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이자, 삶의 길이다
나의 어린 시절엔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가 요즘처럼 흔치 않았다. 아니, 어린 내 눈에 잘 띄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친구들 사이에서 ‘카더라’ 뉴스처럼 누구는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랑 같이 산다더라, 정도의 이야기만 흘러들었을 뿐이다. 그런 얘기가 꼬리표처럼 달린 친구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고정관념과 어딘가에서 보고 배운 통념의 프레임으로 바라보곤 했다. (역시 나쁜 건 빨리 배운다. 정말이지 부끄럽다)
아무리 밝은 표정을 지어도 어린 내 눈에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두움. 부모가 있어도 생길 수도 있는 그 어두움을 내가 뭘 안다고 그렇게 봤을까?
아무튼 공교롭게도 그런 친구들은 아빠가 아닌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고, 엄마들은 모두 하나 같이 사회활동을 했다. 내가 어렸던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전업주부’가 가장 흔한 형태였고, ‘일하는 엄마’는 희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말도 빠짐없이 일하는 우리 아빠가 벌어오는 소득보다, 그들의 엄마가 벌어 들이는 소득이 어쩐지 더 커 보였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 MP3 플레이어(혹은 CD플레이어), 액세서리, 학용품 등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또한 어린 나의 고정관념이겠지만 사회 생활하는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가 이룬 가정의 소득이 싱글맘의 그것보다 높은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한참 후에 알고 보니, 친구들의 엄마 대다수는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30대 후반이 돼 보험사에 취업해보니, 그때 그 친구들의 엄마들이 왜 많고 많은 직업 중에 보험설계사가 됐는지 알 것 같았다.
보험설계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딴다면 누구나.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커리어 경력이 없거나, 경력이 단절된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초기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에 비해 꽤 큰돈을 벌 수 있다. 딱 잘라 이들의 월수입을 얼마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순 없지만, 경력을 고려한다면 큰돈이 맞다. 마음만 먹으면 마트 캐시어 보다 10배는 더 벌 수도 있다.
생활력이 강한 여성들이라면 도전해 봄직한 직업이다.
언젠가 남편과 부부관계 개선을 도와주는 TV프로그램을 보다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 : 어쩜 저렇게 남편들이 일을 안 하냐. 저런 집이 흔한가?
남편 : 음.. 내가 말 안 했나? 보험설계사의 남편 중에 저렇게 무직인 사람이 되게 많아.
나 : 아, 정말?
남편 : 응. 한 푼도 벌지 않고 집에서 저렇게 빈둥거리고, 아내가 번 돈으로 생활비를 쓰는 거지. 그래서 그런지 보험설계사들 중엔 멀쩡하게 출근해서 일하는 남자를 굉장히 특별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보험설계사들이 그들에게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많지.
나 :!!!!
내 세상이 얼마나 비좁은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난 후, 나는 더욱더 보험설계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한다.
보험설계사들과 함께 일하고 있진 않지만, 그들과 소통할 일이 꽤 자주 있다. 대다수의 경우엔 예의 바르고, 수줍음도 많다. 가끔 우악스럽게 항의와 질문을 라는 통해 당황할 때도 많지만 내 기억에 더 많이 남아 있는 건, 처음 본 사람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며 덕분에 많은 걸 알았다고 90도로 인사하는 분들도 많다.
보험설계사 대다수는 5~60대 이상이다.
그들 중엔 70대 이상도 있다. 지점에 꼬박꼬박 출근해 교육도 받고, 설계사들과 교류 하기도 한다. 영업, 즉 계약을 꾸준히 성사시켜야 하는 업의 특성상 그들도 여느 설계사들과 마찬가지로 영업에 대한 압박은 받는다. 한 지점을 운영해 봤다는 지점장은 나이 든 설계사들이 지점을 마치 ‘노인정’이나 ‘마을회관’ 삼아 출근 도장을 찍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노느니, 일한다는 생각이라고. 한 번씩 영업 압박을 받는 지점장이 나이 든 설계사들을 붙들고 계약 건수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들은 그제야 자기 자식들을 움직인다고 한다.
그러면 비교적 가입 부담이 적은 연금보험 같은 계약이 하나씩 들어온다고.
“자식 입장에선 자기 어머니가 그래도 꼬박꼬박 어딘가에 출근 도장 찍는 게 마음에 놓이는 거죠. 노인정이나 회관 회비 내주듯 자식들이 한 번씩 그렇게 계약을 해줘요. 그러면 지점 입장에서도 손해 될 건 없죠. 어디서 사기당하고 오는 것보단 훨씬 낫잖아요“
일리 있는 말이다.
보험설계사 중에서는 ‘여왕’이 존재한다. 설계사 중에서도 가장 영업 실력이 좋은 이들이다. 보험사에 들어오기 전엔 미처 몰랐는데, 설계사들이 출근하는 지점은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많다. 여왕이 되려면 전국에 있는 수 만 명 중 열 손가락엔 꼽혀야 한다. 보험사마다 돋보적인 여왕은 존재하며, 뽑힌 여왕을 축하하는 자리는 ‘시상식’이 진행된다.
시상식의 규모는 방송국에서 치르는 연말 시상식의 1.5배 규모다. K팝 가수들이 한 번씩 공연하는 공간을 빌려서 1년에 한 번 여왕과 여왕 지망생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들만 해도 1천 명이 넘는다. 그들의 표정과 자태에는 ‘내 손으로 돈을 버는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하다. 설사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을 만큼 꼬부랑 할머니라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월 1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내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연봉 1억은 너끈히 넘기는 능력자라는 것이다.
물론 개중엔 적절치 못한 방법으로 수입을 얻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조직에 그런 불순물 같은 사람이 어디엔들 없겠는가?
그러니 그들은 자신이 이룬 업적에 마땅히 보상받고, 대우받아야 한다.
때론 그들이 무대포처럼 느껴질지라도, 나는 같은 생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열심히 응원하고 싶다.
사람들이 갖는 보험설계사 아니, 보험아줌마의 이미비그 어떤지 잘 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묘하게 보험을 파는 사람. 그러나 그들이 다수는 아니다.
새로 나오는 상품에 대해 부단히 알아보고 공부해야 하며, 설계사를 믿고 가입한 고객이 보험 혜택을 잘 받게 하기 위해 잘 유지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교육을 받는다.
최근에 만난, 고소득 설계사는 말했다.
“보험설계사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단순해요. 회사에서 하라는대로 성실하게 따라하면 돼요. 공부하라고 하면 하고, 전화 돌리라고 하면 하면 돼요. 오직 성실만이 답이에요”
교과서만 보고 수능 만점 받았다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게 진짜 그들의 얘기다.
세상엔 보험 아줌마들이 정말 많지만 진짜 보험설계사는 많지 않다. 회사는 진짜 보험설계사를 만들려 애쓰며, 그 방향으로 가려는 진짜 여왕 지망생들도 많다.
그러니 보험설계사를 계속해서 보험 아줌마라 칭하는
건, 30년 전 이혼한 부모를 둔 친구를 바라보는 내 시선과 같다. 세상은 변했고, 보험설계사도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