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이게 가능하다고?

패션지 기자에서 보험인으로

by 집필앤하이드

생각이 너무 많을 땐 글이 쓰고 싶어 집니다.

아니, 생각이 문장으로 이루어질 때도 많습니다. 10년간 몸담았던 업계를 떠나고, 이직을 결심했을 때 계속해서 자문했던 건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였습니다. 그 질문에 "YES!"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직할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잡지기자로서의 커리어를 연장할 수 있는 곳도 있었고, 전혀 관련 없는 곳도 있었는데 닥치는 대로 면접 기회가 주어지면 봤습니다.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는 직업이라 가능하기도 했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라 대다수의 면접이 줌으로 진행된 덕도 본 셈입니다. 보험사로 이직이 결정됐을 때, 다른 누구보다 가장 의아했던 건 제 자신이었습니다.

"이게 된다고?"

잡지 기자, 그것도 패션지 기자가 얼마나 헛똑똑이인지는 업계 사람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저는 소위 말해 '명예직'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요, 그도 그럴게 잡지 기자들은 바이라인에 들어가는 내 이름을 걸고 일을 하기 때문에 대충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에는 목숨을 걸지만 그 외 다른 것에는 관심이 거의 없거나 무지합니다. 여기에서 '그 외 다른 것'이란 돈, 연애, 사내 정치 등을 포함한 자기계발서의 주제로 혹할만한 것들입니다.


보험사로 이직을 한다는 것은 제 삶의 무게 중심을 그동안 '그 외 다른 것'으로 치부했던 것을 챙기며 살아보겠다는 다짐의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매달 쳇바퀴 돌아가듯 마감을 중심으로 내 시간은 움직였고, 일이 내 시간을 침범해도 언제나 용인했던 삶을 바꾸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다. 남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삶, 내가 좋아하는 영화, TV, 책 등을 보면서도 섭외나 아이템을 고민하지 않는 삶, 퇴근 이후에 회사나 일 고민을 안 할 수 있는 삶, 마감에 쫓기지 않는 삶...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일하는 만큼 월급이라는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삶..

결과적으로 그 몸부림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는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인간은 자신을 온전히 다 알게 되는 시점은 관뚜껑 닫기 직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하던 삶을 살게 되면 만족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내가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이었나 라는 자괴감이 들면서, 동시에 나는 일에 대한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보험 아직도 잘 모릅니다.


입사한 지 5년이 다 돼 가지만, 영업했던 사람들이 하는 회의에 참석만 해도 외국인이 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외국어를 습득하듯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하게 귀에 꽂히는 얘기들도 더러 있습니다. 자꾸만 나와 '그들'이라는 말로 선을 긋던 제가 어느덧 '그들'의 범주에 속해있던 이와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문화의 회사 생활을 했던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 저에게는 너무나 특별하고 큰 일처럼 느껴졌던 시간들. 아직도 그 시간을 통과하는 중이지만 더 늦기 전에 잘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왜 세상엔 '보험설계사 아줌마'가 이토록 많은지, 보험 영업하는 사람들은 이 더위 속에서도 왜 그리 꿋꿋하게 양복을 차려입는지, 세상에 보험 상품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그 질문과 답을 저만의 문장으로 써 보려고 합니다. 보험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나를 구분 짓지 않으려 합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으면서도 진실하게 쓸 수 있는 시점이 됐다는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