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왕 철강왕 석유왕 왕들의 시대
발명왕 철강왕 석유왕 王들의 시대(1870~1910)
미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살기 좋은 기후와 광활한 땅 그리고 유럽의 선진 기술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언어와 문화도 닮았기에 영국의 고급인력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대거 이동할 수 있었다.
영국의 기술 자본주의 제도와 더불어 실용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풍토도 전수되어 미국은 건국과 동시에 ‘특허권’ 보장하는 법을 제정한다. 이는 단순히 기술을 모방하는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창조하는 나라로 변모할 수 있는 나라로 태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차 산업혁명은 영국이 리드했다. 이후 100년이 지난 19c 후반이 되면 새로운 혁신 산업이 등장한다. 바로 화학·전기· 석유· 철강 등 중화학 공업이라 일컫는 2차 산업혁명이다. 이때 미국이 선도적인 위치에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특허권’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1865~1900까지 발명특허로 등록된 건만 해도 64만 여종이었고 이는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수치였다. 링컨은 특허권을 두고 ‘천재의 발명이 가져올 이익에 연료를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 1870년대 그 유명한 에디슨이 등장한다. 흔히 전구로 잘 알려진 에디슨의 업적은 다름이 아니라 ‘전기’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탄생시킨 것이다. 물론 당시 과학자들도 전기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최초로 전구를 만든 이 가 에디슨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초로 상용화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에디슨이 알려진 이유도 먼저 만든 게 아니라 먼저 특허권을 등록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둑질했다는 오명도 있지만 “천재는 1% 영감과 99% 노력”이라는 그의 명언에서 엿볼 수 있듯이 먼저 특허권을 등록한 그의 천재적인 99% 노력(?)을 되새겨 볼 만하다. 어쨌든 그의 노력 덕분에 1902년 1800만 가구, 7천만 명에게 전기를 보급시켜 90% 가까운 보급률을 기록하게 된다. 심지어 고종황제가 경복궁에 설치한 전구도 에디슨 회사에서 구입한 것이다. 그 외에도 축음기, 영사기, 전화기, 냉장도 등 모두 그의 발명품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이름으로 특허 등록된 발명품이다. 지금도 학자들 말하기를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에디슨만큼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할 정도이다. 에디슨과 미국 특허제도는 이제껏 상상하지 못한 부를 안겨다 주고 이때부터 벌써 미국은 로열티 로만 먹고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는 에디슨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수많은 발명가와 자수성가한 기업가들로 넘쳐났다. 대표적으로 철강 왕이라 불리는 앤드류 카네기가 있었다. 에디슨이 전구에 적합한 필라멘트를 찾고 있을 무렵 이 남자는 1650도의 고운에서 5톤가량의 금속을 집어넣는 목숨을 건 실험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성공했고 미국의 철제 가격은 80% 이상 떨어졌고 수 천 톤에 불과한 생산량이 1100만 톤까지 치솟게 된다. 한마디로 철을 대량생산에 성공했다는 것인데 이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동차, 자전거 , 냉장고, 선풍기 등 우리 생활 전반에는 항상 ‘철’ 이 있다. 이러한 철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 어디 일까? 바로 건축 현장이다. 대량 생산된 값싼 철이 공급되자 전에 없던 고층건물이 생기기 시작한다. 대도시의 넘쳐나는 인구에 땅이 모자랐던 미국은 대량생산 철이 고층건물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1902년 뉴욕에만 65개 고층건물이 생기고 이와 더불어 승강기가 나타났다. 전에는 아무리 높은 건물도 5층을 넘기기 어려웠지만 걸어 올라갈 필요가 없어지자 건물들은 하늘 높이 치솟았고, 기이하게도 고층일수록 임대료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점점 건물 높이가 올라가면서 지금의 미국이 모습이 이때 이미 완성되었던 것이다.
또한 엄청난 지하자원도 있는 나라가 미국이었다. 특히 텍사스 유전만으로도 전 세계 석유공급의 50% 이상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석유 왕 ‘록펠러’가 있었다. 역사상 그보다 부자는 없었다. 그의 재산은 현재가치로 3183억 달러 우리 돈으로 330조 하루에 150억씩 60년을 쓰고도 남는 돈이었다. 어떻게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었단 말인가? 그의 사업방식을 보자면 조선의 허생 + 봉이 김선달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독점’이다. 유전을 독점하고 유통망을 독점하고 거대한 생산설비를 통해 단가를 낮추었다. 때문에 석유 값은 폭락했지만 경쟁사들은 도저히 장사를 할 수 없었다. 경쟁사가 가격경쟁에 나가떨어지면 집어삼키는 M&A 방식으로 사업을 넓혀 나갔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에 밀린 구멍가게가 결국 ‘CU’로 간판으로 바꾸어 달듯이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확장으로 결국 미국 석유시장 90% 독점하고 마침내 ‘석유 왕’에 등극하게 된다.
