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두꺼운 코트를 입고 집을 나섰을 때의 차가운 공기. 서걱서걱 떨어지는 낙엽. 푸르딩딩한 풍경. 하얗게 보이는 입김. 이런 계절에 생각나는 작품 하나가 있다. 바로 <미생>.
만화 <미생>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이맘때쯤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다.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가을처럼 시린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세상 많은 캐릭터 중 본받고 싶은 캐릭터를 뽑자면 이 작품의 ‘장그래’다. 위대한 영웅 캐릭터는 아니지만, 배울 것이 많은 그다.
신입사원 장그래
장그래는 어린 시절 일찍이 바둑의 세계에 들어갔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며 여러 환경의 벽으로 인해 끝내 프로바둑기사 입단에 실패한 아픔을 가진 캐릭터다. 이후, 그는 후원자의 도움으로 '원 인터내셔널'의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다.
드라마에서는 원작 만화에서보다 이 신입사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누구나 잔뜩 긴장한 채로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첫 출근. 상사들은 자리를 비워 없고, 어디에 어떻게 앉아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문서를 복사해야 하는데 마침 A4용지는 떨어져있고, 비품실은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물어물어 겨우 종이를 찾았는데 다 터져 날아가 버리고...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장그래의 노력은 바둑의 세계에서만 유효했던 것일까? 내세울 ‘스펙’이 없는 그를 다른 인턴들은 무시하고, 상사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원망하지 않는 장그래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한 손에는 노트를 들고 한 손에는 편의점 물품을 정리하고 있어야만 했던 순간에도, 바둑을 그만두고 기원을 떠나야만 했던 순간에도 장그래는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지적인 노력이었다.
"나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거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뿐이다.”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원망해도 된다. 환경이란 무서운 것이어서, 때때로 우리를 잡아먹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자신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선택했다.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에서보다 훨씬 더 강단 있게 나오는 만화 속 장그래 마저 눈물을 흘리며 위의 대사를 읊는다. 그것이, 그에게 배우고 싶은 점이다.
나는 어떠한가, 환경이 나를 잡아먹도록 두고 있지는 않는가. 이 질문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이 잣대를 들이밀어 그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작품, 미생과 장그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