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첫 책을 낸 때는 14년 전인 2006년이다. 2002년에 외국계 컨설팅사를 그만두고 세상에 나와 ‘거의’ 1인기업의 형태로 컨설팅을 꾸려간 지 근 4년만에 <경영유감>이라는 책으로 출판계에 내 이름을 신고했다. 책을 쓰는 목적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겠지만, 고백하자면 컨설턴트로서 나의 이름을 ‘홍보’할 목적이 가장 컸었다. 책의 주제와 대상 설정, 목차 짜기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준비 과정을 면밀하게 진행했다기보다는 2004년부터 모 인터넷 매체에 올렸던 글을 중심으로 책 한 권 분량의 책을 ‘겨우’ 만들 수 있었다.
평소에 많은 기업들이 당시에 유행하던 BPR, CRM, SCM, KMS, BSC 등 소위 ‘세 글자 시스템’에 문제의식을 느꼈기에 책의 내용은 시니컬한 시선과 비판적인 어조로 가득차 있었고 그래서 책 제목은 <경영유감>으로 결정되었다. 책 준비 작업을 엉성하게 진행했고, 칼럼을 끌어모아 구성했으며, 필력도 변변치 않았던 터라 지금 다시 <경영유감>을 읽어보면 귓불이 빨게질 정도로 부끄럽다. 지금 이런 책을 출판사에 가져다 주었으면 아마 단칼에 거절 당했으리라. 어쨌든 이력서에 넣을 책 한 권 얻었으니 당시엔 그것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두 번째 책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상당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책 <컨설팅 절대로 받지 마라>였다. 당시 초베스트셀러였던 <영어 공부 절대 하지 마라>란 책의 제목을 딴 이 책의 목적은 내가 외국계 컨설팅업체를 다니면서 그리고 독립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컨설팅의 여러 가지 문제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고발하기 위한 것이었고, 고객사에게 잘못된 컨설팅 관행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대처 방안을 미리 수립할 수 있도록 조언하기 위한 것이었다. 책 제목이 ‘과격’했는지 ‘컨설팅 분야’라는 폭좁은 시장에서 제법 팔렸다. 어떤 고객사는 컨설팅을 받기 전에 프로젝트팀 전원이 이 책을 돌려가며 읽었다며 나에게 감사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미안하지만, 책은 돌려 읽는 것이 아니다).
반면, 익명으로 악의에 찬 이메일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 “컨설팅이 그렇게 싫으면 업계를 떠나라. 왜 아직 컨설턴트로 행세하느냐!”라고. 모 컨설턴트는 “컨설팅도 몇 년 못해 본 게 까불고 있다”라는 인신공격성 멘트를 날렸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어느 컨설턴트 출신 대기업 임원은 내 책의 내용이 “심각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졌다”라고 비판했다. 일부의 일을 컨설팅 산업 전체의 관행으로 확대해석했다는 의미였다. 이 글을 그 임원이 볼지는 만무하겠지만 한 마디 변명을 하자면, 컨설팅 업계의 일부가 극소수가 아니라 10~20%만 그렇게 해도 충분한 고발거리가 된다. ‘카메라 출동’류의 TV 뉴스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적게 잡아도 업계의 50~60%가 컨설턴트 이력 부풀리기, 한 사람을 여러 프로젝트에 투입시키기, 수수료 부풀리기, 다른 고객사에게 제출했던 보고서 베끼기, 고객의 문제를 진정으로 고민하기보다 ‘컨설팅 상품’을 팔려는 데 혈안이 되기 등의 문제 행동을 보여 왔던 터였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대체 몇 퍼센트까지 해당이 돼야 하는가?
<컨설팅 절대로 받지 마라>는 이렇게 컨설팅 진영으로부터 숱한 비난을 당하는 계기가 됐고 오히려 나의 컨설팅 수주가 줄어드는 역효과를 낳았다. 컨설팅 받지 말라는 사람에게 컨설팅을 맡길 고객이 누가 있겠는가? 다른 컨설팅사와 프로젝트를 할 때 책을 참고만 하면 됐지. 분기탱천한 논조로 겨우 두 달만에 쓴 책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사업적으로는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 책을 계기로 한 가지 얻은 이득이 있다면 그것은 경영계에서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로 내가 조금은 입지를 다질 수 있었고 그때문에 작지만 나의 팬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을 두 권 내고 나니 향후에는 어떤 주제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비로소 감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게 부수적인 이득이었다. <컨설팅 절대로 받지 마라>는 절판된 지 오래다. 이제 나는 컨설팅 업계를 떠났기에 개정판을 낼 일은 없다. 아니, 알다시피 컨설팅 업계가 와르르 무너진 지 오래라서 책을 내봤자 읽히지도 않을 것이다.
세 번째 책<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는 2007년에 나왔다. 이 책은 펜을 잡은 지 3개월만에 탈고했는데, 지금까지 내 ‘저술 역사 상’ 최고의 원고 작성 속도를 기록한 책이었다.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하루 평균 50매 가량을 죽죽 써내려 갔으니까. 지금은 체력이 떨어져 하루 최대 20~30매가 고작인데, 그렇게 빨리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돈’이었다.
