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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카이 그리고 우메다 공중정원

- 흐린 날 오사카 유람기

나는 1912년에 건설된 오래된 철탑을 구경하기 위해 신세카이로 향했다.



'쓰텐카쿠'. 하늘과 통하는 높은 건물이라는 곳. 

건설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철탑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통 철탑에 불과하다.

에비스쵸 역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흐린 하늘에 회색빛 철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성난 남성 생식기처럼 보인다.


동경의 '스카이트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동경의 철탑이 현대의 세련된 모던한 분위기라면 이곳 쓰텐카쿠는 뭔가 근대 산업화 시대의 구닥다리 같은 느낌이 든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고 철탑 주변의 상점들은 셔터를 내리거나 장사를 하더라도 찾는 손님이 거의 없는 한산한 분위기이다. 이런 곳을 찾는 유일한 이유는 '쓰텐카쿠'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다. 

1912년에 건설된 신세카이의 쓰텐카쿠


나는 철탑 아래에 서서 위로 올려다보았다. 장미와 공작새, 다양한 꽃 모양들이 조잡하게 그려져 있다. 

그곳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했다.

나는 원래 전망대를 좋아했다. 

어느 도시를 가든 가장 높은 곳에 올라 360도로 돌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도시 풍광을 감상하는 것이 좋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곳만큼은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몇몇의 여행자들은 매표소로 가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서성거리며 먹을거리를 찾고 있는데 이쁜 아가씨들이 초록색 떡을 팔고 있었다. 오사카성에서 라멘을 먹고 그새 배가 고팠는지 떡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사보니 초록색 떡모양의 아이스크림이었다. 

나무 꼬챙에 녹색의 떡 아이스크림 10개가 꽂혀 있었다. 날씨는 스산하고 추웠지만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놈들을 하나둘씩 빨아먹으면서 전철역으로 되돌아 가는데 재미나게도 '욘사마' 배용준 씨께서 점집 광고모델로 활약하고 있었다. 대단한 한류의 열풍이다.


신세카이 상가를 빠져나오자 아주 오래된 간이역이 보였다. 

그리고 전철 한 량이 정차돼 있었다. 처음에는 전철 박물관에서 전시하는 근대 유물인 줄 알았는데 막상 가까이 에서 보니 사람들이 탑승한 채 출발 시간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1900년부터 운행을 시작한 '한카이' 전차이다. 

참으로 일본은 옛것을 버리지 않고 온고지신의 자세로 과거를 대하고 있었다. 

장난감 같은 한카이 전차, 오사카의 요모조모를 눈요기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반면 우리는 편리성과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옛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만 추구하니 과거의 문명과 문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세계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때론 일본이 부럽기도 하다.



우메다 스카이 빌딩에 있는 공중정원 전망대를 가기 위해 '우메다' 역으로 이동했다.

밤이 되자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또다시 나는 건물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않은 채 건물의 가운데 부분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특이한 건물을 찾아 나섰다. 

우메다 역에서 나와 밤하늘을 바라보니 저 멀리 비슷한 건물이 보이길래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바삐 집으로 혹은 술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분주해 보였다. 

나는 건물 주변을 이리저리 훔쳐보며 오사카의 밤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도 눈에 익은 붕어빵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붕어빵 가게는 우리네처럼 늙은 아저씨가 트럭이나 리어카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아주 현대식 가게에서 조리 모자까지 쓰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이쁜 아가씨가 팔고 있지 않은가.

그 하찮은 붕어빵을 이런 곳에서 이런 여자가 팔아도 된단 말인가? 

나는 주저 없이 붕어 한 마리를 사서 조심스럽게 입으로 물었다. 


이빨 사이로 꿀 단팥이 흘러나오더니 혓바닥 위에서 따듯한 느낌이 올라왔다. 그리고 입안 가득히 단맛이 났다. 정말 우리 동네 거리에서 맛볼 수 없는 진정한 붕어빵의 진미였다.


