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고치려 먹는 약이 화를 부른다?

복약에 관한 흔한 오해

by 선정수

오늘 팩트체크 주제는 <복약에 관한 흔한 오해들>입니다. 약을 안 드시는 분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어르신들이 다양한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요. 그런 만큼 복약에 대한 오해, 잘못 알려진 상식들이 많다고 합니다. 먼저 어르신들의 복약 실태부터 좀 짚어보죠.

- 최근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86.1%가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걸로 나타납니다. 특히 여러 개의 질병을 동시에 가진 '복합 만성질환자'의 비중이 매우 높은 특징을 나타내는데요. 2개 이상의 질환을 가진 노인은 63.9%에 달하며, 3개 이상의 질환을 보유한 비율도 35.9%로 나타납니다. 특히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의 비율은 2008년 30.7%에서 2017년 51.0%로 치솟았다가 2020년 27.8%로 줄었지만 2023년에는 35%로 다시 늘었습니다.

노인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5대 만성질환은 고혈압(59.5%), 이상지질혈증(28.9%), 당뇨병(27.7%), 골관절염·류머티즘 관절염(16.2%), 골다공증(11.1%) 순인데요. 이런 질환들은 완치보다는 꾸준한 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환자 대부분이 장기적인 약물 처방을 받게 됩니다. 실제로 고혈압 환자의 치료율은 99.1%, 당뇨병은 98.3%로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질병의 보유가 곧 약물 복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만성질환 두어 개 있고, 여기에 영양제, 건강기능식품 이런 것 드시는 분들도 많고, 감기에 걸린다거나 하면 한 번에 먹는 약물이 다섯 가지를 훌쩍 넘게 되죠. 한 번에 다섯 가지 이상 약물을 복용할 때 다약제 사용이라고 평가를 하는데요. 이게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병을 고치려고 약을 먹는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종류의 약을 먹으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커진다고요?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을 3개월 이상 복용하고 있는 노인은 83.8%로 나타납니다. 전체 응답자 중 16.2%만 의사 처방약을 복용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의사 처방약 1∼2종류를 복용하는 노인은 52.5%, 3∼4종류를 복용하고 있는 노인은 26.0%, 5종류 이상을 복용하고 있는 노인은 5.3%이며, 전체 노인이 복용하고 있는 처방약의 종류는 평균 두 종류로 나타납니다.

한국 노인의 다약제 복용 수준을 외국과 비교해 보면 그 심각성이 더욱 두드러지는데요. 65세 이상 외래진료 환자 중 5종류 이상 의사 처방약을 받은 환자 비율은 41.8%로 나타납니다. 주요 국가들의 65세 이상 노인 다약제 복용 유병률은 일본 28.7%, 미국 39%, 독일 26~40%, 네덜란드 26.9%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조사 시점과 처방 약물 개수 기준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한국 노인들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약을 먹고 있다는 경향은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의료 접근성이 좋아 여러 병원을 동시에 이용하기 쉽고, 분절적인 의료 체계로 인해 약물 중복이나 상호 작용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타나는데요. 약물이 중복돼 처방되거나, 함께 먹으면 상호 작용을 일으켜서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런 약물 부작용이 나타나는 걸 새로운 질병으로 잘못 알고 또 다른 약을 처방하는 일도 생기게 되고요.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많은 종류의 약을 한꺼번에 먹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짚어보죠.

