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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고요한 사찰 '니시혼간지'

- 오사카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교토역으로.  천년의 도시를 만나다.


그녀는 여전히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올게요'라는 이별의 멘트를 날리며 한국인 웨이트리스에게 안녕을 고했다.

호텔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교토로 이동해야 한다.

일본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의 하나라고 하는 '금각사'가 금빛 찬란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곧바로 남바 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아쉬운 마음에 호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역시 일본 특유의 깔끔함이 거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기둥마다 온통 재미있는 만화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고 굳게 닫힌 셔터문에는 특색 있고 귀여운 그라피티들이 있다.  

그리고 길 건너 '오렌지 스트리트'로 접어들었다.

다양한 커피숍과 옷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아직 영업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쇼윈도에 전시된  다양한 패션 소품들은 예쁘고 앙증맞았다.

오랜지 스트리트의 다양한 모습들


나는 어젯밤 화려했던 도톤보리를 다시 찾아갔다. 오렌지 스트리트를 빠져나오자 운하는 도톤보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울긋불긋한 화장을 지운 듯한 도톤보리는 민낯을 드러내며 흐린 하늘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운하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 보았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오사카.

잊지 못할 풍경을 기억의 필름에 담아 보았다. 

그리고 다시 대로로 나와 교토역으로 가기 위해 JR라인을 찾았다. 난바역 매표소에서 교토 교통편을 고민하고 있을 때 어김없이 완장을 찬 도우미 승무원이 나타났다. 그녀는 환승역까지 꼼꼼히 일러주며 개찰구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그 노선은 무려 1시간 30분이나 걸리는 멀고도 먼 완행 전철길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행로는 새로운 풍경을 가져다 주었고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                      



나는 오사카에서 교외로 빠져나가는 완행 전철 안에서 일본인들의 일상생활과 철로 주변의 가옥들.

그리고 5월 봄날의 시골 풍경을 조용히 감상할 수 있었다. '야마토사이다이치' 환승역에서 다음 전철을 기다리며 기린 맥주를 들이켰다. 샛노란 전철이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교토행 완행 전철을 탔을 때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맥주 탓이었을까? 외롭고 쓸쓸한 그 무엇. 마주 앉아 있는 여인을 보며 울고 싶어 졌다. 높고 외로운 사람이 여기 당신의 나라에서 방랑하고 있다고. 여전히 혼자인 나.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전철은 내 고독을 안고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교토 타워가 보였다.

일본 천년의 수도답게 수많은 관광객들이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예약한 호텔을 찾기 위해 주변 약도를 펼치며 호텔 위치를 가늠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호텔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나 금방 방향을 잃어버렸다. 구글 맵도 작동되지 않는 상태였다.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나는 택시를 탔다.

모든 여행의 출발지인 교토역과 밤이면 더욱 빛나는 교토타워


그리고 호텔 약도를 보여주었다. 잠시 머뭇거리더니 기사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대략 10분쯤 달린 듯했다. 이 거리를 걸어갈 생각을 했다니 참 무모한 용기였다.

'스마일' 호텔에 도착하여 체크 인을 하고 배낭을 맡기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 그쳤던 비는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거대한 사찰인 '니시혼간지'로 가기로 했다.

근처 패밀리 마트에서 일일 승차권을 500엔에 구입을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탔는데 아까 왔던 방향과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은가? 나는 다시 내려 ‘니시혼간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빗길을 걷는 것도 오래된 고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였지만 길은 멀었다. 그리고 비는 거칠게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니시혼간지'. 정말 거대한 사찰이었다. 그 누가 일본을 축소지향적인 나라라고 했던가.

만약 이 사찰을 본다면 그 말은 고쳐야 할 것이다. 

오래된 목재의 거무튀튀한 색과 황금빛을 띤 투구 모양의 정문은 거대했다. 마치 속계를 떠나 초월적 세계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 단절과 연결의 매체인 석교를 지나 경내로 들어갔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니시혼간지. 긴 마루 회랑과 아름다운 황금빛 전등 


정말 거대한 어영당이 400년 이상된 늙은 은행나무와 함께 서있었다. 비는 내려 경내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사각사각 자갈을 밟는 소리마저 고적함을 깨는 소음처럼 들렸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섰다. 

마루를 밟는 느낌이 그 옛날 시골집 대청마루를 밟는 느낌이었다. 

미세하게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마루 밑에서 올라왔고 넓은 마당에는 비가 여전히 내렸다. 

나는 아주 천천히 걸으며  발바닥 전체로 사찰의 역사를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어영당(아미다도) 내부로 들어갔다.  

부처가 없는 본당은 어두웠으며 중앙에는 황금빛의 실내 등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정갈하게 펼쳐져 있는 다다미 장판이 눈에 띄었다.

나는 뒷 좌석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오랫동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눈을 뜨니 수학여행을 온 몇몇의 학생들이 단체로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는지.


기도는 성찰이며 염원을 향한 고요한 출발이다. 새로운 인식은 새로운 마음을 먹게 한다.


다시 본당을 나와 바깥을 바라보니 새삼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다시 넓은 마당으로 나와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걸어보았다. 그리고 기념품 판매점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비 오는 사찰 마당을 조용히 응시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그저 풍경과 일체감을 이루는 순간 여행의 감동은 다가온다.

일본의 건축가 이토 츄우타가 설계한 혼간지 전도원과 십이간지 석상, 그리고 주변 골목길


'니시혼간지' 맞은편 골목에는 불교와 관련된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는데 마치 인사동 거리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근대식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혼간지 전도원'이다. 원래는 보험회사 건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붉은 벽돌과 흰 대리석으로 쌓아 올린 건물은 매우 견고해 보였고 웅장했다. 

12 간지 동물들이 새겨진 낮은 돌기둥이 울타리 역할을 하며 건물을 감싸고 있었다.

맞은편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니시혼간지'와 일본 근대건축물인 '혼간지 전도원' 건물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교토역으로 가 윤동주와 정지용이 젊은 날 다녔던 도시샤 대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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