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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누구냐?

-  박수현과 이상재 전의원

“운명의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바로 공주 지역구의 이상재 의원님이십니다. (중략) 제가 정치판을 타도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대상으로 바라본 첫 번째 계기가 이상재 의원과의 만남이었습니다(anbtv 인터뷰 중)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이하 명칭 생략)과 이상재 전 의원과의 관계를 정확히 알아내기란 난공불락의 철옹성과 같다. 정치적 출생의 비밀을 품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 수성과 함락, 열림과 닫힘의 공방전 속에서 박수현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더불어 민주당 충남지사 후보 경선의 관전 포인트이다.

정체성 의혹의 창칼을 가지고 공격하면 그는 겁박과 변명, 무관심의 방패로 논쟁의 전선에서 급히 물러나고 만다. 그리고 친문재인과 친안희정이라는 방어막을 친 채 '아름다운 경선'을 주장하며 과거사 논쟁의 화살을 피하고자 한다. 

박수현의 충남도지사 후보 출마와 함께 본격적으로 촉발된 정체성 논쟁은 SNS 온라인에서 난타전을 한바탕 벌이고 난 후 이제는 저잣거리 대폿집에서 육자배기 마냥 여러 사람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다. 

박수현은 이상재 전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 수차례 언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생명의 빚을 졌다. 이상재 전의원의 보좌관을 한 적이 없다. 제 부모와의 인연으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이상재의 역사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지역사업과 관련된 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

며  세계일보(2018.2.5)와 디트뉴스 24(2018. 2. 25)에서 보도하고 있다.


박수현의 최초 해명은 두리 뭉실한 '생명의 빚'에서 시작하여  상대방 후보 측의 지속적인 의혹 제기로 인해 조금씩 구체적인 관계를 해명하고 있지만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 들고 있다.

한마디로 이상재 전의원과는 보좌관 같은 공적 관계는 없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 간의 사적관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박수현과 이상재 전의원 간의 관계는 왜 중요할까?

그것은 박수현의 정체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바로미터 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정체성이란 공공의 선을 실현할 수 있는 '신뢰의  얼굴'이며 면종복배식 배신과 거짓이 난장판을 벌이는 정치에서 참된 정치인을 가려내는 도덕적 기준이다. 그렇다면 이상재 전 의원은 어떤 사람인가?



이상재 전의원은 1959년부터 1980년까지 육군 보안사령부에 근무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있던 보안 사령부의 언론대책반장으로 근무하여 신군부 언론보도 검열과 언론사 통폐합 등을 관여했다. 특히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K-공작을 진행한 5공 실세이다. 일명 '강기덕 전무'라고 불리던 사람이다.

이후 12대 총선(민주정의당), 14대 총선(민주자유당)에 당선돼 민정당에서 주요 보직을 맡은 인물이다. 그가 자행한 언론 학살은 인천일보(전성원의 사람 냄새. 2017. 11. 14)에 잘 나타나 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앙지는 7개에서 6개로, 지방지는 14개에서 10개로, TBC는 KBS로 흡수 통합시키는 공작을 자행했으며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언론인 900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고 이후 언론인 1,500명을 해직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게 전두환의 부관 출신이었던 이상재는 K- 공작을 통해 보도 검열단의 조정 감독,  언론사 간부 사찰, 언론인의 회유와 공작 등을 자행했다. 특히 1980년 광주학살에 대한 왜곡 보도를 일삼았고 전두환을 '참군인, 위대한 지도자'라며 이미지 조작을 하며  신군부 세력들이 집권하는데 앞장섰다.   

1980년 언론통폐합을 기획하고 실행한  허문도씨와 이상재 전의원 (사진 연합뉴스 제공)
결국 전두환이 광주학살의 주범이라면 이상재는 언론 학살의 주범인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전두환과 이상재 전의원에 의해 죽어간 광주 시민과 해직 언론인들을 생각한다면 '생명의 빚'을 운운하며 유야무야 넘어가고자 하는 그의 변명은 공당의 광역후보로서 적절치 않아 보인다.



