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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옐로 Aug 08. 2022

회전교차로와 비리아투스 그리고 코로나

비제우(Viseu)

 동그라미가 있고, V자 모양이 있는 도시가 있다. 비제우(Viseu)가 그렇다.  파나마에서 포르투갈로 시집왔다는 어느 교우는 비제우에 살고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녀가 수업에서 비제우를 '회전교차로의 도시'라고 표현한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선생님도 그 표현에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녀는 그동안 살면서 이제까지 그렇게 많은 회전교차로를 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서구에서는 흔하디 흔한 회전교차로가 대체 얼마나 많아야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자못 궁금했는데, 어쩐지 그 이후 비제우는 내 머릿속에서 자동차가 원만 그리는 도시가 되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회전교차로의 도시'가 비제우 시의 공식적인 홍보 문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뜻하지 않은 이유로 4월의 비내리는 어느날 비제우에 있었다.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거주하다보면 때로 소외와 편견 그리고 차별에 가까운 애매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출입국사무소에 방문할 때도 그랬다.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아침부터 몸에 긴장을 잔뜩 채운 채 두어시간을 달려 비제우에 도착한 나는 출입국사무소에서 어딘지 주눅든 사람처럼 줄을 서고 있었다. 다름아닌, 거주증 신청을 위해서였는데, 전화로 방문예약을 잡으니, 살고있는 곳이 아닌, 두 시간 거리의 비제우 사무소로 배정이 된 것이었다. 우리가 비제우에 온 이유는 순전히 그 때문이었다. 오전 10시에 잡아둔 예약은 11시가 되어서도 내 차례가 되지 않았다. 새벽부터 리스본에서 왔다는 노로의 중국인 부부도 벌써 몇 시간째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눈에 보기에 지쳤고, 긴장하고 있었다. 밖으로는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비리아투스 조각상은 출입국 사무소에서 4분거리에 있었다


 집 계약서, 계좌 잔고, 임대차계약서, 수도요금 내역서 등 평소에는 들여다보지도 않는 문서들은 여기서 내가 선량한 외국인임을 입증하는 서류들이었다. 다소 신경질적인 사무원의 어떤 처분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비제우의 회전 교차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도시의 수많은 회전교차로라는 것이, 어쩌면 이 도시의 비밀을 푸는 방정식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 따위였다. 이를테면, 이 도시를 조감으로 보면 회전교차로가 어떤 특정한 모양을 만들고 있고, 그 모양대로 교차로를 돌면 도시에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상상이었다. 앉아있는 내내 직원의 눈은 매서웠고, 이방인인 나는 가급적 초라해보이기로 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내가 이곳에서 포르투갈 공무원의 권위에 납작 엎드려있는 동안, 근처 빵가게에서 빵을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질문과 서류가 오갔고, 안경을 벗은 채 머그샷처럼 느껴지는 어색한 사진을 찍고 절차는 끝이 났다. 얼마 간의 수수료를 내고, 아내와 딸아이가 기다리는 빵가게로 향했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구글(출처 : Geocaching)에서 찾은 비제우의 회전교차로 이미지, 실제로는 100개가 훨씬 넘는다고 한다.



 아내는 나를 위해 빵 하나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빵의 모양은 흡사 V자 모양이었다. 언뜻보면 대수롭지 않은 그 빵을 보면서 점원에게 빵의 이름을 물었는데, 점원은 역시 대수롭지 않게 빵 이름이 비리아투스(Viriatus)라고 했다. 후일에 찾아보니, 비리아투스는 비제우의 전통 빵으로 비리아투 전설과 관련이 있었다. 비리아투는 스페인 출신의 이방인으로 한때 목자였지만 무슨 일인지 포르투갈인들의 리더가 되어, 로마군을 패퇴시킨 포르투갈의 영웅이었다. 비리아투는 비제우에서 활동했고 이곳에는 그의 기념 동상도 있었다. 이방인을 쫓아내 토착민의 영웅이 된 어느 이방인의 기념 동상은 내게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비제우를 빠져나오며 나는 내가 그린 원의 횟수를 꼼꼼히 셌다. 마치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며 하얀 줄을 의식하며 세듯이 말이다. 총 11번이었다. 중심가를 통과하는 루트이긴 했지만, 그 파나마 교우의 말대로 비제우는 과연 회전교차로의 도시라고 불릴만했다. 동그라미를 그리면 다시 동그라미가 나왔다. 빗금을 치는 비는 오전부터 멈출 기미가 없었다. 차창 밖으로 비내리는 거리가 흘러 지나갔고, 불현듯 도시의 비밀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사실인데, 이곳은 비제우이며 이방인을 위한 도시라는 점이다. 밖으로는 여전히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Vis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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