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생존기] 인수인계 없이 살아남기.

by 섬세영

행정 보조 아르바이트를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줄곧 서비스직 혹은 요식업(?)에서 일했다. 음식의 가격을 외우고 레시피를 숙지하는 것 부터 손님을 응대하고 매장을 관리 하는 것 까지 큰 틀만 그 사이의 일은 수월하다. 하지만 행정직, 사무직은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과는 전혀 다른 분야이다. 워드도 사용 못하는 컴알못에 행정지식이 없을 뿐 아니라 내선전화 사용법도 모르는 무지랭이었다. 이런 내가 해도 되는 일일까 싶었지만 제안해준 선배(당시 행정 담당 직원이자 대학원 선배)가 별것 아니라며 나를 인도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내가 타고난 눈치와 일머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빨리 빨리 한국인 답게 성격이 급한 만큼 손도 빠르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누가 시키기 전에 알아서 내 할일을 찾아냈다. 사무실 청소 같은 잡일부터 인쇄 된 서류 정리하기, 그리고 종결 처리된 서류를 철하는 작업같은 단순 노동까지는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엑셀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부터 문제가 조금 발생했다.


나는 수학적 사고가 전혀 안되는 사람이다. 학창시절, 컴퓨터 시간에 한글을 다루고 피피티를 만드는 것 까지는 아주 이해가 쉬웠다. 심지어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엑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겨났다. 함수를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함수에 대한 메커니즘이 이해 되지 않으니 진도가 밀리기 일수고 어떨땐 수업 내내 포기하고 멍때린 적도 있다. 대학에서도 엑셀을 다루지 않았으니 내 엑셀 처리 실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실전에 투입되어 엑셀을 다루다 지레 겁부터 먹었다. 파일을 날려 먹을까봐 복사본을 만들어 편집을 하고, 함수를 사용할 줄 모르니 맨땅에 헤딩하듯이 엑셀을 다루었다. 하지만 타고난 눈치와 일머리는 현장에서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다. 하나를 알려주면 세개 정도까지는 응용 할 줄 알았고, 빨리 빨리 급한 성격 덕분에 단축키도 검색해 바로 사용하곤 했다. 심지어 엑셀 단축키가 정리된 데스크 매트까지 장만했으니 나는 더이상 엑셀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이 어렵지 엑셀도 다루다보니 할만 해졌다.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어쩐지 내가 행정 담당자로 채용 되었다.


정식 발령을 1주 앞두고 하나씩 인수인계를 받으려던 그 찰나, 대형사고가 터졌다. 전임자가 수입 내역을 잔뜩 누락한 것이었다. 어디서 얼마나 누락된 것인지, 왜 기안금액과 실제 금액이 안맞는지 일일히 찾아내느라 인수인계는 커녕 물 한모금도 못마시며 모니터만 쳐다봤다. 눈이 빠져라 숫자를 맞추고 계산하느라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결론적으로 나는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못 받고 공식적인 첫 출근을 했다. 내가 받은 인수 인계 자료는 세장 반짜리 출력물이 전부였다. 여기에 전산 사용법, 홈페이지 관리법, 행사 진행법 및 그 외 각종 업무까지 내가 할 일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고 그냥 이 일을 하라고 받은 셈이었다.


첫 출근 날은 다행히 무난하게 지나갔다. 두번 째 날은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세번 째 날, 나와 같은 날 발령받은 상사가 사라졌다(이 이야기는 앞전 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나는 그렇게 업무를 배울 사람도 없이 울며 불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 부서나 전화해 붙잡고 행정 업무 처리에 대한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왜 관련도 없는 자기에게 물어보냐고 성을 내기도 했다. 나이 서른 다되어 시작한 사회 생활에 서럽기도 하고 오기도 생겨서 이 악물고 버텼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일 투성이었다. 한가지 일을 겨우 처리해 이제 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드는 순간 다른 일이 생겨났다.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롭게 배우며 처리해내야만 했다. 예산팀이 뭐 하는 곳인지, 재무팀이 무슨 업무를 보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전화 해서 이것 좀 알려달라고 매달렸다.여기 저기 전화 할 일은 어찌나 많은지 전화를 걸 때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달래느라 힘들었다. 목소리는 떨리고 갈라지기 일수고, 말 한마디라도 잘못할까봐 더듬더듬 말하곤 했다.


다행히 6개월이 지난 지금, 행정 업무가 빠삭한 상사도 새로 발령 받아 오고 내 행정 업무 전반에 대한 자문을 구할 분도 생겼다. 이제 내선 전화는 물론 거래처와 통화도 능숙하게 해낸다. 새로운 일은 여전히 계속 등장하지만 이제 한숨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처리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엑셀도 능숙하게 다루며 커피 한잔 곁들일 여유도 생겼다. 역시 사람은 닥치면 뭐든 하게 되어 있다. 얇디 얇은 인수인계 자료 붙들고 머리 감싸메고 끙끙대던 과거의 나를 토닥여 준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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