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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풍신수길을 만나다.

- 비 오는 날 오사카 탐방기

나의 등 뒤에서 "잘 갔다 오라"는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낯선 이에 대한 친절과 배려. 가끔 따뜻함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온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나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흐리고 뿌연 5월의 하늘.


수직으로 추락하는 물방울들이 내 볼 위로 떨어진다. 저 멀리 공중에서 내리는 빗물들이 이곳 오사카에서 나를 만나고 있다.


그것마저 반갑다.

나는 어제 오후 갈팡질팡했던 난바역으로 다시 걸어갔다.

혹시나 돌아오는 길을 잃을까 봐 두 눈으로 스캔하여 머릿속에 저장하였다.

작은 하천을 건너자  난바역으로 이어지는 지하도가 나왔다.

나의 첫 방문지는 오사카성이다.

그곳을 가기 위해 '미도스지' 선을 타고 '혼마치'로 이동하여 다시 '츄오 선'으로 갈아타고 '타니마치욘초매'에서 내려야 한다. 어제 혼란스러웠던 자동 티켓 발매기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구간별 요금을 확인하고 동전을 투입하면 된다.

역내 표지판과 안내문을 확인하며 지하철을 타면 목적지까지 쉽게 갈 수 있다.

비 오는 오사카 성. 지붕 위 비가 떨어지고 까마귀가 울고 있다

'타니마치욘초매' 역을 나오자 빗발은 조금 약해진 듯했다.

출입구에서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바라보자 넓은 광장이 나왔고 오사카 역사박물관과 NHK 오사카 홀이 보였다. 그리고 나무 사이로 가려진 오사카성의 처마가 보였다.

그리고 우산과 비옷을 입은 관광객들이 드문드문 걸어가고 있었다.

굵은 빗발 속에 바라보는 오사카 성의 석벽은 견고해 보였다.



긴 하천과 같은 해자가 빗물을 안고 고요히 누워 있었고 특이하게도 석벽은 약 20도 정도의 기울기로 해자 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어깨동무를 한 채 견고하게 성을 보위하고 있었다.

최대폭이 75미터, 성벽의 길이는 2km에 달하는 '미나미 소토 보리'라고 한다.

나는 '오테문'으로 들어섰다. 바로 '타몬야구라가'를 지나 '사쿠라 몬'을 들어서는데 세 개의 삼각형 모양으로 이뤄진 황금빛과 푸른 색의 기와 지붕과 하얀 벽공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바로 '천수각'이었다. 즉 '텐슈카쿠'이다.

조선 침략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인내의 화신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의 건축양식을 혼합한 방식이다. 절대 권력자의 은신처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고 왜란과 재란의 양대 침략을 생각하면 천수각은 아름다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참화를 회상하게 했다.
한국인에게는 결코 아름답지 못한 성, 천수각


역시 오사카 관광의 1번지인 '천수각'은 관광객들이 많았다.

비가 오는 날씨지만 수학여행 온 많은 학생들이 줄지어 선생님 뒤를 따르고 여행사 깃발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중국 관광객들이 보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우리 동포들의 목소리는 중국말과 일본말 사이에서 웅웅 거리며 들려왔다. 그들은 천수각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고개를 들어 천수각 꼭대기에 있는 황금 잉어를 쳐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수많은 까마귀들이 공중에서 빙빙빙 회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비행기가 간사이 공항으로 내려앉고 있다.


까마귀와 비행기의 묘한 조화였다.

나는 좌측 구석에 마련된 상품 가게에 들러 기념 마그네틱을 사고 바깥으로 나오자 라멘과 갖가지 요기거리들을 팔고 있었다. 새벽부터 출발하여 여태 한 끼의 밥도 먹지 못한 거지 행색이라 급히 라멘을 하나 주문했다.

비가 와서 조리대 바로 앞에서 뜨거운 국물과 함께 면 사리를 입에 넣는 순간 '이거 정말 맛있구나'라는 순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 젊은 주방장에게 웃음을 보였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 것인지 원래 맛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낯선 오사카를 헤맨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천수각 내부는 그렇게 한국인이 관심 가질만한 내용들은 없었다.

오사카 성곽의 역사와 각종 정보, 도요토미 시대와 도쿠가와 시대의 오사카성 복원 모형, 오사카 여름 전투도, 도요토미의 생애와 다양한 고서와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중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단연 일본 무장들의 갑옷이다. 심장에서 묘한 적개심이 끓어올랐다. 짐승의 뿔과 같은 투구와 진바오리라는 갑옷을 입는 체험 코너가 있는데 망치로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설마 그 침략의 갑옷을 입는 한국 관광객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 투구를 보고 있으면 무참하게 살육당한 조선 백성들의 고통과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천수각에서 바라본 오사카 일대


곧장 천수각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지상에서 약 50미터 상공에 자리 잡은 전망대는 한눈에 오사카 성 주변과 시내를 볼 수 있었다.

푸른 기와와 황금 잉어가 꼬리를 하늘로 향한 모습이 바로 눈 앞에 보였다.

그리고 흐린 하늘 아래 오사카 성 공원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까마귀들이 맴돌기 시작했고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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