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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Feb 23. 2023

모태 뚱녀의 출산

세상밖을 나온 새 생명의 무게는 0kg인가요?

22년 10월 어느 날, 나의 소중한 둘째가 태어났다.



3.4kg의 통통한 나의 아기!



"여보! 우리 호떡이한테도 뚱보의 피가 흐르는 걸까? 정말 통통하다."

신생아 실에서 처음 만난 나의 천사는 수많은 아기들 중 유독 토실토실했다. 내 배에서 태어난 우리 아기에게 나의 뚱보유전자가를 물려주었을까 싶어 이리저리 살폈다.



내 옆에서  함께 아기를 보던 남편은 웃으며

"아기가 다 토실토실하지 뭐. 나중에 다 키로 갈 거야."



내 어릴 적 사진을 보면 전부 통통하더구먼 내 키는 고작 158cm.

살이 키로 간다는 건 순전 개뻥이다.



신생아실에서 아기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제왕절개로 아픈 배를 움켜쥐고 끙끙대며 병실로 걸어오는데 복도 끝에서 한 산모가 체중을 재고 있었다.

딱 아기랑 양수 무게만큼 빠졌다며 신기해하는 날씬한 산모.



아기와 양수의 무게라. 우리 아이가 3.4kg에 태어났고 양수, 태반무게 등 합치면 대략 5-6kg 정도 되려나.

그럼 나도 최소 5kg은 빠져있겠다 싶어 남편에게 체중을 살짝 재고 갈 테니 먼저 병실에 들어가 있으고 눈을 찡긋 거렸고 눈치 빠른 남편은 씽긋 웃더니 병실로 먼저 들어갔다.



복도를 서성이다 체중계 근처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체중 잴 준비를 했다.



아! 뭐 체중 재는데 준비 따위가 필요하냐고? 필요하지요. 암요.

우선 엄청나게 무거운 휴대폰을 꺼내 체중계 옆 선반 어딘가에 잠깐 두고요. 산후풍 방지를 위해 신은 두꺼운 수면양말이 내 채중에 영향 주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기에 수술 부위를 움켜잡고 빛의 속도로 양말을 벗어던졌다.



출산을 했어도 여전히 뚱보인건 변함없는 거 알지만 5kg 빠졌다면 내 체중 앞자리가 변해있기 때문에 조금은 덜 뚱보처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깃털처럼 가볍게 체중계 위로 올랐다.



한발 살포시 올리니 앞자리가 4...

눈 지끈 감고 두 다리를 올렸는데...



체중계가 고장 났나?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를 반복했지만 체중계 위 숫자는 똑같다.



82.3kg

(이렇게 숫자에 음영을 줘서라도 숨기고 싶은 내 체중)




"여보! 여보! 빨리 가서 체중 좀 재봐. 체중계가 고장 난 것 같아."



보호자 침대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얼른 가서 체중계가 고장 났다는 걸 증명해 오라는 명을 내렸다.



남편은 매우 귀찮아하며 외투를 입고 체중을 재러 느릿느릿 병실을 나갔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병실 한 곳에 우두커니 서서 남편을 기다렸다.



고장 난 거야 분명.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출산하러 가기 직전 내 체중이 딱 82.3kg이었는데.

심지어 이슬 비치고 긴급수술 들어갈 것 같아서 하루종일 굶었고 3.4kg의 아기와 양수, 태반, 탯줄 등이 내 몸속에서 나왔잖아.

근데 어떻게 1g도 빠지지 않은 거지?

이건 분명 체중계가 고장 난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게 가능해?



별의별 생각을 하던 중 남편이 느릿느릿 병실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나 체중이 좀 빠졌어. 지난주에는 71kg였는데 지금 재니까 70.1kg이네"




다음 날 회진 온 담당 원장님을 붙잡고 물으니

"수액 맞으면 부어서 체중 변화 없는 분도 간혹 계세요. 그리고 우리 병원 밥이 워낙 맛있기도 하잖아요. 그거 다 먹으면 살 못 뺀다는 이야기가 있긴 한데 살은 나중에 빼면 되죠. 지금은 회복에만 집중하세요."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수술 후 무려 12시간 금식하고 나서 먹었던 첫 끼니인 미음.

남편이 "미음 맛없지?"라고 물었을 때 "여보. 꿀맛이야."라고 답하며 미음을 들이켠 걸로 모자라 호시탐탐 남편 식사를 탐냈던 내 모습.



그리고 일반식으로 식사가 나왔을 때 "여보! 여기 완전 맛집이다. 병원 밥이 이렇게 맛있어도 돼?"라고 말하며 행복하게 웃음 지었던 나.



그렇다.

나의 식욕은 뱃가죽을 찢는 고통 따위 이겨내는 아주 무서운 놈이었다.



이상하게 병원 밥이 내 입에 딱 맞아서 가락질을 도저히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이건 병원밥 잘못이다.



이번 산후 다이어트 시작은 82.3kg구나.



남편도, 우리 엄마아빠도 모르는 내 체중. 사실 한 번도 남편에게 내 체중을 오픈한 적 없었지만 예리한 남편은 내 체중 앞자리가 8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테지.



첫째 때도 무지막지하게 쪄서 1년에 걸쳐 살을 뺐는데 그 과정을 또 해야 하다니. 조금은 현타가 오기도 했다.



지만 남편보다 12.3kg가 더 나가는 모태뚱녀는 임신기간 내내 맘 놓고 처먹었던 것에 대해 1도 후회하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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