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에 빠진 미국 2차 세계대전이 살리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1930~1945)
1920년대 경기는 호황이었고 주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큰 차, 넓은 집, 여가생활을 즐겼다. 게츠비의 ‘광란의 파티’는 1929년 10.29 되자 모든 게 종료됐다. 그동안 부풀어 오르던 거품이 드디어 터진 것이다. 이날 한 사람이 대량으로 주식을 팔았다. 이게 신호탄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주가가 떨어지자 너도 나도 내다 팔기 시작했다. 팔려는 사람만 있고 사려는 사람이 없으니 주식 시장은 붕괴됐고 주가는 거품처럼 꺼졌다. 한방에 미국의 20년 치 예산을 잃게 된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으니 주식시장이 망했다는 소식에 이제 사람들은 은행에 몰렸다. 너도 나도 예금을 찾으러 가면서 은행에 잔고가 바닥나는 뱅크런 사태가 오고 만 것이다. 5000개 은행이 파산하고 900만 개 예금통장이 사라졌다. 주식시장에 이어 은행까지 붕괴됐으니 사람들의 재산이 순식간이 없어진 것이다. 더 나아가 은행 대출을 못 받자 기업이 도산하고 노동자들은 일자리가 없어져 소비가 안 되니 기업이 다시 생산을 못하게 되는 공황이라는 늪에 빠진 것이다. 누구도 예측 못했던 이 일은 불과 2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1929년 1040억 달러 GDP는 1932년 580억 달러로 떨어졌다. 반 토막이 난 것이다. 비관한 사람들은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고 도시에서는 굶주린 사람들이 줄을 이어 무료급식소를 전전하고 있었다. 이것이 세계 최고 부자나라에서 1930년대에 벌어진 일이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 여파는 상당했다.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이 꽁꽁 얼면서 유럽에서도 공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미국 경기가 안 좋아지면 우리나라 자동차 반도체 핸드폰 기업이 어려워진다. 그만큼 세계 최고 소비국가의 미국의 몰락은 전 세계로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치고 빈민들은 무료급식소를 찾아 헤맸다. 대공황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친 것이다.
그렇다면 대공황의 원인은 무엇일까? 주가 폭락이 이러한 나비효과를 가져왔나? 주가 폭락은 파도 일뿐 이를 움직이는 ‘바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음식을 먹지도 못하는데 잔뜩 상을 차린 것이다. 과다 투자와 과잉생산은 자본주의 본질적 문제점인데 잠시나마 1차 세계대전 특수로 착각했던 것이다. 명절 대목에는 평소보다 백화점에 물량과 손님이 쏟아지지만 평소에는 안 그렇듯이 말이다. 손님은 없는데 매장 사이즈만 키우다 보니 재고만 넘쳐났다. 또한 저비용 고효율을 중시하는 효율성은 자연스럽게 인건비의 비중을 줄이고 기계 및 설비투자에 자금을 투자했다. 이는 공장의 일자리를 줄이는 원인이 돼서 결국 수요가 점차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예언했던 자본주의의 2가지 문제점인 산업혁명 기계가 낳은 대량생산과 인건비보다 비싼 기계 투자 때문에 인건비가 줄어드는 모순이 드디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고도로 발전하고 최고 부자나라에서 말이다. 위대한 게츠비의 마지막 장례식 장면처럼 그렇게 쓸쓸하게 파티는 끝났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대공황의 원인을 후버 대통령 탓으로 돌렸다. 지금도 그렇듯 경제가 안 좋아지면 대통령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에서 대통령 한 사람이 그렇게나 큰 영향이 있었을까? 자유와 경쟁을 중시하고 철저한 개인주의와 자립심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정체성을 유지했던 것뿐인데 하필이면 집권하자마자 공황이 터지는 건 그의 불운이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당시 집을 잃은 수 만 명의 미국인들은 판자촌에 살았는데 이런 마을을 ‘후버 빌’이라 불렀다. 그는 여전히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공황에 앞서 1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레드 적색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빨간색이 상징하는 사회주의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1차 대전 중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소련이라는 나라가 탄생했다. 소련의 깃발이 빨간색이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빨갱이’라고 불렀고 우리나라까지 그 용어를 직수입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토록 두려워했을까? 사회주의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국가가 자원과 물자를 배분하겠다는 것인데 자유와 경쟁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과 너무도 상극이었다. 또 공산주의는 자원과 물자를 중앙에서 분배하는 방식이어서 필연적으로 강력한 전제주의 정부가 나타난다. 애초에 자유를 찾아 떠난 이주민의 나라답게 개인주의 만연한 미국인들에게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는 미국 기득권들의 생각이었다. 사실 진짜 이유는 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러시아처럼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자기들의 재산을 몰수할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더군다나 대공황으로 경제가 파타난 상황에서 두려움은 더 커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스벨트가 당선이 되었다. 전 대통령 루스벨트랑 이름만 같은 다른 인물이니 오해하지 마시길.. 위기를 타개하려고 대책을 마련하던 중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소련인 대공황 여파에 관계없이 불과 5년 사이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른바 국가가 주도한 계획경제였다. 두 자릿수 경제성장률을 찍으며 자본주의 나라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눈부신 성장을 이어갔다. 정부의 간섭은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한 미국인들도 소련식 ‘계획경제’ PLAN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소련으로 이민 가는 미국인들도 10만 명이나 달했다.