-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다니면서 진료를 받습니다. 그럼 의사는 증상에 대해 진단을 내리고 약 처방을 하죠.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소화제라도 처방해 주는 게 우리 의료계 관행이기도 한데요. 환자가 이곳저곳 많이 병원에 다닐수록 약은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 주는 약과 저 병원에서 주는 약이 겹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 거죠. 특히 진통제와 소염진통제 계열에서 중복 처방이 흔한데요. 아세트아미노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이부프로펜, 나프록센 등) 등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동시에 처방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위장관 출혈, 신장 기능 악화, 심혈관계 위험이 누적될 수 있습니다. 특히 노년기에는 위점막 방어 기능과 신장 예비력이 감소해 있어 동일 계열 약물의 중복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또 방광약, 일부 항우울제, 항파킨슨약, 감기약, 항히스타민제 등은 항콜린성 제재라고 부르는 약물이 많이 사용되는데요. 이게 노년층이 취약한 약물이라서 중복 처방되면 입마름이나 변비 같은 경미한 증상뿐 아니라, 섬망, 기억력 저하, 배뇨장애, 시야 흐림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약물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복약 이력을 잘 따져보지 않으면 새로운 질병이 발생한 것으로 오인하고 또 다른 약물을 처방하는 경우가 생기는데요. 이걸 처방 연쇄라고 부르는데요. 약을 줄여야 해결될 문제를 오히려 약을 더 늘리는 식으로 잘못 대응을 하는 거라서, 이럴 경우엔 건강 피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병을 고치려고 약을 받아서 먹는 건데, 오히려 건강에 피해를 줄 수도 있군요. 이런 상황을 마주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여기저기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고, 병 고치는 약물을 처방받아야 하죠. 그렇지만 현명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병원과 약국에 갈 때마다 내가 현재 먹고 있는 약과 영양제, 건강기능식품이 뭐가 있는지를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걸 참고해서 의사가 중복 처방이나 상호작용이 있는 약물을 쓰지 않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내가 먹는 약이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일일이 외우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복약수첩이라는 게 있습니다. 병원에 다녀와서 약국에 처방전 내고받은 약을 기록하는 거죠. 언제 어떤 약을 탔다. 약처럼 드시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영양제 종류도 다 기록해 놓고요. 진료받으러 갈 때마다 이 복약수첩을 가져가는 겁니다. 나는 귀찮아서 그거 못하겠다 싶으시면, 현재 드시는 약봉지를 가져가서 보여주면 됩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으로 정기적으로 약을 타러 가시는 분들은 의사 만날 때마다 현재 드시고 계시는 약을 알려주시고, 중복되는 것은 없는지 뺄 것은 없는지 항상 점검하시는 게 좋습니다. 약을 먹고 나타나는 어지럼증이나 졸림 이런 부작용으로 의심되는 증상을 잘 기록해 놓았다가 의사한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약을 먹는 건 크게 바람직하지는 않네요. 가짓수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군요. 그럼 증상이 없어지면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 약은 되도록 적게 먹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드시던 약을 끊거나 줄일 때는 반드시 의사와 상의를 해야 합니다. 약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용량을 조절하지 말아야 하는데요. 증상이 좋아졌다고 약을 끊거나, 효과가 약하다고 스스로 증량하는 행동은 노인에게 특히 위험합니다. 다수의 약물은 갑작스러운 중단 시 증상 악화나 금단 반응을 유발할 수 있고요, 이는 노인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항불안제나 수면제, 일부 항고혈압제, 파킨슨병 치료제 등이 대표적인데요. 이런 약물을 복용하다가 증상이 호전됐다고 생각되시면 덜컥 약을 끊지 마시고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시는 게 좋습니다. 노년기 약물 처방의 원칙은 복용량을 점진적으로 조정한다는 겁니다. 노년기 신체가 외부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항바이러스제나 항생제를 처방할 때는 증상이 없어지더라도 처방된 약물을 다 드시라고 강조하는데요. 이건 우리 몸에서 바이러스나 세균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바이러스나 세균이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에 내성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번 감염에는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없게 되는 거죠.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의사와 약사의 지시를 따라서 약을 드시고 끊으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자의적으로 판단하시면 곤란합니다.


약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좋은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 2023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평균 외래 이용 횟수는 18회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외래진료를 연간 150회 초과한 외래 환자 수는 18만 5,769명, 365회 초과 이용자도 2,480명으로 조사됐습니다.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번 꼴로 병원에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건데요. 연간 외래 150회~365회 이용자의 91%는 물리치료를, 50%는 신경차단술, 60%는 트라마돌주(진통제)를 투여받은 걸로 나타납니다. 여기저기 많은 의료기관을 쇼핑하듯이 찾아다니는 걸 의료쇼핑이라고 부르는데요.

노년기에 의료 쇼핑이 반복되면 약물 복용 관리의 연속성이 쉽게 무너집니다. 여러 의료기관을 오가는 과정에서 기존 처방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동일 성분이 중복 처방되거나 상호 작용 위험이 있는 약물이 함께 처방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노인은 이미 여러 만성질환으로 다약제 상태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중복 처방은 약물 수를 불필요하게 늘리고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높입니다.

의사는 환자가 기존에 처방을 받은 약물을 검토해 새롭게 처방할 약물을 결정해야 중복과 상호작용 가능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료 쇼핑으로 인해 처방받은 약물이 과도하게 많은 상태라면 깊이 검토하기 어렵다. 환자가 약물로 인한 이상 증상을 호소하더라도 약 때문인지, 새로운 질환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진다. 처방 연쇄의 위험이 커집니다.

따라서 노년기 약물 치료에서는 진료 횟수보다 처방 정보의 일관성과 관리 체계가 중요한데요. 단골 의료기관과 약국을 정해놓고 치료를 받게 되면 약물 처방 정보가 쌓이게 되고 의사가 충분히 검토한 뒤에 처방을 할 수 있어 약물 부작용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부부가 함께 같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요. 내 약이 떨어졌다고 배우자의 약을 드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건 어떤가요?

-부부가 모두 당뇨병을 앓고 있는데 남편이 병원에 가지 못해 당뇨약이 다 떨어졌다고 아내의 약을 먹었다. 다 같은 당뇨병 약인데 뭐 어때 이런 사례들인데요. 증상은 비슷해도 질병의 원인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체중도 다르고 기존에 먹고 있는 약물도 다르기 때문에 의사가 처방할 때 개인 상황을 고려해서 처방을 달리합니다. 그러므로 의사가 다른 사람한테 처방한 약을 복용하면 저혈당 등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약은 절대 먹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