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5월 1일, 나에겐 새 직장이 생겼다. 살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도 해보지도 않았던 행적직이었다.
작년 가을 부터 내가 적을 두고 있는 학교의 유관 기관에서 행정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말이 행정보조지 프린트 하기, 프린트 정리하기가 내 주된 업무였다. 작은 기관이고, 행정 업무는 감히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생각해 행정에 대해서는 하나도 배우지 않았다. 그러던 올 초, 갑자기 행정 직원이 사퇴 하게 되면서 얼떨결에 내가 그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행정보조 마지막 날, 기관장님도 사퇴를 하셨다. 이로서 23년 5월 1일부로 기관의 전면적인 인사 개편이 이루어진 것이다. 전임 기관장님과 신임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인수인계로 정신 없이 3일을 보내고 나니, 어쩐지 기관장님이 사라졌다.
출장을 가셨냐? 아니다. 지금 잠시 식사를 하러 가셔서 자리에 안계시는 것인가? 이것도 아니다. 정말 사라지셨다. 그렇게 나는 업무 시작 3일만에 상사 없는 사무실을 지키게 되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업무가 없으니 내 공부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실 행정 업무를 하는 것 자체가 조금 부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달이 되었다. 이쯤 되니 나는 심각해졌다. 상사가 없으니 결재도 못하고, 행사 진행도 못하고, 일도 못배운 채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던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바로 부총장님을 찾아가 당신께서 지금 이 기관의 이사장이시니 결재를 받아 달라 청한 것이다. 다행히 부총장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셔서 업무 시작 한달 여 만에 드디어 결재 라인을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제일 중요하다 생각 된 기안 문서를 정성껏 작성해 결재라인을 태워 올려 보냈다. 내 첫 문서는 부총장실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퇴짜 받았다. 첫번째 문제는 왜 이 기관에서 전결 내려야 하는 문서를 부총장 결재로 올리냐는 것이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다른 부서에서는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문제였다. 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땀을 쩔쩔 뺐다. 있는 그대로 말할 수도 없고, 표면적인 이야기를 하자니 설득이 되지 않았다. 겨우 겨우 설명을 하고 나니 이제 첨부 문서가 말썽이었다. 인건비 관련 첨부 문서가 너무 오래 전에 작성 되었다는 것이다. 인건비 관련 변동 사항이 없어 계속 사용하던 문서가 이제와서 갑자기 너무 오래된 문서라는 것이었다. 이 역시 이해 된다. 2017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수정 없이 계속 사용한 문서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 이 문서를 어떻게 처리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논의 할 상사도 없고, 동료도 없으니. 결국 이 문제는 신임 원장님이 임용 된 이후에 처리 하도록 하고, 우선은 계속해서 오래된 문서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첫 결재 문서를 장렬히 빠꾸 맞고(?) 탈탈 털리며 나는 하루 하루 유관부서들과 부총장 비서실에 연락하며 울며 불며 일을 배웠다. 그러길 두달, 드디어 23년 6월 말, 신임 기관장님이 임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