손가락에 묻은 단팥을 쭉쭉 빨어 먹으면서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신사가 나타났다.

복잡한 오사카 시내 한 복판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신사는 무려 1,30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쓰유노텐 신사'였다. 이곳에 대한 정보를 알고 일부러 찾은 신사는 아니었다. 

우연히 길을 가다가 발견한 장소에 불과했다. 

이처럼 여행은 뜻하지 않는 새로운 풍경을 제공한다. 

그곳이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있는 신사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사는 작고 아담했으며 가끔 지나가는 직장인들이 기도를 올렸다.

1,300년의 역사를 가진 쓰유노텐 신사


그러나 맛있는 붕어빵과 천년이 넘은 신사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는 얻었지만 내가 도착한 건물은 우메다 스카이 빌딩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 건물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시 우메다 역으로 돌아온 나는 역내 구석진 곳에서 가이드북을 펼쳐놓고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대략 JR 오사카역 뒤편인 듯했다. 나의 방향촉을 믿으며 오사카역 일대를 물샐틈없이 뒤져보았다. 

그러나 좀처럼 내가 생각하는 가운데 부분이 뻥 뚫린 건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던 건물 경비원에게 묻자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레프트, 언더'라며 손가락으로 위치를 가리켰다. 대충 어느 방향인지 짐작은 되었지만 그 주변의 건물들을 바라보아도 내가 찾는 건물 모양새는 아니었다.

여하튼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어가자 제법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걸어가고 있었다.

그 경비원의 말대로 왼쪽으로 이동하자 지하보도가 나왔다. 그곳이 바로 '언더'라는 곳이다. 

드디어 지하보도를 빠져나오자 드높은 건물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그 건물이 아닌 것 같았다. 의심스러운 마음으로 1층 로비로 들어섰지만 관광객을 맞이하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상업건물의 로비였다.

우에다 공중정원이 있는 스카이 빌딩과 그 주변 풍경


여기가 맞나 하고 연신 두리번두리번거렸는데 한쪽에 공중 전망대라는 표지가 보였다. 

나는 약간 안심이 되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마침내 창 밖으로 오사카의 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밤물결 속에 고층 빌딩의 유리창은 발광 그 자체이고 알룩달룩한 붉은 불빛은 검은 공중에 흩어져 있다. 창가 쪽은 안락한 의자들이 줄 지어 있고 연인들은 우두커니 창 밖을 응시하고 있다. 


멀리 칸사이 공항으로 떨어지는 비행기들의 선체가 두둥실 유영하며 소멸하고 있다. 

나는 천천히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오사카 밤 풍경을 감상했다. 그리고 빈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잠시 몸이 흔들리고 시야는 금세 뿌옇게 흐려졌다. 

피부 표면을 따라 취기가 오르고 쓸쓸함이 밀려왔다.

혼자인 여행. 혼자 마시는 술.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도시를 혼자서 여행해야 할까.


다시 비틀거리는 마음을 추슬러 내려가는 곳을 찾는데 내가 올라온 위치와 달리 바지를 걸쳐 놓은 듯한 에스컬레이터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빌딩 아래가 아슬하게 보였다. 그리고 1층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았다. 

여행책자에 본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하지 않는 한 나는 공중 전망대에 오르지 못한 셈이다. 건물 밖으로 나와 두리번두리번 좌우로 고개를 돌려보고 상하로 고개를 돌리며 건물의 신원(?) 확인에 나섰다.

그리고 우메다 스카이 빌딩임을 확인했다. 그렇다.  

그 건물의 정면에 서서 위를 바라보자 빌딩 두 개가 위로 치솟아 끝부분에 도넛 모양의 구멍이 나 있는 모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착각했던 이유는 건물의 정면을 보지 않고 측면만 계속 봤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지하보도를 건너 화려한 밤 풍경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전철을 타고 오사카의 또 하나의 상징 '도톤보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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