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엄친아, 벤츠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벤츠 가는 자리에 빠질 수 없는 회사가 있다. 벤츠와 더불어 고급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산맥, 고급짐과 스포티함을 두루 갖춘, 알고 보면 바이크까지 잘 만드는! BMW다.
BMW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 브랜드다. 10여 년 전쯤 BMW 5 시리즈의 독수리 같은 눈매를 보고 홀딱 반해 버렸다. 누군가 드림카를 물으면 BMW Z4라고 답하기도 했었다. BMW의 상징인 키드니 그릴을 참 좋아하며 저 로고의 푸른 색도 좋아한다. 물론 앞으로 운전대를 잡아볼 수는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남들이 벤츠 박물관이 최고라고 극찬할 때에도 난 BMW 박물관 앞에서 더 설렜다.
BMW 박물관은 맥주의 도시 뮌헨에 있다. BMW를 풀어쓰면 Bayerische Motoren Werke인데 'Bayern' 지방의 자동차 공장이라는 뜻이다. 뮌헨이 위치한 주가 바로 Bayern이다. 축구팀 '바이에른 뮌헨'의 바이에른도 같은 말이다. 독일의 지하철인 '우반'을 타고 올림픽 경기장 역에서 내리면 5분쯤 거리에 박물관이 있다. 벤츠 박물관에 비하면 위치가 좋은 것 같다. 지하철 역에서 내리면 5분 거리에 있고 뿐만 아니라 뮌헨이기 때문에 유럽 여행 루트에 포함시키기도 좋다. 슈투트가르트는 자동차나 발레를 아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여행 경로에 굳이 넣기 애매할 수도 있다. 맥주 마시러 뮌헨 갔다가 들르기에 딱이다.
벤츠의 삼각뿔에 이어 BMW의 십자 로고도 온몸으로 표현해 보았다. 내가 더 좋아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에 좀 더 경건한 마음을 담아 양 팔을 쭉 뻗었다. 사진 연출하는 내 수준이 딱 저 정도인가 보다... 그래도 혼자 가서 찍은 사진이니 나름 노력한 것으로 봐주자.
저 뒤로 보이는 빌딩이 BMW의 본사 건물이다. 박물관은 빌딩 밑에 있는 못생긴 작은 건물부터 지하까지 연결되어 있다. 내 머리 뒤로 바로 보이는 은색 물체가 박물관의 일부인데 너무 못생겨서 따로 보여주고 싶지도 않다. 벤츠 박물관이랑 비교될 것 같아 내 최애를 지켜주고 싶다.
BMW 박물관은 벤츠 박물관과 여로모로 다르다. 그래서 소개도 좀 다르게 해 보겠다. 벤츠에서는 박물관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정해 벤츠가 이를 얼마나 잘 실현하였는지 논했었다. 벤츠는 굉장히 모범생스러운 박물관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BMW 박물관은 더 개성 있고 톡톡 튄다. 그래서 어떤 기준에 이 박물관을 맞추기보다는 박물관이 갖고 있는 세 가지 특급 매력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너 자동차 많이 알아서 뭐해? 살 돈은 있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위 사람들한테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운동은 좋아하면 직접 하면 되고 노래를 좋아하면 공연을 가면 되지만 자동차를 직접 타 보기란 너무나 어렵다. 기껏 자동차 박물관까지 갔는데도 꿈에 그리던 차들을 보기만 하고 돌아선다면 너무 허무할 것 같다. BMW 박물관엔 이런 자동차 팬들의 맘을 위로해줄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BMW의 현재 주요 모델들을 직접 타볼 수 있는 BMW Welt(World)다.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테마파크 못지않은 곳이다. 사실 외관만 보면 이 쪽이 더 박물관같이 생겼다... 훨씬 화려하고 멋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BMW의 3, 5, 7 시리즈들은 물론이고 미니 쿠퍼와 바이크들까지 타볼 수 있다. 운행은 할 수 없지만 실내 여러 장치들을 만져볼 수 있다. 미니 쿠퍼의 경우 센터패시아 모니터를 켜보고 간단한 조작도 해볼 수 있었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자동차들의 문짝을 직접 열어젖히는 매 순간순간이 감격이었다. 문 손잡이를 당기면 '달칵'하고 열리는 그 순간 손에 느껴지는 진동에서 쾌감을 느꼈달까.
