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여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래 길을 달려옵니다~~
[출처: 이선희 ‘섬집 아기’ 노랫말 중에서]
위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몇 년 전 어머니와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제는 모든 것이 추억을 들추어내야 하는 현실에서 지금도 어머니의 굴은 도시에서 생활했던 나에게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유일한 산물(産物)이었다.
어머니는 가을걷이가 끝나는 시점부터 겨울 동안 마을 앞섬 그늘 주변에 자생하는 자연산 굴을 따서 서울로 보내 주셨다. 검정 비닐 속에 굴 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어머니의 굴은 어떤 날에는 된장국, 떡국, 라면에 넣어 먹기도 했었다. 그때까지도 어머니가 추운 겨울날을 이겨내며 자식 위해 굴을 땄는지 미처 몰랐다.
올여름 서울에서 아는 지인이 섬으로 귀향한 나를 찾아왔었다. 낚시를 좋아한다며 함께 낚시를 하자고 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늘 보내주었던 굴이 생각났다. 어머니가 사용했던 조새 채비를 하고 바닷가로 갔다.
조새(쪼새, 쪼시개: 길이 20㎝ 정도의 나무를 머리 부분은 어른 주먹만 하게 깎고 아래는 지름 1㎝쯤 되게 다듬은 것으로, 손에 쥐었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위쪽에 둥근 턱을 붙인 것으로 돌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따고 그 안의 속을 긁어내는 데 쓰는 연장)[출처: 대백과 사전]
1시간 넘게 돌과 바위에 붙어 있는 자연산 굴을 따는 동안 안 쓰던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리는 쪼그리고 상반신과 고개는 숙이면서 따야 했던 굴은 그렇게 지인과 함께 한 끼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어머니를 생각했었다.
해 년마다 보내주셨던 어머니의 굴은 이제는 직접 따서 맛볼 수는 있지만, 어머니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