여기까지 王들의 공통점은 경쟁을 통해 전투력을 쌓은 다음 레벨업을 하고 난 다음부터 무자비하게 적들을 쓰러트렸다. 그리고 혼자 살아남아 시장을 집어삼키는 ‘독점’으로 부를 쌓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은 문제점은 없을까?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일 뿐인가? 전체 재산의 80%가 2%에게 집중되는 현상에 어떤 부작용이 있을까? 예를 들어 석유를 살 곳이 록펠러 회사 밖에 없다고 치자, 경쟁이 있을 땐 가격 할인 및 품질개선에도 힘썼다. 하지만 어느새 학교 매점처럼 가만히 있어도 장사가 잘 되자 굳이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팔고 싶을 때 팔고, 장사하기 싫을 땐 문 닫으면 그만이다. 그때그때 공급량을 조절해서 가격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작 필요한 사람에게 자원이 돌아가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엄청난 비효율성과 자원 낭비가 발생했지만 지금과 같이 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없었기에 그들은 손쉽게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경쟁에 이기기 위한 전투력은 노동자의 눈물과 땀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에, 임금은 최저 생계비를 겨우 웃도는 수준이고 항의하는 노동자는 탄압하고 억압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이 아닌가? 우리나라도 산업화 과정에서 대기업의 특혜와 노동자들의 희생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그렇듯 무대 밖의 사람들에겐 조명이 비치지 않는 법이다. 예로 당시 미국은 가장 잘 사는 나라인가 동시에 가장 노동자가 많이 죽는 나라였다. 평균 14~16시간씩 일하고 200만 명의 어린이들이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안전장비 및 보험이 미흡해서 각종 산업재해가 비일비재했다. 사장의 악덕함과 탐욕도 있지만 그 보다 더 王들의 시대에 어떤 수단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아 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노동자들은 늘 빈곤했고, 도시는 빈민이 넘쳤고, 사회는 불평등했다. 더 이상 미국은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이러한 시기에 정치인들은 이런 대다수의 소외된 자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다. 1901년 당선된 루스벨트는 자의든 타의든 국민들의 압력을 견딜 수 없었다. ‘독점규제’ 과감하고 거침없는 재벌 해체 과정에 들어간다. 또한 노사갈등 문제에 개입하고, 고용보험, 산재보험을 확대하는 등 자본주의 병이 곪아 터져 사회주의로 덧나기 전에 수술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의 탈을 쓴 자본주의가 태생하기 시작한다. 물론 완벽한 개혁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나라 안의 왕들의 영광과 진통이 벌여지는 동안 나라 밖 세계는 ‘제국주의 시대’로 재편되고 있었다. 이전의 식민지는 단순히 ‘수탈’의 개념이었다면 산업혁명이 터지고 자본주의가 성장하게 되자 그 성격이 바뀌기 시작한다. 값싼 원료공급지 이자 저임금으로 노동시키기가 가능한 곳. 물건도 팔도 남는 돈을 투자까지 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 식민지로 바뀌게 된다. 그러니 미국 또한 식민지를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때 미국이 주시하던 곳이 주로 태평양 지역이었다. 먼저 일본을 개항시켰다. 페리 제독이 이끄는 검은 연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선에 속수무책으로 일본은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는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했다. 당시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와 크림반도를 둘러싼 전쟁으로 재정 압박을 타개하고자 720만 달러 헐값으로 미국에 넘겨주고 만 것이다. 축구장 몇 개의 가격에 불과한 땅덩어리가 지금은 석탄, 석유 금 등 별의별 자원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볼 때마다 땅을 치고 후회할 만하다. 이어서 하와이 , 괌 , 필리핀 , 쿠바까지 팽창하기 이른다. 영국 프랑스에 비해 식민지 쟁탈전에 뒤늦은 감이 있지만 대서양, 태평양을 아우르는 일대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결국 미국도 제국주의 시기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영토를 확장하고 영향을 확대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1870~1910 19c 후반의 시기 미국은 안으로는 2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중화학공업의 부흥과 경쟁적인 사업 확장으로 눈부신 경제 성장과 유례없는 부를 축적하게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독점 자본주의 폐단이 발생하여 빈부격차 등 사회 문제가 대두되지만 자본주의 위기를 정부 개입으로 조금씩 고쳐나간다. 이러한 안으로부터 축적된 에너지를 바탕으로 제국주의 시대 흐름에 걸맞게 야금야금 팽창하여 대서양·태평양까지 진출하기 시작하는 이른바 미국의 부흥기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