나는 이 곳에 무려 혼자 갔다. 가능하면 같이 갑시다... 차 타보고 사진 남겨야 하는데 혼자서는 힘들었다. 난 혼자 여행을 즐기는 내 업보겠거니 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삼각대에 폰을 고정시켜두고 자동차로 총총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처음이 어렵지 하다 보면 부끄럽지도 않다. 찰나의 부끄러움이 중요한가? 남는 건 사진뿐인걸! 그리고 주위에서 수군거려도 어차피 독일어라 알아들을 수도 없다.
갈수록 가관이다. 1층엔 자동차가 2층엔 오토바이가 전시되어 있다. BMW의 오토바이는 자동차 못지않은 명성을 가지고 있다. 바닥에 고정된 오토바이에 저렇게 올라타기만 하면 된다. 하하. 난 이 곳에 두 번 갔었다. 한 밤에 갔을 땐 자동차들 문이 다 잠겨 있었어서 오토바이만 타볼 수 있었다. 아마 밤에 갔으니까 오토바이 올라가서 꿋꿋하게 저러고 놀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저러고 있을 때 마침 몇몇 독일인 아이들도 2층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들을 지나갈 때면 잠깐잠깐 현타가 왔었다. 걔들도 나처럼 죄다 올라가 보지는 않더라고... 내가 더 동심 속에서 놀았던 것 같고,,
이렇게 BMW Welt는 관광객 친화적인 공간이다. 전혀 부담 없이 모든 모델에 올라타 볼 수 있다. 아 롤스로이스는 제외였던 것 같다. (롤스로이스는 1998년부터 BMW 산하에 있다!) 오락실에 있는 자동차 게임기 같은 것도 있어서 게임상으로나마 트렉에서 BMW 자동차들을 몰아볼 수 있다. 3층인가 4층인가에는 고급진 레스토랑도 있다. 개다가 맨 처음 사진에서 삼각형 유리들로 촘촘히 이루어진 공간에서는 공연이 열리는 것 같았다. 이 곳은 BMW가 방문객들에게 제공하는 종합 체험 콘텐츠라 할 수 있겠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BMW 자가용(?) 라인에는 비싼 순서대로 7, 5, 3 시리즈가 있다. 현대 자동차와 비교하면 7이 에쿠스, 5는 그랜저, 3이 아반떼 정도가 될 거다. 이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대표적인 모델을 꼽자면 3과 5 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물론 BMW의 기술력이 가장 집중되는 모델은 7 시리즈이겠지만 그만큼 비싸니까. 비싼 건 내겐 낯선 것이다:( 박물관 큐레이터도 나와 생각이 비슷했는지 어쨌는지 박물관은 3과 5 시리즈를 인상적인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전시는 이 부분이다. 5 시리즈의 탑. BMW의 많은 라인업 중에서도 5 시리즈는 대중성과 고급스러움을 모두 갖춘 그런 꽃과 같은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개다가 탑을 이루고 있는 네 대의 자동차는 상당히 클래식한 5 시리즈다. 저 뾰족한 콧날을 보라. 로고 끝에서 범퍼 상단까지 안쪽으로 깎이며 떨어진다. 요즘엔 저렇게 공기 저항에 역행하는 디자인이 나오기 어렵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저 당시 5 시리즈가 특별하다고 한다. 저렇게 선 굵은 5 시리즈들이 네 대 나 수직으로 서 있으니 그 자체로 날 압도했다. 저 전시 앞을 지나가기가 참 힘들었다.
