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연애, 그리고 엔딩
저에겐 오래된 연인이 있었습니다.
7년을 조금 넘게 사귄 남자 친구. 우리가 결혼한다고 하면, 누구도 의아해하지 않을 시간을 보냈고, 나이도 먹었지만, 그는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저는 이별을 선언했습니다.
그 상태로 지속되는 관계는,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독이 된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죠.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를 원망했고, 지독히 미워했습니다.
헤어질 때는 그 어느 때보다 그랬죠.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만큼, 헤어지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기어코 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 저는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말을 했어요.
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벌을 받고 있는 것이고, 나는 그걸 너무나 바란다고.
그리고 다음날 사과의 문자를 남겼어요.
지독한 말을 내뱉고도, 그 말이 그대로 실현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길 바랐지만, 불행하길 바랐던 건 아니었으니깐요.
그리고 3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헤어진 직후에는 미움 때문에 그의 연락처도 모두 차단했습니다.
그 사람의 근황을 알 수 있는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었고, 설사 있다 해도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그렇게 차단하는 행위마저도 내가 그에 대한 미련을 갖는 거라 여기며 차단을 풀었죠. 그리고 성의 없는 이름으로 저장해놨습니다.
그 사이 '발신제한표시'로 전화 몇 번이 온 적이 있는데, 말하지 않아도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알지만 모른척했죠.
그리고 어제 뜬금없는 시간에 전화가 왔습니다.
화면에 좀처럼 뜬 적이 없는 그 성의 없는 이름의 전화.
잔뜩 술에 취한 그는 울먹이고 있었고, 이내 곧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너는 내가 그렇게 상처 줬는데, 왜 전화를 받아..
난 네 말 대로 불행하게 살고 있어.."
그리고 이어진 말.
그는 저와 헤어지고 두 명의 여자를 만났고, 두 번째 여자와 결혼을 했다더군요.
나와는 그토록 어려웠던 게 누군지 알 수 없는 그녀에겐 무척 쉬웠다니.
놀라움과 배신감, 당황스러운 감정이 가득했어요.
결론적으로 그는 후회하고 있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의 남편이 된 그 사람을 애써 상상하려 해도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좀처럼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던 그가, 어떤 이유로 그런 결심을 하게 됐는지 궁금해하는 건 오지랖이겠죠.
진짜 남의 사람이 된 그가 서럽게 우는 걸 보며, 걱정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것이겠지요.
최근에 옮긴 회사가 위치한 곳은, 그의 일터와 꽤 가깝습니다.
그래서 종종 그를 생각했어요.
혹시나 여기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그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쓸데없는 상상을 했습니다.
미련하다 하겠지만, (그는 당연히 결혼 할리가 없을 테니) 재회를 하게 된다면 분명 우리에겐 연결돼 있는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의 결혼 소식에, 저는 진짜 끝, 상황 종료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의 남편이 된 그와 다시 만날 것을 상상하는 것마저도 불순하고, 잘못된 거라 생각하니깐요.
다시는 그의 전화에 대해, 그와의 추억에 대해 입 밖으로 내놓지 않으려 합니다.
입 밖으로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마음이 어지러울 테니깐요.
지금까지 그랬듯, 앞만 보며 살 겁니다.
그는 남은 여생 내내 후회하며 살라고 하지요.
제가 알 바 아닙니다.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