2006년은 지금껏 내 컨설팅 역사상 가장 큰 매출을 달성한 해였다. 현재의 매출은 그때의 30% 수준 밖에 안 되는데 물가를 감안하면 사실은 30%도 안 되는 셈이다. 물론 그렇게 벌 수 있었던 것은 당시가 컨설팅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때였고 내 몸이 젊었던 터라 체력도 잘 받쳐주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부산, 대구 등을 왔다갔다 하며 한꺼번에 세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던 때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늘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가장 잘 나갈 때가 가장 위험한 때다”라고. 이런저런 이유로 자금 소요가 많았고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던 2007년. 설상가상으로 그해 매출은 2006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다시 돌아가기 싫은 시간대가 있다면 바로 이때가 아닐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힘에 겨운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책쓰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돈이 쪼들리면 컨설팅 말고 돈벌이가 잘 될 만한 일(실제로 나는 당시 보험영업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을 찾아 나서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나는 내가 ‘지금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책쓰기를 그 답으로 얻었다. 물론 새 책을 낸다고 해서 ‘대박’을 터뜨린다는 보장은 없었고 나 또한 대박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그 전에 낸 두 책의 인세는 용돈벌이 수준이었기에), 나는 당장에 금전적인 혜택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위기를 동력으로 삼아 ‘책도 쓰는 컨설턴트’로 나의 입지를 빠르게 다져가는 게 장기적으로는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런 결론을 내리고 나서 나는 교양과학서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대략 300권 넘게 샀으니 금액으로 따져보면 500~600만원 가량 될 듯하다). 과학에서 이미 밝혀 놓은 여러 가지 이론과 법칙에서 조직경영의 시사점을 찾아본다는 취지로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 공대를 다니며 교양과학서를 즐겨 읽었던 터라 과학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경영 컨설팅을 업으로 하고 있으니, 과학과 경영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매월 통장을 빠져나가는 이자의 부담을 잊기 위해서였는지 그때처럼 열심히 책을 읽고 열심히 글을 쓰던 때는 없었다. 출판 계약 후 3개월 만에 초고를 보내자 출판사 측은 놀라는 눈치였다. 인세를 가능한 한 빨리 받아야 할 만큼 다급했던 터였다.
그렇다고 책 내용은 (자부하건대) 허술하지는 않았다. 과학의 이론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참고문헌을 꼼꼼히 달면서 경영의 통찰을 전달하려고 무진 애를 쓴 작품이었다. 고맙게도 누군가는 “한국에서도 이런 주제로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놀랍다”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단, 판매가 생각만큼 따라주지 못했다. 책 제목에 ‘경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독자층이 확 줄어드는데 거기에다 ‘과학’까지 들어가 버렸으니 두 주제를 탐독하는 독자가 아니고서야 책을 구매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3쇄까지가 한계였다. 돈이 궁해서 쓴 책이었으니 목적 달성에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경영, 과학에 길을 묻다>는 앞서 낸 두 책에 비해서는 다분히 ‘책다운 책’이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경영유감>과 <컨설팅 절대로 받지 마라>는 심하게 말해 ‘학예지’ 수준이 불과한 책이지만(읽으면 부끄러워진다), <경영, 과학에 길을 묻다>는 본격 경영서도 쓸 줄 아는 컨설턴트로 내 위상을 조금 더 높이 상승시켜 준 책이었다. 지금 읽으면 ‘내가 이런 글도 썼구나’라는 뿌듯함이 자주 드니까 말이다. 이 책을 내고나서부터 몇몇 출판사에서 출판 청탁 이메일이 종종 답지했다. 아마도 이 책은 내가 ‘작가’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첫 번째 저작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것이 바로 심정적으로 이 책을 나의 첫 번째 책으로 여기는 까닭이다.
역시나 이제는 절판되어 살 수 없는 책이 되었다. 나온 지 15년이나 됐으니 개정판으로는 어림없고 만일 다시 이 주제로 책을 낸다면 아예 새로운 내용으로 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계획은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 최신 과학을 이해하기엔 이제 내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는 책이 읽히지 않는 세상에서 과학과 경영을 ‘짬뽕’한 책이 과연 얼마나 팔릴까 하는 의심이 더 크다.
책의 판매량은 저술의 동기를 이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인세 때문이 아니라,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 동안 온전히 힘을 쏟은 저작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지 않고 이내 잊힌다면 다음 책을 내려는 욕구가 별로 생겨나질 않는다. 출판사도 그런 작가를 우대하지 않는다. 잘 팔리지 않은 저자의 책을 내줄 출판사는 (요즘같은 불황에) 별로 없다. 그러니, 저자가 책 판매량에 민감해 하는 것을 ‘탐욕’이라고 매도하지 말기를 바란다. 여러분도 책을 펴낸다면 가장 신경 쓸 것이 판매 가능성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를 할 것이다.
(2부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 이 글은 <주간 유정식> 시즌 1에서 '글쓰기/책쓰기 노하우' 코너로 올라갔던 글입니다.
<주간 유정식> 시즌 1은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1년 동안, 시즌 2는 2021년 10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매주 발행되었던 경영 전문 주간지입니다. 현재 100호까지 발행되었고, 시즌 3는 2023년 중에 시작할 계획입니다. <주간 유정식>의 각 호의 목차를 한눈에 보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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