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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톤보리,
예술적인 맛의 거리의 간판들

- 쿠리코 런너의 환호 속에 길을 잃다  

역시 전철 출구 방향으로 나왔지만
순간적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헛돌기 시작했다.



길을 건너고 왼쪽 모퉁이를 돌고 다시 모퉁이를 꺾어 돌고 몇 번의 우왕좌왕 끝에 '도톤보리' 앞에 섰다.

그곳이 처음에는 도톤보리인지 알지 못했다. 웬 작은 다리 위에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쉴 새 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심하게 지나가려 했는데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운 '쿠리코 런너'의 모습을 보고 이곳이 도톤보리임을 알았다.

도톤보리의 밤과 또다른 낮풍경


선명한 일장기를 배경으로 마라톤 결승점을 끊은 '그리코'군의 환호하는 모습은 마치 나의 방문을 환영하듯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특별할 것도 없는 광고판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 한 복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자본주의의 쓰레기에 불과하다. 왜 그렇게 사람들은 이곳에서 열광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한국인이 선명한 일장기가 새겨진 광고판에 관심을 가지다니 말도 되지 않는다.


도톤보리강의 돈보리 리버크루즈와 쇼핑 골목


빌딩 벽면의 절반 이상을 가득 채운 오색찬란한 광고 간판들이 춤을 추듯 빛나고 있다.

무엇을 광고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우두커니 서서 휘황찬란한 광고판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어찌 보면 우리네 청계천의 풍경과 유사한 모습이다. 하천을 따라 즐비하게 자리 잡은 음식점과 쇼핑몰.

그리고 사람들은 하천변을 따라 삼삼오오 거닐고 있다.


육중한 돌다리 아래로 내려서자 도톤보리 주변의 광고판이 한눈에 들어왔고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온 강 물결은 네온사인 불빛을 받고 오채 색으로 출렁거렸다.
도톤보리 맛의 거리에 있는 개성만점의 가게 간판들


그리고  초록색의 형광빛 테두리를 두른 도톤보리 유람선이 천천히 지나갔다. 나는 하천 도로를 따라 걸어가자 온몸이 붉은색으로 치장된 문어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타코야키'를 파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이거 하나를 먹기 위해 지루한 줄 모르고 막무가내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도 똑같은 타코야키를 파는 가게였지만 너무 한산해 보였다. 똑같은 타코야키를 파는 것인데 맛이 다르겠냐라는 마음으로 한산한 옆 가게에서 타코야키를 샀다.

그리고 다리 위로 올라가서  천천히 도톤보리의 밤 풍경을 구경하며 타코야키의 달콤한 맛을 즐겼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화려한 도톤보리의 네온사인과 단맛에 사로 잡힌 나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혼자라는 생각도 잊었다. 그리고 나는  도톤보리의 시장통으로 들어섰다.

정말 먹거리의 대향연이었다. 진열 유리창에는 음식 조형물들이 아기자기한 형태로 구미를 당겼고 무엇보다 각각의 가게 특성을 나타내는 간판들이 흥미로웠다. 어떤 것은 하나의 예술 조형물로 보였다. 푸른 껍질이 꿈틀대는 용과 붉은색의 대계, 검은색 황소 한 마리와 귀여운 북어 한 마리가 간판에 걸려있다. 익살스러운 만화 캐릭터들이 간판을 대신하기도 한다.


나는 참치 뱃살로 빚은 초밥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는 초밥가게에서 초밥과 김밥이 섞인 도시락을 하나 샀다. 정말 맛깔스럽게 초밥들이 가득히 채워져 있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섞여 이리저리 흘러가는 대로 돌아다녔다.

휘황찬란한 도톤보리의 상점들


이곳은 국적불명의 판에 박힌 천편일률적인 가게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가장 일본적인 색깔로 가득 찬 곳이었다. 다양한 가게들의 개성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오사카 밤은 즐거웠고 흥미로웠다.

나는 맛있는 초밥 도시락을 빨리 먹고 싶은 마음에 시장통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마치 이전과 다른 세계로 들어선 듯 갑자기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특히 밤이 되니 동서남북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빨리 호텔로 들어가 맛있는 초밥과 김밥을 먹어야 하는데 마음이 초조해졌다.



나는 지하철 역내를 왔다 갔다 하며 호텔로 가는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허사였다.

지하철 출입구로 몇 번을 나오고 들어가며 주변 건물을 두리번거렸지만 난바역에서 호텔을 찾아가던 기억을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역 근처에서 우왕좌왕했을까.

그 순간 오후에 택시를 탔던 승강장이 구세주처럼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빡빡이 운전기사가 운전했던 행로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어느 듯 눈에 익은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내 공항 관제탑처럼 생긴 웅장한 건물을 보자 호텔이 머지않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러나 호텔 방향으로 길을 잡기 위해 지하보도를 내려갔다가 낯선 곳으로 나오게 되자 또다시 동서남북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맛있는 초밥을 먹지 못하고 도톤보리 일대를 헤매고 다녔다


나는 건널목을 건너고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고 주변을 헤매기 시작했다.

지리 감각이 전혀 없는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나는 오사카의 미아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벗어나기 위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기억의 배경들을 끄집어내어 현실의 풍경과 비교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일치되는 공간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강 주변에 들어선 한 음식점이었고 낮에 눈여겨본 기억이 호텔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추적추적 비 내리는 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를 걸어가자 드디어 호텔이 보였다. 이제야 맛있는 도톤보리 초밥 도시락을 시원한 아사히 맥주와 함께 먹게 되었다. 그것이 여행지에서 가지는 작은 행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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