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고 싶으세요? - 2부
유정식의 글쓰기/책쓰기 노하우
유정식의 글쓰기/책쓰기 노하우
(1부에 이어서…)
그 다음에 낸 책은 <시나리오 플래닝>이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2000년이던가? 아더앤더슨에서 컨설턴트로 일할 때 마침 프로젝트를 끝내고 ‘쉬고 있던’ 나에게 모 고객사를 대상으로 시나리오 플래닝 컨설팅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시나리오 플래닝이 뭐지?” 처음 들어보는 경영기법이었고 막상 프로젝트에 들어가 어떻게 고객을 리드해 갈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참 ‘섹시’하고 ‘있어빌리티’가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국내에 아무도 해본 사람이 없어 생소한 경영기법이라면 이번 프로젝트로 경험을 쌓으면 ‘나만의 독점적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배워 가면서 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맨 땅에 헤딩하면서 3개월의 프로젝트를 그런대로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당시는 인터넷 상의 자료도 별로 없었고 해외 자료도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얼마 되지 않는 자료를 토대로, 조금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한국형 시나리오 플래닝 모델’을 수립해 가면서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나는 독립하면서 이때의 경험을 살려 몇몇 고객사에게 시나리오 플래닝을 컨설팅하거나 교육했고 경영과 관련한 여러 미디어에 시나리오 플래닝을 소개했다. 그러다 어느 기업에서 나에게 시나리오 플래닝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니즈가 터무니없었다. 2시간은 방법론을 소개하고 사례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2시간만 들으면 ‘바로 현업에 써먹을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이 되길 원했다. 게다가 시나리오 플래닝이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무언가 변수값만 넣으면 예측치가 톡 튀어나오는 블랙박스와 같은 도구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시나리오 플래닝의 의미와 목적을 오해하는 그들에게 특강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속으로는 ‘어디에서 들은 것은 있어서 교육해달라는구나? 2시간 교육으로 너무 많이 기대하는 것 아냐?’라며 화가 좀 났다. 그리고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몰이해가 만연한 이유는 우리나라에 이를 제대로 소개하는 책이 없기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내 책이 없으니까 무시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칭 시나리오 플래닝 전문가로 행세하면서 그 주제로 된 자기책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나는 8개월 간의 시간을 들여 <시나리오 플래닝>을 완성했고 2009년 1월에 맞춰 책을 출간했다.
그러나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책은 나오자마자 시련을 겪었다. 1쇄로 나온 책 4천부를 전량 폐기하고 다시 찍어야 했던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찍어낸 <시나리오 플래닝>은 누적 판매량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당시로서는 꽤 비싼 책값(23,000원)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기에 몇 천 권이 한꺼번에 판매되었다.
출판사는 이 책의 판매 패턴을 기이하게 생각했다. 보통은 초기에 판매가 급등하면 그 탄력으로 판매가 계속 상승해야 하는데, 1쇄 분량이 소진되고서는 판매가 소강상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쓰는 책을 좋아하는 일정 규모의 팬이 어느 정도(약 1,000명 내외)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그린 라이트’였다. 출처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겠지만, 어딘가에서 “1천명의 팬만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터였기에 그동안 독립 컨설턴트로서의 활동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책 자체로는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지 못했지만, 이 책의 출간에 힘입어 명실공히 “시나리오 플래닝하면 유정식”이라는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내 이름을 검색엔진에 치면 연관 검색어로 시나리오 플래닝이 튀어 나오게 되었다. 누군가 시나리오 플래닝을 문의하면 “제 책을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출간 후에 여기저기서 시나리오 플래닝 컨설팅과 특강, 워크숍 요청이 쇄도했고 그 덕에 나는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주제만으로 지금까지 아파트 1채 값은 족히 넘을 만한 수입을 벌었다. 8개월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나중에 강조하겠지만, 책은 자신이 그 분야의 전문가임을 세상에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책이 잘 팔리든 그렇지 않든(물론 책을 잘 쓰긴 해야 한다) 자기 저서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전문가의 시장가치 차원에서 엄청난 차이를 발생시킨다. 과장한다면, 전문가가 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책이 전문가를 만든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나에게 이런 냉혹한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2013년은 나의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꼽는 <착각하는 CEO>가 나온 해다(2011년에 <문제해결사>란 책을 냈으나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이 책은 심리학의 여러 연구 결과에서 경영의 시사점을 찾자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블로그가 요즘의 유튜브처럼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7년에 나는 뒤늦게 블로그를 시작했는데, 매일 1편의 심리학 논문을 경영의 관점으로 읽은 후에 그 내용과 ‘경영의 시사점’을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물론 주말에는 포스팅을 쉬었다). 그렇게 ‘1일 1논문’을 독파하면서 5년간 매일 글을 올렸고 덕분에 내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굉장히 늘어났다(나중에 ‘논문 읽는 법’을 이 코너에서 소개하겠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화면에 걸리는 일이 잦아서 하루에 적게는 몇 천 명, 많게는 몇 만 명이 접속하는 인기 블로그가 되었다.
