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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Feb 18. 2024

하나의 공식, 하나의 레시피

유지민

20240217

이렇게, 그 다음은 이렇게. 하나의 공식, 하나의 레시피가 우리의 길을 코딩해 놓았다. 몇년만에 한국의 학원을 경험한 내게 주어진 원고지에는 저학년 일기장처럼 네모난 칸들로 채워져 있는 종이 위에 문장들이 프린트 되어 있었으며, 뒷면에는 마침표나 띄어쓰기 등을 도안에 맞게 표시하는 방법이 쓰여 있었다. 이름과 학교를 적는 곳 밑에는 그대로 옮겨 쓰라는 문장들이 정리되어 있었는데 중간중간 네모난 박스가 만들어낸 글자들 사이 공백이 나, 그리고 이 교실에 앉아있는 30명의 예비중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허용된 범위의 전부였다. 물론 박스 안의 답은 정해져 있었고 이를 감싸고 있는 단어들은 화려하고 수준 높아 보였지만 나의 원고지는 내 뒤에 앉은 애도, 앞에 앉은 애도, 그리고 나머지가 제출하게될 30장의 글중 1장의 복사본일 뿐이였다. 황당해 하는 건 나 뿐이 아니였는지 주변에서는 꼭 이 형식을 따라서 써야하는지 등의 질문들이 나왔고 쌤께서는 이런 맞는 형식의 글을 익히는 훈련이다라며 일일이 답을 해주시자 공중에 올린 손들이 하나 둘 씩 떨어졌고 다들 앞에 놓인 종이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이 틀에 복종하겠다는 서약서를 써내려 가듯이.

징그럽게 정교한 공식, 매일 계속해서 느끼다 보면 그저 당연한 나의 살갗처럼 느껴졌을 듯하다. 배우고 익히고 있다는 착각 속에 완벽히 적응된 학생들. 어쩌면 이는 시험이 요구하는 답이 될지라도 옮겨 쓸 문장들이 종이에서 지워진다면 교실에 앉아있던 30명의 수강생들은 과연 두려움 없이 '이렇게, 그러고 저렇게' 하며 매일을 디자인 해온 설명서 밖을 내다 볼 수 있을까.

몇년 전까지만도 아지트를 찾겠다고 아파트 전체를 다 뒤지고 다니던 것이 친구들과의 하나의 놀이였던 내게 지금 유일한 외출이란 학교, 학원, 가족들과 나가는 외식이 전부인 일상을 살고 있다. 나, 함께 놀던 친구들, 그리고 모든 또래들이 씌워진 틀에 맞게 길들여진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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