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출산율 0.72명'
'2025년 출산율 0.65명 예상'
'2070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 50% 소멸'
'낮은 출산율이 한국군의 가장 큰 적'
'흑사병보다 심각'
현재 출산율, 국민연금 32년 뒤 고갈'
우리나라의 출산율 관련 신문의 머리기사다. 경제, 문화, 국방 등 우리나라 전체가 출산율 하락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출산율 0.72명이 아닌 7.2명을 나타낼 것만 같은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의 출산에 대한 의지와 열정은 실로 대단하여 말로써는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먼저 생리 주기마다 배란일 체크는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임신을 위해 매일 스스로 자기 배에 주삿바늘을 꽂는다.
난자를 뽑아내기도 하고, 뽑아낸 난자를 얼리기도 한다.
아기를 건강하게 품기 위해 자궁내막 두께를 항상 검사한다. 내시경으로 자궁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자궁벽을 칼로 긁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궁 안의 고인 물을 없애버린다고 장기 중 하나인 난소를 제거하기도 한다.
광기라고 해도 무색한, 이러한 출산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은 바로 50만 4천 명의 난임 부부들이다. (건강보험 심사 평가원 통계 : 2021년 한 해 난임 치료자 25만 2천 명)
하지만 이들을 잠시 멈추어 세워 기차 굴뚝 연기처럼 시커먼 한숨을 내뿜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난임 시술비이다.
시험관아기시술은 약값 포함하면 1회 시술당 약 300~5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다행인 것은, 이 적지 않은 금액에 대해 정부는 난임 지원 정책으로 '난임 부부 시술비'라는 이름으로 금액을 일정 부분 지원한다. 지원금이 없었던 예전에는 시험관 시술로 임신하면 태명을 일억이로 지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였다.
2006년부터 시작된 정부 지원금은 현재는 그 지원 폭이 많이 커졌다. 우리가 처음 시험관 시술을 했던 2017년 대비해서도 금액도 증가하고 지원 횟수도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는 난임 2년 차에 들어서면서 그 지원 한도를 모두 소진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후에는 난임 지원금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와이프가 뉴스에 자기가 나왔다면서 사진 하나를 보여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와이프가 정계에 입문하는 줄 알았다. 벌써 국회를 세 번이나 방문했다.
2019년 3월 난임 4년 차의 일이었다.
당시 국회의원 회관에서는 초저출산 시대의 위기를 맞이하여 적극적 난임 정책 전환을 위한 국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국회의원과 난임 카페 회원들의 공동 주체로 난임 정책 개선을 호소하는 행사였다.
와이프 얘기로는 800여 석의 강의장이 참가자들로 가득 메워졌다고 했다.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준비한 플랜카드와 풍선을 들고 난임 복지 지원 확대의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자신들의 사례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의 환호성을 지르고 발표 중에는 곳곳에서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했다.
듣기만 했는데도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같이 울고 있는 것처럼 그곳의 분위기가 짐작되었다.
와이프는 이곳에서 같은 지역의 어떤 언니를 만났다.
피아니스트가 직업이고 나이는 와이프보다 한 살 많다고 했다. 결혼 후 4년째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와이프는 그를 피아노 언니라고 불렀다.
행사 시즌이 모두 끝난 후에도 둘은 종종 커피도 마시고, 쇼핑도 같이하는 등 매우 친해졌다.
난임 동굴에서 같은 처지의 지역도 가까운 사람을 만나니 참으로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을 것이다.
둘은 서로 많이 의지했다. 덕분에 와이프의 난임 우울증도 많이 개선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아노 언니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와이프에게 들었다. 순간 와이프의 표정을 봤다.
만약 나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랬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와이프는 마치 자기 일인 양 너무 좋아하면서 출산 선물을 뭐 해줄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친구가 된 것이다. 진정한 난임 동지인 것이었다. 그 후에도 둘은 계속 만나고 서로 위해주면서 동지애를 쌓아가고 있었다.
나는 난임 동지들끼리의 의리는 전우애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후 와이프는 계속 국회 난임 토론회와 비슷한 행사를 일부러 찾아다녔다. 이곳저곳에서 난임 동지들과 의리를 맹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불어서 나에게 난임 정책의 불만을 토로하는 횟수도 점점 많아졌다.
운동권이라는 용어가 비슷하려나, 와이프는 마치 난임 운동권 인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피켓 들고 했던 시위는 예전 초등학교 시절의 북한 금강산댐 규탄 시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렇듯 나는 평소 국가 정책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와이프에게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국가의 난임 지원 정책 중에 몇 가지가 이상했다.
2023년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정책 몇 가지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만 나이 45세 전, 후의 시술비 지원금액 차이이다. 즉 지원금액이 나이에 따라 다르다.
2019년 전에만 하더라고 만 45세 이상은 아예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2023년에 45세 이상도 지원해 주기로 법이 바뀌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바뀐 법이 더 이상했다.
만 44세 이하의 경우 신선배아 110만 원, 동결배아 50만 원, 인공수정은 30만 원 지원해 주는 데 비해 만 45세 이상의 경우 신선배아 90만 원, 동결배아 40만 원, 인공수정은 20만 원을 지원해 준다.
같은 난임 시술이라 할지라도 45세가 되면 10만 원에서 20만 원을 덜 지원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처럼 6년 동안 난임 동굴에 있었으면 그동안의 난임 지원에 대한 히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니 예전 대비 조금이라도 지원받는 게 어디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난임 동굴에 들어서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느낄까?
나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이 많은 것을 일부러 일깨워 주려는 것인가? 구태여 기분 나쁘게 만들려는 것인가? 고의로 더 서럽게 만들려는 것인가?
돈 백도 아니고 10만 원, 20만 원 때문에 너무나도 감정 상할 것 같다. 만 45세 이상을 차별하려면은 차라리 예전처럼 아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공난포 발생 시 지원 불가능 조항이다.
제일 이해할 수 없는 항목이다. 와이프처럼 난소 기능 저하인 사람은 매번 한 개의 난포만 채취된다.
와이프도 한 개 채취했는데 그게 공난포인 적이 여러 번이었다. 즉, 난임이라 공난포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공난포임으로 난임 지원금을 지원할 수 없다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셋째. 2022년 이후로 난임 부부 지원 사업이 국가 주도에서 각 지자체로 이관되었다. 즉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예산을 배정하고 있으므로 투입하는 예산이 지자체별로 다르고, 사는 곳에 따라 지원이 달라졌다.
전쟁통과 같은 출산위기라고 하면서 전투를 하는 사람들에게 앞 동네에서는 총을 지급하고, 뒷동네에서는 칼을 지급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돼버린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기관총을 지원해야 한다.
즉 지자체 상향 평준화를 하던가, 다시 정부 주도로 최상의 지원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에 열거한 사항 외에 AMH 검사를 건강검진에 포함하고, 남성 난임도 지원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들은 아직도 많다.
나도 난임 동지들의 남편 중 한 사람으로서 한마디 하겠다. 저출산 시대에 난임 정책에 대한 국가 기조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출산의 의지만 갖고 있으십시오.
나머지는 국가가 책임지겠습니다.'
(와이프 국회 방문 뉴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