분명한 사실이다.

박수현은 2016년 9월 반부패 방송인 anbtv와의 인터뷰에서 이상재 전 의원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운명이란 무엇일까?

운명이란 천명에 의한 만남. 즉 하늘의 인연으로 맺어진 필연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렇다면 박수현의 운명이란 장삼이사들이 말하는 평범한 만남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이상재 전의원은 아주 특별한 정치 입문의 대부인 셈이다.


너는 서민 보는 안목이 있다. 정치 한 번 안 해 볼래? 

금강뉴스(2016. 6. 30)에서 정치 입문을 권유한 이상재 전의원과의 일화를 전하고 있다.

박수현의 운명이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이 만든 구민정당 출신의 이상재 전의원이라면 문재인의 운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은 전두환 5공 세력을 불구대천지원수라 여기며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대상들이다. 정말 박수현이 친문재인과 친안희정의 입이라면 이상재 전 의원과의 관계를 명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박수현이 이상재 의원 보좌관 출신이라는 사실은 여러 언론에서 보도된 사실이다.


민주당 박수현 당선자(공주)는 구민정당 실세였던 이상재 의원의 보좌관직으로 국회 생활을 시작했다

충청투데이 (2012. 4.19)


과거 민정당 실세였던 이상재 전 의원의 보좌진으로 국회 생활을 시작한 박당선자는 낙향 후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오늘의 영광을 위해 10년을 하루같이 보내왔다

대전일보(2012. 4. 23)


한편 2018년 3월 1일 현재, 금강일보 2016년 6월 14일 자 신문에는 아래의 밑줄 친 기사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 그러나 2017년 11월 21일 출력 당시에는 분명 명시되어 있었다. 박수현 측의 외부 압력이 있었는지 해당 신문사의 자발적인 결정인지 알 수 없다.

박수현 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상재 전의원이 14대 국회의원으로 재임 시 보좌관을 맡아 정치권에 입문한 바 있다.

금강일보(2016. 6. 14)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은 2005년 4. 30 재보선 당시 공주 연기 열린 우리당 후보 경력 시비에 대한 소명자료에서 박수현이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3년부터 1996년까지 14대 국회 기간 중 우리 지역 출신 이 모 의원실에 실제로 근무하면서 지역을 위한 정책 보좌관을 역할을 수행했고 15대 국회 기간 중에는 대전의 모 의원 보좌관에 이어, 97년부터 2002년까지는 대통령 후보였던 모 의원의 정책보좌관으로 근무했다.

뉴스타운(2005. 2. 17)




이 뿐만 아니라 주간 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보좌관 경력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이상재 전 의원을 비롯 이인제 특보 등 10년 넘게 국회에서 활동했다.

주간동아(2005. 4.4)



정치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시비의 끝은 불행하게도 패배와 몰락이었다. 대표적인 정치인이 이인제 전의원이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새천년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그는 당원들의 정체성 시비에 휘말려 대세론을 굳히지 못한 채 내부 경선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민자당 출신의 과거 전력은 당심과 민심을 얻는데 역부족이었다. 이제 이인제 캠프의 출신 박수현도 과거 전력 때문에 정체성 시비에 휘말리고 있으니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3월 만세 운동에서 4. 19 혁명, 광주를 넘어 6월 항쟁과 촛불 혁명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들은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 왔다.  국민들의 정치 수준은 요설과 같은 언변과 화려한 변검술 정치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진정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과 관계없이 경거망동하지 않는 시종일관의 자세로 국민을 향해 나아가는 참된 사람을 원한다. 정체성이란 그런 것이다. 다양한 정치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일관된 철학과 가치관으로 본인의 정치적 사명을 완수하는 용기 있는 자이다. 

자신만의 고유한 정치적 색채를 지켜내며 우직한 황소의 걸음으로 걸어가는 담대한 정치인이 그리운 계절이다.

과연 누가 될 수 있을까? 박수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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