실무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엔진에 키워드를 넣으면 내 블로그 글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졌는지, 블로그를 보고 나에게 컨설팅이나 강의 요청을 하는 고객들이 제법 됐다. 나중에 ‘컨텐츠를 쌓는 법’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내 경험상 블로그만큼 컨텐츠를 축적하는 데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 꾸준히 글을 올리면 어느새 책 분량의 컨텐츠가 쌓이는 효과 뿐만 아니라, 블로그 독자들의 방문이 글을 계속 올리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블로그 시대가 지났다가 하지만 여전히 블로그는 유효하다. 진지하게 블로그 개설을 고민하기 바란다.
5년간의 꾸준한 블로깅(blogging)으로 충분한 컨텐츠가 쌓였고, 이를 ‘착각’이라는 관점으로 책을 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반골 성향이 있는 것인지 기존의 생각에 반하는 것, 직관을 깨뜨리는 것,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것에 매력과 쾌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니 CEO를 비롯한 여러 리더가 직원과 조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착각을 ‘근거’를 가지고 지적하고 고발하는 <착각하는 CEO>야말로 내가 세상에 내고 싶은 책 아니었겠는가?
참고문헌을 포함하여 6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착각하는 CEO>는 경영서로는 꽤 많이 팔렸고 지금까지 11쇄를 기록 중이다(내가 앞으로 이 기록을 앞으로 깰 수 있을까?). CEO를 ‘저격’하는 도발적인 제목인 탓에 만약 CEO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더 팔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워낙 경영서 시장이 작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자로서 나의 위상은 이 책을 통해 확고해질 수 있었다. 그래봤자 얼마되지 않지만 새 책을 계약하며 선인세를 좀 높게 불러도 곧잘 OK 사인을 받곤 했으니까.
<착각하는 CEO>는 나온 지 7년이 넘었고, 이제는 많은 이들이 자기네 생각이 착각인 줄 알게 되었기에 책 내용이 진부해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금년 말일(12월 31일)부로 절판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밝힐 수는 없지만, 내용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컨텐츠를 추가하여 조만간 개정판을 낼 생각이다. 나는 ‘시나리오 플래닝’와 ‘착각’이라는 키워드를 책으로 선점했다(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이 주제로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말기를…). 선점한 자로서 의무는 앞으로 계속해서 개정판을 펴냄으로써 컨텐츠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분이 책을 낸다면 한번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그 주제로 계속해서 개정판(혹은 심화된 주제의 책)을 내겠다는 각오를 가지기를 당부한다(이것도 역시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착각하는 CEO> 이후에 차례로 <시나리오 플래닝>의 개정판인 <전략가의 시나리오>, <착각하는 CEO>의 후속편 격인 <당신들은 늘 착각 속에 산다>,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의 후속편 격인 <빌 게이츠는 왜 과학 책을 읽을까>가 출간되었고, 알다시피 금년에는 열 번째 책인<나의 첫 경영어 수업>이 세상에 나왔다. 이 책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은 나증에 기회가 생기면 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생략하겠다.
그간 쓴 책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앞으로 이 공간을 통해 책쓰기에 관한 나의 경험, 생각, 노하우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쓰기 혹은 글쓰기에 관한 도서의 내용과 다를 수 있는데, 나는 의도적으로 그런 도서를 한 권도 참조하지 않은 채 나만의 책쓰기 노하우를 공개할 예정이다. 여러분의 기대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