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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May 15. 2024

지난 연애를 애도하며

결혼 3개월 전

별로 신통치 않았던 것 같은데, 2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점쟁이의 말이 있다.


아직 연애에 서툴던 20대 초반, 난생처음으로 점을 봤다. 점괘는 미신일 뿐이라며 돈 아깝다고 맹렬하게 비난했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호기심으로 본 타로점과 사주점 경험담을 늘어놓았다. 덩달아 돈 2~3만원 가량의 복비를 내고 사주점을 봤다. 다른 말은 사실 별로 기억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흘러도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말이 자꾸 떠오른다.


"스스로도 잘 알 거예요. 인생에서 남자가 별로 없어"


여중,여고, 거기다 여대까지 입학한 나에게는 사명선고와도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이 자극제가 된 것인지, 나는 부단히 교외 활동에 매진했다.

어떻게든 '썸' 찌꺼기라도 만들어 보려 애썼다.

썸이든 짝사랑이든 내가 애정을 줬던 남자들의 면면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꽤나 박애주의자였던 것 같다.

사랑에 대한 특별한 로망이 있다기보다는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연애를 하고 싶었다. 대학시절엔 연애 횟수가 스펙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꽤나 범생이었던 나는 대학 가면 살 빠지는 건 물론 이뻐질 거라는 어른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메이크업 스킬이나 스타일링하는 법도 스무 살이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웬걸, 대학교에 입학하고 1년은 나에게 고등학교 4학년과 같았다. 다만, 남녀공학을 다녔던 친구들은 뭔가 다르긴 달랐다. 그들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첫사랑을 시작했고, 첫 이별까지도 마스터했다. 세상에 연애를 하는 고등학생이라고? 사랑을 하면서도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신입 OT때 만난 친구가 첫사랑과 첫 키스를 장장 3시간 동안 했다는 얘기에 나는 참으로 유치하고, 원초적인 질문을 해댔다.


입술 불지 않아?

침이 섞여서 좀 더럽다 생각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볼까봐 걱정되진 않고?


한 번도 건너보지 않은 그 강을 건넌 친구에게 나는 이윽고, 그 다음 질문을 했다.


"다 하고 이후엔 어떻게 됐어?"


그 질문에 좀 김새는 답이 돌아왔다


 "어떻게 되긴, 각자 집에 갔지~"


정확하진 않지만, 우리 또래가 고등학교 때 연애를 했다면 대부분 스킨십의 종착지는 키스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섹스만큼은 대학생이 된 이후로 미뤘던 것 같다. 아마도.


연애 경각심을 잔뜩 안고, 대학교 2학년이 돼서 나는 부랴부랴 살을 빼고 짧은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소녀보다는 소년의 모습으로 여고를 누렸던 내가, 소녀의 모습으로 여대를 활보하고 다녔다.


그렇게 내 첫 연애는 21살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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