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위한 에너지드링크
남편의 사전엔 음료라는 단어는 없다. 오직 물만 마셔대는 그야말로 물먹는 하마 같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항상 신경 써서 체크하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구론산' 에너지 드링크의 재고 파악이다. 필요할 때 바로 마실 수 있도록 미리 구비해 쟁여두는 것이 남편의 자발적 의무이다.
냉장고 문을 열면 직사각형 바구니 안에는 구론산이 꼬마병정처럼 파란색, 초록색 뚜껑모자를 쓰고 11자로 각을 맞춰 서 있다. 갈색병에 파란색 띠지로 붙여진 것은 오리지널 맛이요, 초록색 띠지로 붙어있는 건 스파클링 맛이다. 한 가지 맛만 마시면 질릴 수도 있으니 가끔은 톡 쏘는 탄산음료가 생각나는 날 마셔보라는 남편의 배려다. 육아를 하다 너무 지친 날에는 오리지널로 묵직한 맛의 구론산을 고르고, 색다른 자극이 필요할 땐 스파클링으로 가볍게 피로감을 덜어낸다.
하루종일 육아로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들 저녁밥상을 차려주고 나면 엄마로서의 할 일은 끝이 난다. 비록 요 똥손(요리똥손) 엄마라 차려진 반찬은 예쁘지도 정갈하지도 않지만 맛있다고 엄지를 치켜세워주는 아이들을 보니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마쳤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냉장고를 연다. 오늘은 어떤 맛으로 마실지 3초 정도 손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연이은 독박육아로 저하된 체력을 끌어올려보고자 묵직한 맛의 파란색 꼬마병정을 선택한다. 뚜껑을 열자 달짝 찝찌름한 향이 코를 찌른다.
오늘도 수고했어. 치얼스.
#한달매일쓰기의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