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돈!
아는 사람은 알다싶이 나는 수학과 숫자와 친하지 않다. 나아가 경제 관념도 그닥인 편이다. 20대 초반 이후 옆지기가 경제권을 가져간 이후 더더욱 숫자와는 먼 인생을 살고 있다. 한도 계산 안하고 카드를 팡팡 긁어대고 현금이 필요하면 옆지기에게 내놓으라고 손 내밀면 되니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내가 한달에 얼마를 벌고 소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내가 갑자기 천단위 행사를 진행하고, 억단위 예산을 집행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내가 처음 맡은 행사는 250만원짜리였다. 항목도 간단했다. 인쇄비, 식대. 딱 2개. 그런데도 6자리 넘어가는 숫자라고 꼴랑 두개 값 쓰는데도 손이 벌벌 떨리고, 결재 받을걸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듯 빠르게 뛰었다. 내 돈이 아니라서 집행하는 것이 더 무서웠다. 내 돈이면 내가 책임지면 끝이지만, 내 돈도 아닌 큰 금액을 혹여나 잘못 주면 돌려달라고도 못하지 않는가. 게다가 세금계산서라니. 도대체가 세금계산서가 뭔지 감도 안잡히는데, 이걸로 백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줘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여기 저기 물어봐도 속시원히 세금계산서가 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는 말만 반복될 뿐이었다. 결국 나는 이해를 포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견적서에 쓰인 금액과 세금계산서의 금액을 수십번을 확인하고 다시 본 후에야 행사 비용을 처리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산넘어 산이라고 내게 덮친 숫자의 쓰나미는 이제 시작이었다.
출장 한번 갈 때마다 확인해야 할 표는 왜 그렇게 많고, 계산해야 할 값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출장 비용 기안을 올리는 날이면 계산기 두드리는 꿈을 꿀 정도였다.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것 조차 힘들어서 끙끙거렸다. 그깟거 계산기가 다 해주는 건데도 왜그런지 계산기를 두드릴때마다 결과값이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엑셀을 조금 다루게 된 이후에는 엑셀에게 계산을 시켰지만, 엑셀 상의 값을 기안 문서로 옮기는데도 한나절씩 걸렸다. 엑셀의 값을 복사해 전산에 붙여 넣기가 안되다 보니, 하나 하나 수기로 입력 해야했다. 혹여나 0 하나 더 붙일까, 숫자 하나 잘못 입력할까 바들바들 떨며 몇번씩 확인하느라 출장 기안을 올리는 날이면 아무것도 못하고 이것만 붙잡고 있기 일수였다. 업무량이 많지 않은 곳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곳에서 이런 식으로 일했다면 대번에 잘렸을 것이다.
일을 시작할 즈음에 제일 힘들었던 업무는 단연 수강료 확인 업무였다. 수강신청한 학생들을 명단으로 만들고, 이 학생들이 입금을 언제 했는지 확인하는 단순한 업무가 나를 좌절시키기 일수였다. 도대체 왜 12만원씩 30명이면 360만원이 나와야 하는데, 348만원이 나오는가. 한명이 누락되었다고 하기엔 입금한 인원과 수강생 명단의 인원수는 동일하고, 어디서 누락이 된건지 찾을 수는 없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처럼 입금액과 수강생 명단상의 금액이 다른 경우도 허다했고, 중간에 환불이라도 해달라면 다시 계산해야된다는 생각에 겁부터 집어 먹었다.
내가 돈과 숫자에 해탈한 이유는 오직 하나. 예산 편성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억단위 예산을 두가지 버전으로 편성 해야 했다. 하나는 국내 보고용, 하나는 국외 보고용. 달러로 계산했다가 원화로 계산 했다가 억소리가 절로 나오는 경험이었다. 눈은 충혈되고 머리카락은 한웅큼씩 빠지고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숫자를 보니 이제 숫자가 더이상 겁나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에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하는 얊팍한 마인드가 생겼달까. 물론 돈을 다루니 더블 체크는 필수로 하지만 예전처럼 바들바들 떨지 않는 배포를 가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