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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꼬투리 May 21. 2024

스물한 살에 첫 연애를 했다

결혼 3개월 전

나는 21살에 첫 연애를 했다.


첫 연애를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무조건 그 상대와 1년, 즉 사계절은 함께 보내겠다 결심했다.


그때 내가 즐겨봤던 잡지 인터뷰에 아마도 영화배우 전도연 님이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사계절을 다 겪어봐야 한다고. 꽤 멋있는 말이었던 터라 기필코 그런 연애를 해보겠노라 다짐했다.


여대 1학년 생은 고등학교 4학년과 같다. 자기를 꾸밀 줄도 모르고, 이성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연애 한 번도 안 해본 여중-여고-여대 출신인 나에 한정된 데이터이다)

이성을 만나면 저절로 목이 뻣뻣해지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남녀공학 대학으로 들어간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때 연애를 시작한 친구 중 한 명이 본인이 활동하고 있는 학교 사진 동호회에 복학생 오빠를 나에게 소개해줬다.


만나기 전에 사진을 주고받았는지,

연락처는 어떻게 주고받았는지,

사전에 서로의 이상형은 물어봤는지,

기억나진 않는다.


어찌어찌 그의 학교 앞에서 나의 첫 연애 상대인 R을 만났다. 당시 소개팅 메뉴로 전형적인 '스파게티'를 먹기 위해 '소렌토'를 갔던 것 같다. 대화는 괜찮게 흘러갔다. 나의 음악적 취향을 묻는 그에게 나는 윤종신이 좋다고 했다. 그는 의아해하며 열심히 취향의 방향을 캤던 것 같다. 뻔하지 않아 좋았던 건지, 뻔하지 않아 호기심이 일었는지 그는 나의 대답에 귀 기울였다.


그날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꽤 쌀쌀한 저녁이었던 것 같다. 그가 말했다.

"좀 쌀쌀하긴 한데, 분위기도 좋고 커피도 맛있는 카페 갈래요?"


흔쾌히 좋다고 답하고 그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곳은 다름 아닌 그의 모교 호숫가였고, 맛있다는

커피는 따뜻한 자판기 캔커피였다. 나는 그 모든 상황이 낭만적이었다. 캔커피가 500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는데, R의 센스가 너무 돋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문자 하며 다음 데이트를 잡아주길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상처받기 싫어 친구에겐 애써 "괜찮더라" 정도로 후기를 표현했지만 사실은 너무 설렜다.


그가 취미로 찍는다는 사진도, 단단하고 다부진 몸집도, 까부잡잡한 피부도, 남자다운 눈매도 모두 다 좋았다. 내 첫 연애 상대가 되기에 그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도무지 취업 시장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전공 철학마저도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가족이 아닌 사람 중에 나를 이토록 귀엽게 바라봐주며, 사랑을 표현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21살의 세상은 20살의 그것과는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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