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드골 공항으로 들어갔다.
“핫초코 냄새가 나. 히드로 공항에서는 표백제 냄새를 맡았었는데.”
코를 킁킁대며 내가 말했다. 인천 공항, 히드로 공항, 세인트 판크라스 역, 파리 북 역까지. 그동안 스쳐온 여행의 지류들을 떠올리며 공항을 걸었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던 인천 공항, 태어나서 처음 밟아 본 타국 땅! 히드로 공항, ‘굿바이 런던! 봉주르 파리!’ 하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 집시에게 봉변당할 뻔했던 파리 북 역. 그리고 마침내 샤를드골 공항. 여행에 마침표가 찍히려 하고 있었다.
“그냥 뒤돌아 나갈까?”
“그래? 까짓것 며칠 더 있다 가 버려?”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김소월 시인의 〈가는 길〉을 되뇄다.
그립다 / 말을 할까 / 하니 그리워 / 그냥 갈까 / 그래도 / 다시 더 한 번 (중략)
프랑스와 작별하기도 전에 벌써 프랑스가, 유럽이 그리웠다. 우리는 연인과 이별하는 심정으로 출국 준비를 했다. 천천히 걸어 E2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리고 e-티켓과 여권을 제시했다.
“고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출국장까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놀랍게도 한국인이 마중 나와 있었다. 파리로 파견 나온 대한항공 직원이라고 했다. 그가 캐리어며 짐 따위를 손수 수화물로 부쳐 주었다. 말씨만큼이나 행동도 섬세한 남자였다.
“파리가 워낙 오래된 도시라, 여행하시는 동안 불편하지 않으셨어요?”
남자가 사뿐사뿐 걸으며 물었다. 도대체 얼마 만에 듣는 우리말인지 몰랐다. 반갑고 감격스러웠다.
“영국보다는 불편했고, 서울보다는 편했어요.”
“파리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지만, 저는 이곳이 아직도 불편하답니다.”
남자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아참! 실은 제 동생도 휠체어를 타요.”
그가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리는 놀란 얼굴로 “아, 네⋯.” 하고 대답했다. 불의의 기습을 받은 듯 당황스러웠다. 겉보기와 달리, 의외로 자기 노출이 적극적인 사람 같았다. 출국장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형이 항공사 직원인데, 걔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 보지 못했어요. 우습죠? 차마 걔를 여기로 데려올 수가 없더라고요.”
섬세한 그에게서 오래된 슬픔이 느껴졌다.
“한번 초대해 보세요. 동생분도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내가 말했다.
“부럽다! 저희는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여행했거든요. 형님이 가이드해 주시면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아내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게 가능할까요? 몸이 불편한 분들이 어떻게 여행하시는지, 그 방법을 저는 몰라요. 못난 형이죠.”
그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다음에 만나면, 못난 형한테 여행 노하우 좀 알려주실래요?”
출국장 앞에서 그가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은 복잡한 마음으로 출국장에 들어섰다. 아내와 나는 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수많은 말이 목구멍에 꽉 막혀 나오지 못했다. 말들의 병목현상이었다. 얹힌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유리벽 너머에서 비행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는 비행기는 크고 단단한 성 같았다. 엔진음이 육중했다. 아내가 수동 휠체어로 옮겨 탔다. 남자가 전동 휠체어를 수화물로 싣기 위해 포장했다. 손길이 여물고 꼼꼼했다. ‘동생도 휠체어를 타요.’ 그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안녕, 프랑스. 잘 있어야 돼. 나를 잊지 마.”
아내가 인사했다.
바야흐로 이별의 순간이었다.
“전동 휠체어는 제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이제 탑승하시겠습니까?”
남자가 사근사근 말했다. 모르긴 해도, 빠릿빠릿한 직원이자 듬직한 형 같았다. ‘못난 형이죠.’ 그의 말이 자꾸 가슴을 찔렀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동생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에 대해 얘기해 주고 싶었다. 비록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여행담이겠지만 그래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얹힌 속이 조금 풀릴 것도 같았다. 말들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려고 발버둥 쳤다.
비행기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동안 ‘Good bye Europe, see you again!’ 인사했고, ‘당신의 동생도, 우리도, 모두 여행할 수 있어요.’ 응원했으며 ‘여행은 우리를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 고민했다.
새삼스레 이렇게 여행할 수 있어서, 유럽과 이별할 수 있어서, 책 한 권 정도의 여행담을 나불댈 수 있어서, 무엇보다 살아 있어서 감사했다. 감사! 이 두 글자를 마음에 새겨 넣기 위해 우리는 1만5000킬로미터를 날아왔나 보았다.
“고마워. 덕분에 재밌게 여행했어.”
아내에게 말했다.
“응.”
“!”
여행에 마침표가 찍혔다.
연재를 마치며...
지금까지 <낯선 여행, 떠날 자유>를 읽어 주신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참 행복한 10주였습니다. 글이 올라가는 월요일마다 무척 설레고 벅찼습니다. 그 덕에 월요병도 잠시나마 잊고 지낼 수 있었네요. 다 당신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풀어내지 못한 에피소드들은 종이책을 통해 조근조근 들려드리겠습니다(낯선 여행, 떠날 자유 – 꿈의지도 발행). 바라건대 우리의 인연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조금 더 먼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먼저 가서 손 내밀고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중략)
다만,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천 개, 만 개의 손을 붙잡은 채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누군가로부터는 힘을 얻으며 살고 싶다. 그렇게 얽힌 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한 송이의 국화꽃'이고 싶고, 동시에 '소쩍새', '천둥'이고 싶다.
'내 손을 잡아 다오. 당신이 누구든, 그 무엇이든, 어디에 있든, 내 손을 잡아 다오.'
- p.208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