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난임 5,6년 차

3-1. 각서

by 뽁이 아빠


'삶은 개구리 증후군'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끓는 물에 개구리를 집어넣으면 당연히 바로 뛰쳐나온다. 그런데 찬물에 개구리를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데우도 개구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적응하다가 물 온도가 끓는점까지 올라가도 물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죽고 만다.


1869년 독일의 생리학자 프리드리히골츠의 실험에서 밝혀낸 '삶은 개구리 증후군'은 천천히 변하는 환경에 즉각 대응하지 못하고 큰 화를 당하는 것을 증명했다. 즉 무기력, 매너리즘의 참상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난임 5년 차 당시 와이프는 삶은 개구리처럼 되었다.

난임 1,2년 차 때에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퇴근 후에는 살을 뺀다면서 피곤한 몸을 이끌도 조깅도 밥 먹는 것처럼 했다.

뿐만 아니라 학교 교무실 냉장고에 보관해 둔 난포 터지는 주사도 절대 잊지 않고 알람 맞추어 화장실에서 몰래 맞았는다는 말에는 감동까지 받았었다. 그러나 그 후 3,4년이 지난 뒤에는 학교도 휴직하고 집에서 쉬는데도 불구하고 운동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난임 생활에 익숙해진 것일까?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주사 시간 놓치는 것은 다반사였다. 아침 식사는 건너뛰고 점심도 빵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밤에는 새벽 두세 시까지 TV 보고 놀다가 잠든다.

'삶은 개구리 증후군'의 표본 같았다. 살도 뒤룩뒤룩 계속 찌는 게 체격도 마치 황소개구리처럼 되었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잔소리를 쏟아내고 싶었다.


"운동을 해라"

"밥도 제대로 챙겨 먹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예전 난임 판정받았을 때의 그 절박한 마음은 다 어디로 갔냐?"


그러나 그러한 말들을 그대로 했다가는 결과는 안 봐도 뻔했다.


"주사 맞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네가 아냐"

"누구는 집에 있고 싶어서 그러냐, 원하면 당장 돈 벌어오겠다"

"그러는 네가 한건 뭐가 있냐"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장모님한테 이를까?'


그리하면 바로 이혼하자고 달려들 것 같았다.

그러다가 문득 와이프의 평소 말투가 떠올랐다.

와이프가 잡동사리들로 집안을 항상 어지럽힐 때마다 내가 '집안 정리 좀 해라'라고 말하면 와이프는 늘 이렇게 말했다.


"넌 뭐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하며 와이프를 찍소리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집을 샀다"


맞다. 와이프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나도 무엇인가를 내줘야 했다.

무엇을 내줄까를 고민했다. 와이프를 움직이게 하려면 너무 작아도 안되었다.

고민 끝에 평소 와이프의 성향에서 힌트를 찾았다.


1. 와이프가 나에게 하지 말라고 한 것 : 담배와 술

2. 와이프가 나에게 정말 바라는 것 : 성당 세례

3. 내가 해야지만 와이프로 하게끔 할 수 있는 것 : 운동

4. 와이프가 정말 좋아하는 것 : 돈


나는 이 네 개에 대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여 각서 형식으로 작성하여 와이프에게 제출하였다.


보통 각서는 잘못한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일은 전혀 없지만 나는 내가 먼저 각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많이 잘 못 산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내 각서를 받아 든 와이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그래도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그 순간 와이프의 눈빛에서 감동을 받았음을 알아챘다.

약간 긴장되었지만 이를 가라앉히고 최대한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앞으로의 생활에 대해 다짐을 해봐라. 뭐 나처럼 안 보여줘도 괜찮다. 물론 보여주면 참 고맙지만 말이야"


그 후 일주일 와이프는 나에게 카톡으로 다짐서를 보내주었다. 내가 네 개 항목인 것에 비해 와이프는 무려 크게는 일곱 항목, 작게는 열 네게 항목이었다. 내가 원했던 내용은 다 들어있었다.


'작은 것을 흔쾌히 내어주고 큰 것을 추구하라'라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의 각서)



(와이프 다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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