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포드와 1차 세계대전
대량생산 대중 소비의 시대(1910~1930)
자동차는 19c 후반에 발명되지만 지금의 핸드폰처럼 초창기에는 부자들의 값비싼 장난감에 불과했다. 이럴 때 미국의 한 사업가 ‘헨리 포드’는 소 가공공장을 우연히 들른 후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로 지금 현대 공장에 뿐 아니라 마트에서도 볼 수 있는 컨베이어 벨트였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를 조립할 때 차는 고정돼 있으며 사람이 움직이면서 조립을 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대기시간은 길어졌고 왔다 갔다 하느라 이동시간이 길어져 매우 피곤했으며 차 한 대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상황을 한 번에 엎어 버린 것이 바로 컨베이어 벨트다. 차가 ‘움직’이고 사람은 ‘고정’ 돼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벨트 위에서 노동자들은 각자 맡은 임무를 하면 그만이었다. 나사만 쪼이는 사람, 핸들만 다는 사람, 볼트만 쪼이는 사람 너트만 박는 광경이 공장 안에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하루 2~3대 만들던 자동차가 하루 수천 대씩 만들어졌고, 1924년에는 24초에 1대씩 생산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대량생산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850달러였던 자동차 가격은 1924년 290달러까지 떨어졌고 이는 노동자 평균 3달치 월급에 불과했다. 더 이상 자동차는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값싸게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집집마다 차를 갖게 되었고 고향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없던 사람들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게 되었다. 자동차가 대중화되자 미국 전역에서 도로공사가 일어났다. 덕분에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사방팔방 뻗은 도로망은 이내 미국을 하나로 통합시켰다. 이제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문화가 본격화되면서 하나둘씩 교외로 빠져나갔다. 때문에 도시근교 지역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모텔, 주유소 , 슈퍼마켓이 곳곳에 생겨났다. 남녀 청춘들은 드라이브를 즐겼으며,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중산층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지금 할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보는 쭉 뻗은 도로가 이미 이때부터 완성되기 시작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포드의 생산방식은 곧 모든 산업 전반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모든 제품이 규격화 표준화되고 노동자들은 각자 맡은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일만 하면 그만이었다. 개성이 없어지고 획일화가 된다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어쨌든 이러한 생산방식은 덕분에 낮은 원가에 많은 생산을 할 수 있었고 미국의 산업경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포드의 대량생산 방식은 노동자들에게 높은 임금을 보장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조립라인의 단조로운 노동에 금방 싫증을 느꼈기 때문에 이직을 막기 위해서라도 높은 임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알 수 있듯이 하루 종일 나사만 조이는 일은 일에 대한 성취감과 보람은 줄 수가 없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보안한 것이 높은 임금이다. 이 높은 임금은 대량생산과 더불어 대량소비를 이끌었고 경제발전의 두 바퀴 축이 완성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만들 때 보다 쇼핑할 때 더 큰 위로와 행복을 얻게 되었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소비를 통해 푸는 지금의 ‘소확행(소비는 확실히 행복)’ 시대로 진입했다.
이럴 즈음 미국의 성장에 더욱 박차를 가 할 수 있었던 일대의 사건이 발발한다.
바로 1차 세계대전이다. 1차 대전은 후발 자본주의 주자인 독일이 영국 프랑스가 독식하고 있는 식민지를 얻어 보자는 마인드로 일어난 전쟁이다.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직접적인 트리거가 있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모순인 초과공급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를 쟁탈하는 과정에서 곪아 터질 수밖에 없는 충돌이었다. 어쨌든 유럽에 전쟁이 발발하자 곧 미국도 심하게 요동친다. 부모의 나라이기도하고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이주자들의 나라였기 때문에 본토 유럽의 상황을 남 몰라하고 있을 순 없었다. 하지만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처음에 중립을 선언한다. 영국뿐 아니라 독일에게도 무기와 생필품을 팔아먹던 미국은 애써 손님을 내쫓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하느라 모든 공장이 풀가동하고 고용률 100%에 엄청난 영업이익으로 입이 찢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이중 살림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독일은 U보트를 앞세워 미국 상선을 타격을 가했으며, 결정적으로 멕시코를 꼬드겨 미국의 후방을 견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영국의 첩보전을 통해 미국에 알려지면서 미국은 1917년 드디어 참전하게 되었고 영국에 해군을 지원하게 된다. 그러자 U보트 공격을 받던 연합군의 피해는 줄어들고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유리하게 역전된다. 하지만 1917년대 말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쟁에 발을 빼자 독일은 서부전선으로 병력을 집중한다. 이를 버텨낼 재간이 없던 영프는 미국의 원조를 요청하고 미국의 지상군 개입으로 결국 1918년 11.11 빼빼로 데이에 독일에 항복을 받아낸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전쟁은 ‘전투’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GDP’가 높은 나라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으로 몸집이 커진 미국은 장기전 물량전으로 갈수록 오래 버틸 체력과 총알이 충분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은 총력전이자 첨단 과학기술의 시험장이었다. 이제까지 가장 많은 사람은 죽인 무기인 기관총이 나왔고 이를 막기 위해 참호, 또 이를 뚫기 위해 탱크, 탱크를 잡기 위해 전투기 등 전에 볼 수 없는 첨단·과학 무기가 속속들이 등장했다.
