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게 해서 미안 아프지 마...
치치는 왼쪽 눈 없는 고양이다. 치치는 길냥인데 개냥이다. 치치는 사람을 좋아한다. 저만치 멀리 있가다도 내가 문을 열고 나가면 강아지가 꼬리 치며 뛰어오는 것보다 더 격렬하게 뛰어온다. 치치는 아이들을 매우 좋아한다. 아이들도 치치를 좋아한다. 매우 좋아한다. 치치는 아이들이 만져주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도 치치를 만져주는 걸 좋아한다. 나는 치치를 만져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치치는 진드기를 달고 있다. 없는 왼쪽 눈에서 진물도 난다. 치치는 중성화를 안 했다. 치치는 다른 구역 고양이다. 먹이를 찾아왔다.
길고양이를 만지는 건 위생에 좋지 않다. 동물과 교감하는 건 정서에 좋다. 치치는 길고양이다. 치치를 만지는 건 위생에 좋지 않지만 정서에는 좋다. 아이들은 치치를 좋아한다. 치치를 만지는 아이들이 걱정된다. 치치는 고양이다. 고양이를 치료하려면 동물병원에 가야 한다. 치치는 길고양이다. 이동장에 갇히는 걸 싫어한다. 치치를 이동장에 넣으려면 물리력을 행사해야 한다.
길고양이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지는 모르겠다. 치치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를 받으면 아프다. 피도 난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추가로 더 갇혀 있어야 한다. 치치는 그런 걸 모른다. 치치는 마취를 당하고 수술을 받았다. 중성화+괴사한 안구 적출+귀 진드기 치료+고양이 예방접종. 깨어난 뒤 안정을 위해 치치를 이동장에 가둬 놨다. 계속 이동장을 달그락거리며 빠져나올 궁리를 한다. 이동장에 갇혀 있는 치치는 눈을 마주치면 이전처럼 애옹~ 하지 않고 으르렁 꿍얼꿍얼한다.
치치는 인간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놀게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풀어줬는데 다른 데로 도망가서 영영 안 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래 적어도 아픈 눈을 치료해 줬으니 더 이상 눈에서 진물이 나지는 않겠지. 그래 적어도 한동안 귀 진드기 때문에 귀를 탈탈 털지 않아도 되겠지. 치치 입장에서도 도움이 되는 행동이었다고 강변하고 싶다. 아픔은 잠깐이고 건강은 오래갈 거니까.
풀어주기 전에 우유에 항생제를 타서 줬다. 먹을지 안 먹을지 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줬다. 길개냥이 한 마리가 온통 마음을 휘저어놨다. 만 47세 산골 얼음 남자의 마음을 말이다. 아프게 해서 미안해 치치. 아프지 말고 잘 살아야 한다 치치~ See you out there 치치
P.S> 치치가 돌아오는 동안 이동장에서 창살에 봉합한 눈을 엄청 비벼댔나 봐요. 봉합부위가 터져서 재수술받으러 가야 한답니다. 오늘 밤은 신발장에서 재우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이동장에 넣어서 재수술 받으러 갑니다. 치치 상태가 좀 호전되면 예쁜 사진 올릴게요. 치치를 너무 괴롭히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