그런가 하면 경제학계에서도 고전학파 사상에 반하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했으니 그 중심에는 케인즈가 있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를 중시하는 미국식 계획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루스벨트는 취임하자마자 케인즈의 이론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개혁 드라이브를 도입한다. 뉴딜정책이라 불리는 정책을 내놓았는데 살펴보면 증권과 은행을 국가가 관리 감독하고 노인연금 실업수당 등 대대적인 복지혜택과 더불어 테네시강 댐 공사를 하여 대대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했다. 대부분 뉴딜정책 하면 댐 공사만 기억하지만 이처럼 공공일자리 창출 정책은 다양했다. 이후 뉴딜이 가져온 효과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4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었는데 이는 소비자 1200만 명을 의미했다. 1200만 명이 돈을 쓰기 시작하니 다시 경제가 돌아가고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저축을 보상받을 수 있어 다시 안심하고 예금을 했다. 은행이 돌아가니 기업들도 대출받아 투자해서 경제는 차츰 회복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조직과 권한은 매우 커졌고 어느덧 국민들은 정부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더 이상 복지정책을 사회주의라 매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공황은 뉴딜정책 덕분에 벗어난 게 아니었다. 400만 명의 실업자를 구제했지만 아직 900만 명의 실업자가 남아있었다. 뉴딜보다 더 규모가 큰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바로 2차 세계대전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모든 이들이 일자리를 갖게 되었고 1943년에는 일손이 모자를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바로 30년 전 상황처럼 말이다. 뉴딜정책이 어느 정도 해결은 했지만 대량생산과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 내부 모순은 해결하지 못했고 또다시 전쟁이 이를 해결해 주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입이 찢어졌다. 무기, 식량, 생필품, 의약용품 등 전례가 없는 대량생산 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항공기 30만 대 탱크 8만 대 군함 7600척 소총 2천 만정 실탄 400억 발을 비롯해 수많은 차량과 무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제 회복과 부흥은 또다시 전쟁이라는 피를 먹고 자랗고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도 함께 돌아갔다.
어쨌든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상황은 더욱 눈부셨다. 석유 생산량 전 세계 제조업도 절반에 달했고 금 보유고 2/3가 미국에 귀속되었다. GDP는 4년 만에 2배로 늘었다.
가히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듯이 자본주의 국가는 전쟁의 유혹한다. 때로는 식민지를 위해 때로는 대량 생산된 상품을 팔기 위해 혹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하지만 더 간과한 사실이 따로 있다. 제국주의 식민지 쟁탈전이 전쟁의 원인이라 하지만 내부적인 원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앞서 설명했듯이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재산을 몰수하는 적색 공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필요했다. 전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국가대항전이 되고 민족주의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무런 관심 없어도 월드컵 하면 한국 팀을 응원하듯이 말이다. 바로 노동자들의 착취와 내부 불만을 바깥으로 전쟁터 보내면서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대량학살에 이은 대량소비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 생각하면 매너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매너가 이러한 추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위선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래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이고 그 속에 감춰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