5 시리즈가 세로였다면 3 시리즈는 가로다. 3 시리즈를 위해 마련된 널찍한 공간에는 초창기부터 최근까지의 모델들이 일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일렬로 세우는 방식은 평범했지만 3 시리즈라는 하나의 라인업을 보여주기 위해 8대나 되는 차를 동원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건 마치 빛의 스펙트럼 또는 파노라마가 아닌가. 일제히 전방을 바라보는 8대의 차가 BMW의 자신감과 자부심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첫 3 시리즈에서 시작해 마지막에 전시된 3 시리즈에 도착하는 동안 BMW만의 시간을 느껴볼 수 있다.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온 그들의 의도를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BMW를 좋아한다면 시대별로 키드니 그릴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볼 수 있어 더 흥미로운 전시일 것이다.
두 전시를 보며 이 박물관은 전시를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순히 자동차를 가져다 두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동차들을 모아 또 다른 조형물을 만들어버렸다. 덕분에 그들이 전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는 훨씬 강력해졌다. 이런 파격적인 시도들이 이 박물관에 개성을 더해준다. 이런 점들은 내가 벤츠보다 BMW를 더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고급 자동차 브랜드라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지만 BMW가 좀 더 역동적이고 센스 있는 그런 감성이 있다. BMW는 박물관마저 개성파다.
자랑은 이렇게 하는 거다. 잘하는 게 있으면, 보여주고 싶은 게 있으면 BMW처럼 자랑하자. 바이크는 BMW의 특장점이다. 솔직히 어떤 모델이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하지만 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알려진 회사 중에 BMW 만큼 깊이 있고 탄탄한 바이크 라인업을 가진 회사는 없을 것이다. BMW는 자동차와 바이크를 동시에 꽉 잡고 있기에 특별하다.
이 점을 어지간히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박물관은 BMW 바이크를 총동원해서 위와 같이 하나의 벽을 꽉 채워버렸다. 사진에는 두세 줄만 보이는데 위아래로 보면 네 줄이 넘는다! 사실 저렇게 전시되어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은 모델 하나하나가 어떤 바이크인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바이크를 정말 많이 보여주고 싶다는 BMW의 의도만큼은 확실히 캐치할 수 있었다. "맞아 우리 자동차 회사긴 한데... 바이크까지 너무 잘 만드데? 아니 그냥 그렇다고~" 거의 SHOW ME THE 'BMW'
이쯤 되면 BMW 전시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BMW는 그들이 자랑하고 싶은 것들을 정말 잘 보여준다. 앞서 살핀 3&5 시리즈가 그러했고 오토바이 장벽이 그랬다. 해당 모델을 전시하고 설명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진짜 작품에는 설명이 필요 없다. 이러한 전시에는 소개 이상의 의미가 담긴다. BMW가 지나온 시간과 추구했던 가치가 위와 같은 파격 전시에 담겨 있다고 믿는다.
얼마 전 올렸던 벤츠 편에서 벤츠 박물관을 최고로 뽑았었다. 3대 박물관 중에서도 여러 지표가 균형 있게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BMW는 강력한 스토리텔링도 없고 규모도 더 작다. 박물관도 지하에 있어 외관이랄 것도 없으며 동선도 좀 복잡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던 '특이점'들이 이런저런 사소한 부족함 들을 의미 없게 만든다. 개성 혹은 임팩트 측면에서 보면 BMW 박물관이 벤츠보다 돋보였다. 벤츠 박물관이 엄친아 모범생 느낌이면 BMW는 자기주장 강한 마이웨이 느낌이랄까. 기업 브랜드 이미지가 박물관에도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다. 여전히 중후한 느낌의 벤츠와 보다 젊고 스포티한 느낌이 있는 BMW. 이렇게 기업의 색을 잘 담아냈다는 점에서 둘 다 멋진 박물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