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자들>
과거에 <여자들> 리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해 못할 작품이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건을 계기로 영화 속 주인공에 저를 투영시키게 되었습니다. 영화 리뷰 최초로 에세이 형태로 쓸 예정이고 제 이야기가 들어간다는 점 미리 알려드리면서 리뷰 시작합니다. 영화 대사 해석보다 제 느낌대로 해석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영화에는 시형이라는 주인공과 5명의 여자가 나온다. 시형은 글을 쓰는 작가이고 5명의 여자는 정확히 정체는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시형에게 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통찰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이렇게 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는 시형을 클로즈업하며 흘러간다. 영화 스토리는 간단하고 솔직히 재미는 없다. 홍상수 영화를 표방하는 듯 하지만 영화 자체는 별로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영화 <여자들>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취준생이라는 신분으로 복학한 나는 학교에 복학하자마자 교수님에게 취업 준비 과정 보고와 인사라는 명목으로 교수실에 끌려(?) 갔다. 사실 교수실에 갈 생각은 없었지만 교수님께서 나를 보자마자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교수실로 데려가셨고 들어가자마자 질문이 쏟아졌다. "너 뭐 잘하냐? 성적은 어떠냐?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냐?" 등의 다양한 질문을 던지셨고 나는 그저 어버버 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답도 못하는 내가 한심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나만 이런 걸까?'라는 일종의 작은 반항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질문 세례가 끝나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영화 <여자들>이 떠올랐다. 이 ㅁㅊ놈은 취업 걱정보다 '영화 리뷰 하나 더 쓸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신나게 집에 돌아왔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영화 <여자들>에 접목시켜 리뷰를 다시 써보기로 했다. 나를 주인공인 시형에게 투영시킨 채로 말이다.
교수님이 인사하는 나에게 제일 처음 물어본 말이다. "너는 어디 준비하고 있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고 어버버거렸다. 이 상황에서 시형이 처음으로 만나는 여자 여빈이 생각났다. 홀연 듯 나타나 시형의 자취방에 고양이를 찾으러 왔다며 이야기하는 그녀. (교수님도 홀연 듯 나타나셨다.) 그리고 여빈은 시형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빈은 시형에게 "뭐하시는 분이에요?"라고 묻자 시형은 "저 글 써요."라고 하지만 작가냐고 묻는 말에는 자신감이 없는 말투로 "작가까지는 아니고..."라고 이야기한다. 시형은 글을 쓰지만 자신이 작가라고 타이틀을 붙이는 것에 자신감이 없다. 처음 봤을 때는 느끼지 못했다. 시형의 저런 자신감 없는 태도가 하지만 교수님의 질문을 받은 나는 시형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교수님이 두 번째 물어본 질문은 과거에 대한 질문이었다. "너 그동안 무슨 스펙 쌓았니?" 명확한 과거에 대한 질문이었다. 스펙은 정량적인 학점을 포함해 취준생에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얼마나 열심히 살았나를 알아볼 수 있는 경험치 같은 것이다. 이 질문을 받으니 서진이 시형에게 과거에 대해 묻던 것이 생각났다. 서진은 우연히 시형을 동네에서 만나 과거 이야기를 물어본다. 과거에 동네에서 놀았던 기억, 과거에 시형이 쓰다 포기한 소설까지 물어본다. 나도 소설을 쓰다 포기한 기억이 있었고 교수님이 묻는 스펙을 말하기가 두려웠다. 영화 속 시형이 쓰다 말았다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 못하고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는 장면이 내가 교수실에 앉아있던 장면과 오버랩되었다. '시형과 나는 같은 존재일까?'
모든 일에서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영화에서 수진은 시형에게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묻는다. 교수님에게 얼버무리며 가고 싶은 회사가 있다고 말했고 교수님은 나에게 "왜? 그 회사를 준비하니?"라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시형처럼 또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이야기했지만 실상은 왜?라는 질문을 피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 나도 왜 그 회사를 가고 싶어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여전히 모르겠다. 영화 속 시형도 사실 자기가 왜 글을 쓰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다려야 한다는 뉘앙스로 말을 하며 수진을 답답하게 만든다. 수진은 시형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며 "춤춘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던지지만 시형은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회사도 춤춘다고 생각하면 잘 정해지는 걸까? 그리고 시형은 왜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할까? 이 질문의 답을 현직자는 알고 있을까?
이번엔 질문이 아닌 추천이었다. "이 회사는 어떠니? 너의 성향이랑 잘 맞을 거다." 나의 상황을 보신 교수님은 이런저런 회사를 추천해주셨고 나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마치 대학교 원서를 넣을 때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점수에 맞춰서 대학을 써주려는 선생님과 그 대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제자. 교수실을 나오면서 생각에 잠겼다. 시형은 자신의 소설을 좋아하는 출판사 직원 이든을 만난다. 술자리 분위기는 좋았고 이든은 시형에게 호감이 있었다. 그들은 잠자리를 했고 나오면서 이든은 다시 한번 묻는다. "지금 좋아하는 여자 없으세요?" 시형은 멋쩍게 웃으며 "그런 건 왜 자꾸 물어보세요."라며 이든에게 돌려 말한다. 이든은 분명 시형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물론 육체적 관계지만 이든은 시형에게 나름 해결책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시형은 이 해결책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또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시형은 오키나와로 떠난다. 시형이 오키나와로 떠나는 장면에서 나 역시 다른 회사와 직무로 눈을 돌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교수님과 면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나는 이번에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슨 일을 좋아하는 걸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해봤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글 쓰는 게 제일 재밌고 가장 열정적으로 한다고 생각하지만 직업으로 가지기에는 허접한 필력과 미래의 불안정성이 너무 크다. 그래서 더더욱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속 시형은 오키나와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여기서 나와 시형은 다른 길을 걷는다. 고양이가 보고 싶다며 한국으로 떠난 남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소니를 만나며 시형은 변화한다. 소니는 시형에게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하는지 그리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해준다. 시형과 소니는 그렇게 교류했고 시형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탄다. 소니의 대사 중 " 한 줄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100페이지의 분위기를 만든다."라는 대사가 있다. 꼭 작가가 아니더라도 모든 직업 그리고 세상 모든 일에는 당위성이 필요하다. 100페이지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직업을 나는 찾을 수 있을까?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이 장면에서 나는 시형이 너무 부러웠다. 원고지에 무언가를 쓰고 춤을 추는 그 모습, 깨달음을 얻으며 선상으로 나가는 모습.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내레이션의 말이 너무 공감이 됐다.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한다면 나도 깨달음을 얻고 직업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