면 또다시 그 병원체험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미 예정되었던 한 학기는 끝났고 여행 계획도 지나가버렸다. 내가 퇴원하던 날 친구들은 페테르부르크에서 돌아왔고 우린 평소처럼 기숙사에서 만났다. 그리고 나는 오픈티켓이었던 비행기 날짜를 예약하고 급히 출국비자를 신청했다.
두 달 정도 당겨 입국한 인천공항. 엄마가 나와있었다. 유색인종 테러가 있던 바로 다음날 러시아로 떠날 때도 쿨하게 바이 바이 했던 모녀였다. 다들 한 번씩 껴안는 걸 보고 멋쩍어했던 그런 모녀. 그런데 이 날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봤다. 러시아에서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말에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한국 병원에서 검사를 싹 받았다. 다행히 위와 장 내 출혈 흔적이 있지만 아물고 있는 단계라고.
이렇게 나의 러시아 세균 병원 입원기는 끝을 맺는다. 사라져 버려 아쉬운 세균 병원에서의 기록 A4 3장 대신 이 곳에 남겨보는 기억, 기록.
이 글은 이 시리즈의 진짜 마지막 글, 아래의 링크로 연결됩니다.
너는 어쩌다가 여기에 오게 됐어? (4): https://brunch.co.kr/@jsrsoda/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