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감정
요즘 예전에 개봉했던 영화를 다시 보고 있다.
타이밍을 놓쳤거나 한 번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화.
그중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있다. 펑펑 울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이 영화를 꺼내봤다.
90대 노부부의 이야기.
예전에 봤을 때도 그 애틋함이 전해져 마음이 찡했는데, 이번에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예전에 봤을 때는 뭉뚱그려진 채로 퉁쳐졌던 한 장면이 선명하게 포착됐다.
노쇠해진 할아버지 곁에서 뜬눈으로 밤새우던 할머니가 겨우 잠들자,
연신 기침하며 괴로워하던 할아버지는 푸석푸석한 오랜 연인의 얼굴과 흰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다.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과 할머니의 건조한 피부가 맞닿는 소리, 할아버지의 애틋한 표정, 거친 숨소리를 내며 잠든 게 느껴지는 할머니의 좁은 어깨, 두 분만큼 낡은 이불과 장판마저 충만한 감정이 느껴지던.
무수한 해피엔딩의 로맨스물을 봤고, 또 앞으로도 볼 테지만, 이 영화만큼 비현실적이고도 허무맹랑한 로망을 나에게 심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1.
30대 중후반의 입사동기. 1년째 연애 중인 그는 조만간 결혼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나이가 있으니까.."라는 말을 덧붙이며.
남자 친구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그가 조금 의아했다.
나이를 떠나 1년 정도의 관계라면 한창 좋다가도 싸울 때는 서로 미워하는 시기 아닌가?
그러자 그는
"뭐, 싫진 않으니까 만나는 거겠지?"
라고 말했다.
적지 않게 당황했다.
말주변이 없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자 친구와 주로 싸우는 이유를 들으니 나는 더욱더 갸우뚱했다.
"남자 친구가 밥 먹을 때, 자꾸 뭘 흘려. 그게 너무 지저분해 보여서 보기 싫어"
누군가가
"대리님, 그 정도면 정 떨어졌을 때 아닌가요?"라고 덧붙였다.
웃음으로 때우던 그는 양가 등쌀에 못 이겨 올봄에 결혼을 한다고 깜짝 발표를 했다.
"대충 하지 뭐.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때부터 싫지 않다는 감정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됐다.
싫지 않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비겁한 대답인가?
좋지 않다, 싫지 않다 라는 감정은 싫다와 좋다 만큼 극단적이진 않지만 아주 미묘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결혼한 지 10년째 됐다는 한 차장님은 인생의 목표가 아이를 다 키워놓고, 아내와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결혼할 때도 그런 마음 일리는 없었을 것이다.
연애 시절 때를 묻자 그 역시 말했다.
"싫지 않았지"
무엇이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지 들어보면 한편으로 이해되기도 하다.
"보통 딸은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고 하잖아. 나는 내 딸들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겪고 있는 걸 보며, 그렇게 될까 봐 걱정돼. 그래서 아내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당장은 너무 어리니까,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이해할 수 있겠지"
10대 때 만나 90대가 될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세월의 흔적과 함께 늙어가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 몇십 년 동안 한 사람과 살 수 있겠냐고 말하는 것은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적정한 온도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과 만나, 적절한 수준으로 무난한 부부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파트너십으로 똘똘 뭉친 부부야 말로, 이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부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같은 사랑을, 결혼을 꿈꾼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애틋하게 대할 수 있다는 건, 젊은 시절에 그만큼 서로의 감정을 다치지 않게 할 만큼, 최소한의 예의, 의리를 지켰다는 의미일 것이고,
죽는 순간까지 상대를 걱정하고, 배려한다는 건, 자식보다 배우자를 더 사랑한다는 말일 것이고,
"할아버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불쌍해."라며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되뇌며 울먹이는 건 죽어서도 만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일 테니까.
이 모든 것은 결코 싫지 않은 감정만으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난 충만한 사랑을 꿈꾼다.
너무 이상적인가?
이래서 못 만나는 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