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생존기] 나 때는 말이야

학생들이 너무한건가, 내가 꼰대인건가.

by 섬세영

근무지 특성상 대학생을 만날 일이 잦다. 진행되는 행사의 대부분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일단 근무지의 물리적 위치가 대학교내이니 대학생들과 마주칠 일이 많은것은 당연지사이다. 대학 졸업한지 10년이 채 안되었고, 대학원 다니며 학부 수업을 청강하기도 해서, 업무가 시작되도 대학생들과 잘 소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나의 오만이었다.


고작 강산이 한번 변했을 뿐인데, 학생들은 많이도 달라져 있었다. 아니면 내가 그 짧은 시간동안 꼰대가 되었거나.


episode 1. 장학생 면접 복장은 크롭티에 와이드팬츠.

얼마전 우리 기관에서 장학생을 선발했다. 신청서를 받는 것에도 문제가 약간 있었지만, 이제 20살 갓 넘은 아이들이 뭘 알겠나, 나도 저랬다 싶어서 크게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다. 문제는 면접 당일에 발생했다. 첫번째 학생이 청바지에 크록스, 그리고 커다란 맨투맨을 입고 등장했다. 그럴 수 있다. 나도 맨날 맨투맨에 크록스 신고 다니니까. 한명 두명 학생들이 무난한 옷차림으로 면접 대기실에 들어오고, 드디어 마지막 학생이 도착했다.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학생은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살색이 참 많이도 보이는 크롭티를 그것도 쫄쫄이 크롭티를 입고 나타났다. 쇄골이 훤히 보이고, 몸매가 부각되고, 배꼽이 살며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런 상의에 게양기에 걸린 태극기처럼 휘날리는 와이드 팬츠까지. 교내에서 걸어다니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옷차림이고,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인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옷차림이 과연 면접에 적합한 복장인지는 의문이다. 주위에 말하니 반응은 반반 갈렸다. '입사 면접도 아닌데 뭐 어떠냐'파와 '그래도 면접인데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파. 나는 후자에 가깝지만 혹여나 꼰대 소리 들을까 일단 입을 다물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한가?


episode 2.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것 까진 바라지도 않아.

사실 이 문제는 비단 요즘 학생이라 생긴 문제는 아니긴 하다. 오랜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느낀점은 남녀노소를 할것 없이 말귀 못알아 듣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요새 아이들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문해력 뿐 아니라 이해력 혹은 이해하려는 노력도 떨어진다. 수강료 환불을 요청해온 학생이 있었다. 빨리 환불해달라 하길래 환불 신청서 작성해서 메일로 전해 달라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환불 신청서 어딨는지 못찾겠는데요?"


어디서 다운로드 해야 된다고 설명도 아직 안했는데, 저 말이 불쑥 들어오니 당황스러웠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사이트에 들어가서 화면 좌측 하단에 보이는 공지사항에 들어가면 제일 윗 부분에 진하게 '수강료 환불 및 유의사항'이라는 게시글이 보일꺼다. 이 게시물에 첨부 되어 있는 '수강료 환불 신청서'를 다운로드 받아 작성해 메일로 보내주면 된다고 설명을 마쳤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도록 메일은 오지 않았고, 다시 전화 걸어 물어보니


"못찾겠어요. 사무실 가면 프린트 해줘요? 거기서 작성할께요"


결국 이 학생은 사무실에 방문해 내가 뽑아준 '수강료 환불 신청서'를 수기로 작성해 제출했다.


episode 3. 모르겠고 일단 돈을 좀 줘봐

대학 졸업한지 오래고, 사실 대학 재학 시절에도 축제에 큰 흥미가 없었던지라 근무지에서 축제를 하건 말건 신경 안쓰려 했다. 하지만 내 근무지가 대학교인 이상 나는 축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 행사를 진행해야 하니까. 이번 축제에선 두개 학생회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 지원에 앞서 행사 기획안을 받아 볼 수 있겠냐 물어보니, 자기네들은 이런거 없이 계속 지원 받았단다. 그래. 맞는말이다. 이전에는 기획안 혹은 제안서 그 무엇도 없이 지원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관장이 바뀌기도 했고, 당연히 받아야 하는 기획안을 지금까지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받지 않았던것 뿐 원칙상 기획안을 받아야 옳다. 하지만 학생들은 납득이 될 만한 이유 없이 그냥 으레 그렇게 해왔으니 계속 그렇게 해달라는 식으로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주 골머리를 썩었다. 기관장님은 극대노 하시고, 학생들은 칭얼대고 중간에서 난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기획안을 받아냈긴 했지만 이후 돈을 집행 하는 과정에서도 나몰라라 하는 통에 내가 직접 나서서 업체와 연락해 일을 마무리 지었다. 대학 생활의 꽃이 축제이고 이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즐기고자 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권리를 누리려면 의무를 다 해야 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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