산업혁명은 ‘기계’를 물건을 만들기 위해 등장시켰지만 이 기계는 사람을 죽이는데도 쓰여지기도 했다. 결국 기계를 유지하고 생산할 자본이 있는 나라가 전쟁을 이기게 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또한 놀라운 사실은 엄청난 사망자 수에 있다. 군인 1천만 민간인 2천만 도합 3천만이라는 숫자는 이제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섬뜩한 결과였다. 첨단무기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이어서 대량학살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민간인 사망자가 이렇게나 많은 이유는 더 이상 전쟁은 전방뿐 아니라 물품조달과 공급을 책임진 후방까지 폭격을 가해졌기 때문이다. 전장에서 죽는 군인보다 삶의 현장에서 죽은 사람 수 가 더 많은 비극적인 전쟁이었다. 이러한 비극적인 전쟁 쟁의 양상과 다르게 승전국이 된 미국은 미국의 유럽 최대 채권국으로 발돋움하고 명실상부 최강국가로 떠오르게 된다.
전후 세계 질서를 다시 바로 잡는 데 있어서 역시 후발 자본주의 주자인 미국도 영국 프랑스 위주의 제국주의 판도에 불만이 많았다. 더군다나 1차 세계대전의 원조 국가이자 최강국가로 떠오르면서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이때 1919년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라는 야심 찬 계획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3.1 운동을 비롯해서 세계 식민지 국가들에게 희망을 안겨다준 이 정책은 한마디로 민족의 자치권을 주장하면서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미국으로써는 영·프가 독점하고 있던 식민지에 발을 얹을 수 있는 좋은 계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프가 들어줄 리 만무했다. 민족자결주의는 승전국은 제외되고 오히려 패전국인 터키와 오스트리아의 영토를 쪼개는데 이용된다. 1차 대전 승전국이었던 일본도 제외되어 조선은 계속해서 식민지로 남게 되었다. 민족자결주의는 약소국가에겐 희망고문이자 열강들에겐 패전국의 영토와 시장을 빼앗는 수단에 그치고 말았다.
어찌 됐든 미국은 헨리 포드의 대량생산방식과 1차 대전 특수까지 맞물려 1920년대 사상 초유의 대 호황기를 맛보게 되었다. 매일 파티하고 즐기는 위대한 게츠비 영화처럼 미국은 엄청난 소비사회로 진입한다. 중산층은 냉장고, 식기세척기, 세탁기, 청소기를 샀고, 옷은 더 이상 맞춤이 아닌 대량 생산된 기성복을 구입했다. 1920년대 말 3천만 대 넘는 자동차가 미국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여 웃돈이 많아지자 점차 고차적인 소비를 시작하게 되는데 기업들도 이러한 소비성향에 발맞춰 레저 스포츠시설을 만들고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영화를 찍고 영화관을 만들어 나갔다. 이와 더불어 티브이 보급률을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에 맞게 부각되었던 게 광고 산업이었다. 1차 대전 전쟁 선전 기술이 적국의 병사들이 아닌 자국의 소비자들을 유혹하는데 써보기로 했던 것이다. 일명 ‘프로파간다’라고 불리는 선전술은 광고와 상품에 적용되어 예전보다 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광고로 바뀌게 된다. 멋진 배우와 스포츠 선수가 광고에 등장하면서 더 이상 광고는 상품을 알 리는 게 아니라 어느새 광고 속의 배우처럼 살고 싶다는 워너비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아이돌이 광고하는 음료수가 많이 팔리고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을 사고, 드라마 속의 연인들이 외제차에 드라이브를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듯이 일반 대중들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곧 소비로 이어지는 대중 소비사회가 미국은 1920년대에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미국의 1920년대는 포드주의 + 1차 대전 특수로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게 된다. 흔히 1930년대 대공황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이 높았기 때문에 골이 깊었던 것이다. 애초에 호황이 없었으면 공황도 없었고 주식의 거품이 없었으면 금융시장의 몰락도 없었다. 때문에 이어지는 대공황과 2차 대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1920년 미국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두 사건은 미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가난에 찌든 노동자들의 이미지를 햄버거를 먹고 드라이브를 즐기고 교외로 여행을 가고 주말엔 극장 데이트를 하는 “대중(mass)”이란 용어로 탈바꿈시켰다. 무려 1920년대에 말이다. 위대한 게츠비가 나올 만한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