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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페트병 배출함에 과일용기를 넣는 용기?

갈 길 먼 대한민국 자원재활용

by 선정수

전국 모든 아파트가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함에는 투명페트만 따로 모으는 곳이 있다. 거대한 반투명 비닐봉투인데, 재활용장 구석 모서리에 슛하기 좋게 걸려있다. 전국 모든 아파트가 마찬가지겠지만, 이 투명페트병 전용 수거 봉투에는 투명페트병 아닌 것들이 항상 들어있다. 주로 투명한 과일용기다. 철 따라 딸기 상자도, 토마토 상자도 될 수 있다. 때로는 계란판 뚜껑도 들어있는 걸 볼 수 있다.


혹시 내가 살고 있는 동만 그런가 싶어서 인근 재활용장 여러 곳을 둘러봤는데, 상황은 한결같다. 투명페트 수거전용 비닐봉투에는 복숭아 트레이, 토마토 용기, 계란판 뚜껑 등이 들어있었다. 플라스틱 수거함에는 투명페트가 상당수 버려져있었다. 대한민국 자원재활용(분리배출/분리수거)는 아직도 갈길이 멀다.

KakaoTalk_20250711_111443084.jpg 투명페트함에 계란판 넣지 마세요.

모든 재활용장에는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페트용기류(과일트레이, 계란판, 일회용 컵 등)는 플라스틱 수거함에 버려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투명페트병 수거함에는 "생수 및 음료 투명페트병만" 넣어달라는 안내 문구가 버젓이 쓰여있다.


도대체 왜 투명페트가 아닌 걸 넣는 걸까? 투명한 페트병을 넣는 것이다. 다른 것은 넣으면 안 된다. 버리는 순간 붙잡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이유는 짐작이 간다. "투명 페트를 모으는 곳이니까 투명한 페트 용기를 넣는 거지"라고 대답할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어디든 있다. 주어진 정보와 상관없이 정보의 일부 만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속성을 지닌 사람들이다.


"투명페트병"을 넣으라는 정보를 받았지만 이 사람은 "투명한 페트"로 인식해 버린 것이다. "병"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투명페트병만 따로 모으겠다는 이 제도의 취지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퇴색한다. 게다가 투명페트병을 비우고 헹구고 라벨을 떼고 찌그려서 마개를 막아 버리는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의 노력도 함께 퇴색시킨다.

KakaoTalk_20250711_111443084_02.jpg 투명페트함에 과일그릇도 넣지 마세요.

투명페트병만 따로 모으는 취지는 이렇다. 투명 페트병 만을 깨끗하게 모아서 재생공장으로 보내면 이걸로 다시 병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 병을 재활용해서 다시 병으로 만드는 것. 이런 방식이 가장 이상적인 재활용이다. (물론 재활용보다 재사용이 더 환경에 부담을 덜 주는 것이고, 아예 덜 쓰는 것이 가장 지구를 위해선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투명페트병만 모아 놓은 곳에 투명하지 않은 페트병이나 다른 재질이 섞이면 이걸로 병을 만들 수 없다. 순도가 낮아질수록 부직포 등 저부가가치 산물로 재활용된다.


따라서 아파트에서 배출한 투명페트병 분리수거 봉투는 선별장으로 가서 선별작업을 거친다. 혹시 섞여들어있을지 모를 투명페트병 아닌 것들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이물질, 불순물, 투명페트가 아닌 것, 라벨이 붙어있는 투명페트병 등이 많이 섞여 있을수록 선별장에서 많은 작업량이 투입된다. 이렇게 되면 수거업체에선 아파트 입주자대표회나 부녀회에 지급하는 대가를 깎으려 하게 된다. 여러분의 관리비 고지서에 주기적으로 관리비가 감면된 내역이 표시될 거다. 수거업체에서 폐자원을 가져가는 대가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 등에 돈을 내는데 이걸 곳에 따라 관리비 감면으로 상계하는 경우가 많다.

KakaoTalk_20250711_111759843.jpg 투명페트병함에는 투명한 페트병만 넣으세요. 참 쉽죠잉~

따라서 자기 멋대로 투명페트병 분리수거함에 이상한 걸 넣는 사람이 많을수록 여러분들은 관리비를 더 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구적으로 봐도 투명페트병이 투명페트병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므로 자원을 더 많이 써야 하고 환경은 더 훼손되고, 기후변화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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