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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니제이 Mar 18. 2020

숙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빨리 해치운다 vs 최대한 미룬다


아, 정말 숙제다 숙제!!


고민이 있어 며칠을 끙끙거리던 친구가, 여전히 같은 고민으로 한참을 하소연을 하더니, 통화 말미에 던진 이야기다. 그걸 난 덥석 물었다.


그래! 숙제니까 빨리 해치워.
미루면 미룰수록 스트레스만 받지.


진짜?
난 늘 숙제를 미루고 미루다
어쩔 수 없이 대충 해가서 결국 혼이 났는데. 숙제는 그런 거 아니었어?!


숙제를 대하는 자세가 이렇게나 달랐다. 친구는 스스로 '숙제'라고 이야기하면서 당장 해치우기보다 미루는 쪽으로 마음의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나의 숙제론(?)에 진심으로 당황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적어도 나에게 숙제는 밤을 새워서라도 꼭 끝내야 하는 약속이었다. 놀더라도 숙제부터 해놓고 놀아야 하고, 숙제를 안 하면 큰 일이라도 날까봐 전전긍긍했던, 소심한 모범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숙제를 쿨하게 외면하지 못할 바에야 후딱 해치우고 마음 편한 게 낫다는 입장이었다.


그런 내가 가능한 한 끝까지 미루는 게 있다.

바로 글쓰기이다.


글은 마감 하루 전에야 시작한다. 글을 빨리 쓰는 편이기도 하고, 마감시간은 글쓰기의 중요한 원동력이 기도 하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글을 쓰기 전까지는 틈 나는 대로 글쓰기 주제와 관련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글 쓰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레미콘 차의 커다란 통이 시멘트가 굳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돌아가는 것처럼, 글을 쓰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글과 관련한 것들이 끊임없이 굴러다닌다. 그러다가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할지 가닥이 잡히면 성공이다. 시작만 잘하면 나머지는 대체로 수월하다.


그런데 가끔, 정말이지 글을 시작하기 싫을 때가 있다. 솔직하지 못한 마음이 들 때, 즉 포장이 필요할 때이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인터뷰이의 눈물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인터뷰이의 진솔한 이야기와 마음에 공감하며 나 또한 눈물을 참기 힘들 때가 많다. 그러다 한 번, 유일했던 것 같다, 그 눈물에 전혀 공감이 안 된 적이 있었다. 마치 악어의 눈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때부터 마음이 닫히더니 글이 아예 쓰기 싫어져 버렸다. 겨우 마감은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읽히고 많이 회자되어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포장엔 실패했다. 댓글에서 나의 속마음과 똑같은 걸 발견했다. 독자들의 눈은 정확하다.


친구의 고민은 사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다만 그걸 언제 실행하느냐가 문제였을 뿐. 결국 친구는 다음날 실행에 옮겼고, 숙제를 끝내니 날아갈 것 같다고 신이 나서 소식을 전해왔다.


미안하다 친구야, 숙제는 빨리 해치우는 거라 해놓고, 나도 미루는 숙제가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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