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다 신경 쓰면 사업 어떻게 하냐고?
1. 오늘 주제는 지난 1월 27일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된 중대재해법인데요. 재계를 중심으로 이 중대재해법이 효과 없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요.
-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및 산재예방 방안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발제자로 나선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중처법은 엄벌만능주의의 산물로 중대재해 감소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헌법원칙과 안전원리에 배치되는 부분이 많아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이 우려되고 오히려 재해예방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하루빨리 대대적으로 정비돼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정 교수는 "어떤 통계도 중대재해가 실질적으로 감소했다는 것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재해를 둘러싼 여러 여건과 상황을 감안하면 늘리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2. 중대재해법이 산업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안전관리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취지잖아요. 그런데 법 시행이 오히려 중대재해를 늘렸다니 좀 의아합니다. 통계가 나와있는 것은 없나요?
-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산업재해현황 부가통계가 나와있습니다. 이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598명, 건수로는 584건이었습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 사망자 644명 대비 46명(7.1%) 줄어든 건데요. 2021년 산재 사망자 683명까지 고려하면 2년 연속 사망자가 줄었습니다. 이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는 사업자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를 성실히 하지 않아 발생한 산업재해를 말합니다. 업종·규모별로는 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미만에서 45명 감소, 50억 이상 7명 증가한 반면, 제조업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14명 증가, 50인 이상 사업장은 15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사고사망자 수가 2023년에 처음으로 500명대 수준으로 감소하였으며,
이는 전반적인 경기 여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추진효과, 산재예방 예산 지속 확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중대재해법 시행이 산재 사망사고 감소의 원인으로 직결되는지는 좀 더 분석을 해봐야겠지만,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산재사망사고가 줄어든 것은 분명합니다.
3. 그런데 왜 법 시행 이후 산재 사망사고가 늘어났다고 주장할까요?
- 재계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경제지와 보수언론은 중대재해법에 굉장히 적대적입니다.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이 굉장히 못마땅하기 때문이죠. 중대재해법이 도입된 것은 산업재해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대책을 실시했음에도 효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에게 책임을 지우면 사업주가 노동자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출발한 법이죠.
그런데 사업주 입장에선 여태껏 없었던 규제가 들어오니까 불편한 것이고, 그게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되니까 불안한 거죠. 이 법이 사업주가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중대재해가 일어나면 처벌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안전 보건 확보 조치가 중요한데요. 작은 업체들이 이것저것 다 신경 쓰면서 경영하면 남는 게 없다. 결국 이런 논리로 귀결됩니다. 그래서 이 법이 무용지물이다 이런 걸 강조하고 싶은 거죠.
4. 법 시행 이후 산재 사망사고가 늘어났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요?
-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5일 <사고 예방 효과 입증 못 한 중대재해처벌법, 정말 필요한가>라는 사설을 실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요. <50인 이상 사업장에 법이 적용된 지난 1년간 산재 사고 사망자가 248명에서 256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10대 건설사에서 발생한 사망자는 25명으로, 전년보다 5명 늘어났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이 법 아래에선 기업이 안전 강화 노력보다 법률 자문 등을 통한 처벌 회피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당시 인용한 통계는 2023년 1월 19일 발표된 고용노동부 통계입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지난 시점의 통계라 주목을 받았는데요. 당시 통계에 따르면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는 2021년 683명보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2022년 644명으로 39명(5.7%) 줄어들었습니다. 다만 법이 유예 없이 시행된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대금 50억 원 이상)에 한정하면 8명 증가한 걸로 나타났죠.
그런데 지난 4월 발표된 2023년 통계에 따르면 50인(억) 미만은 354명(345건)으로 전년 대비 34명(8.8%) 감소, 50인(억) 이상은 244명(239건)으로 12명(4.7%) 감소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조선일보 논리를 따르자면 중대재해법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중소기업계는 중대재해법 50인 미만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요.
- 중소기업인 300여 명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고 발생 원인과 해당 회사 대표의 안전 부주의에 대한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자를 과도하게 처벌할 수 있어 위헌 소지가 크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정윤모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처벌 수준의 합리화와 규정의 명확화를 요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법 적용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처벌 수준 합리화와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규정 명확화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1년 이상 징역이라는 과도한 처벌은 반드시 위헌 결정이 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헌법소원과는 별도로 국회에도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요. 여야가 합의해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 달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6. 이미 법은 시행이 되고 있는데요. 유예기간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 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1년 1월 26일 제정이 됐습니다. 당시 1년의 시행 유예기간이 설정돼 있었고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3년의 유예기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이 유예기간이 지난 1월에 끝난 것이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중소기업계는 아직도 준비가 덜 됐다고 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2일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466개 기업을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7%는 '아직도 법 의무 준수를 완료하지 못했다'라고 답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50인 미만 사업장에 법적용 유예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지난 1월 결국 부결됐습니다. 이후 정부는 3개월 동안 ‘산업안전 대진단’ 집중 실시기간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사상 최초로 83만 7천 개 50인 미만 기업 전수를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자체 진단하도록 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노력은 소규모 사업장에 와닿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7.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중대재해법이 확대 적용된 이후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사고 사례가 나왔죠?
- 법 확대 적용 5일 만인 지난 1월 31일 부산 폐자원 수거 처리 업체에서 37세 노동자가 집게차로 폐기물을 내리던 작업을 하던 중 끼임 사고로 숨졌습니다.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장 자체가 협소하고 위험해 보이는데도 위험에 대한 안전보건조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번 재해는 전형적인 재래형 사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한 달 동안에만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9명의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사망했습니다.
8.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처벌을 받게 되니까, 아무래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 요구 어떻게 보십니까?
- 처벌이 과하다는 주장에 대해선 이미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니까 결과를 보면 될 것 같고요. 법 적용 유예기간도 이미 3년이나 부여를 했고 정부도 법 확대적용에 맞춰서 5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전수 안전점검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우선 사업주가 노동자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식부터 자리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다 신경 쓰면 사업 어떻게 하냐? 이런 구시대적인 접근은 이제 좀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고요. 사업주들이 이것저것 다 신경 쓰면서도 사업 잘할 수 있도록 정부가 많이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
법을 만들어 놓고 자꾸 유예하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죠. 그리고 이미 시행이 되고 있는 법을 바꿔서 언제까지 유예시킨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측면이 있기도 하고요.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진리가 너무나 많이 잊히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게 사람 목숨 아닐까요?
이 콘텐츠는 KBS 오늘아침1라디오(2024.05.24)를 통해서도 방송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