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팀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J지점장이 맡고 있던 지점의 관할 지역이 바뀐 일이었다.
보험사에서 지점장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하다. 소속 설계사들의 활동을 독려하고, 새로 출시된 보험 상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을 진행한다. 다시 말해 지점장은 ‘사람 관리’와 ‘교육’을 책임지는 관리자다. 성과 평가는 지점의 규모와 실적에 따라 이뤄지며, 성과가 좋을 경우 급여 외에 ‘오버라이딩’이라는 성과급을 받는다. 지점 운영이 잘될수록 이 오버라이딩은 월급의 두 배에서 많게는 열 배 이상까지도 벌어진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큰 만큼 보상 역시 확실한 구조다.
이번 인사이동 이전, J지점장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오버라이딩을 받아오던 인물이었다. 회사와 팀장의 정확한 의중을 알 수는 없지만, 설계사 관리라는 명목으로 지점을 자주 비우고, 본사 지침의 빈틈을 활용해 계약을 성사시키는 방식이 문제로 지적된 듯했다. 흔히 말하는 ‘모럴 해저드’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 J지점장은 기존에 혼자 가져가던 오버라이딩을 후임 지점장과 나누어 갖게 됐다. 불만이 없을 리 없었다.
“아, 진짜… S지점장, 사실상 내 덕에 오버라이딩 적잖게 받을 텐데. 그걸 반씩 나눠서 받으려니 기분이 좋겠어요?”
얼마 전 지점에서 만났을 때 J지점장이 내놓은 푸념이었다.
보험사에는 1년에 몇 차례, 성과가 뛰어난 설계사와 지점장을 대상으로 한 초청 행사가 있다. 국내나 해외에서 열리는데, 일종의 동기부여를 위한 본사 차원의 포상 이벤트다. 이 행사에 초대된다는 건 업계에서 꽤 명예로운 일로 여겨진다. 지점장들은 이 행사를 목표로 설계사들의 활동을 독려하고, 실적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J지점장은 이전 지점의 성과 덕분에 해외 초청 행사 대상자였다. 하지만 지점 이동으로 인해 행사에 함께 갈 수 없게 됐고, 그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새로 부임한 S지점장과는 여행에 참석할 수 없다며 설계사들이 집단으로 불참 의사를 밝혔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은근히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설계사들이 그러더라. 내가 안 가면 자기들도 안 가겠다고. S지점장 난처해질까 봐 내가 따로 연락해서 그냥 가라고 했어. 뭐, 나한테 의리 지켜서 뭐 하겠어. 기특하긴 하지만, 그게 뭐라고~ 갈 수 있을 때 가는 게 좋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시던 음료를 뿜을 뻔했다. 모두 다 큰 성인들이 지점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집단행동을 하는 게 과연 ‘기특할’ 일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새 지점장에게 일종의 항의를 하거나, 기선을 제압하려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문득 학기 중 갑자기 휴직한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온 선생님에게 일부러 퉁명스럽게 굴던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과연 그때의 행동을 담임 선생님은 기특하다고 여겼을까. 설령 그렇게 느꼈다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게 4, 50대 성인들의 대화라는 점에서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지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함께 S지점을 다녀온 C과장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좀 유치하지 않아요?”
그러자 C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치하죠. 그런데 이런 행동은 설계사들이 새로운 지점장을 상대할 때 흔히 쓰는 방식이에요. 초반에 힘의 균형을 잡으려는 거죠. 설계사마다 강점이 다르거든요. 어떤 사람은 계약을 잘하고, 어떤 사람은 신입 설계사 리크루팅을 잘해요. 지점장이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설계사들의 이해관계가 갈리죠. 자기에게 불리할 것 같으면 초반에 이렇게 기싸움을 하는 거예요.”
그는 이어 말했다. 특히 지점에서 영향력이 큰 ‘팀장급 설계사’를 초기에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S지점장은 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 남편은 마치 무용담을 들려주듯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지점장 할 때는 말이 많은 팀장에게는 직접 편지를 썼고, 이른바 이인자에게는 따로 자리를 마련해 식사를 했어. 누구 한 사람 편을 드는 모습을 보이면 조직이 더 꼬이거든. 겉으로는 모두에게 공정하고, 뒤에서는 각자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는 균형이 필요해.”
평소 눈치가 빠르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쓰는 남편의 모습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동시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을 유난히 피곤해하는 이유도 이해가 됐다.
보험 영업이라는 세계는 결국 사람을 다루는 곳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