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학기제 문제>
백지원
가장 지루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단원이라며 우리에게 늘 경고했던 국어에서의 그 단원을 오늘 드디어 나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 잘 자신이 있었다. 그래봤자 정해진 하나의 수업이고, 그래봤자 내가 아는 지식에서 조금 더 자라난 수업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잔치국수와 달짝지근했던 끈적한 닭강정을 먹은 후였던 5교시에 든 국어수업이라고 해도, 그 전 시간에 침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잠을 잤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학교 수업이 과연 재미있을까. 과연 우리들이 이렇게 다짐해놓고, 10분 전까지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표정을 지어보여놓고도 과연 눈을 감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역시나 참지 못하고 앉은 채로 얕은 잠에 내 정신을 눞혔다. 그 이유는 중학교 1학년 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박아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단원을 들어가기 전에 꼭 필요한 용어 정리라며 칠판에 하나하나 적어가시며 시간은 한 획을 그을 동안 느리게 흘러갔고, 나는 그어지는 선처럼 고개가 쑥 하고 내려갔다. 무거운 머리가 버티지 못하고 마치 마카를 든 손에 힘이 빠져서 칠판의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림과 동시에 빠르고 정확한 선을 하나 그어내는 것처럼, 내 머리는 허공으로 길고 정확한 한 획을 위에서 아래로 그렸다. 책상으로 머리가 닿은 후에야 내 한 획이 끝났다.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나 힘이 빠져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래서 1학년 때도 시험을 봐야해. 안 그러니까 애들이 기억을 못하잖아.”
몽롱한 정신 속에서 발견한 그 말을 듣고 어느정도 이해는 되었다. 아무래도 시험기간에 느껴지는 그 긴장감과 예민함은 기억력을 향상시켜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다크서클을 더 짙게 u 자로 그려놓고, 무거운 안경을 코에 걸쳐서 코는 안경을 벗어도 조이는 듯한 느낌이 일주일 이상 느껴지게 만들었다. 아이패드로 공부하느라 화면 밖으로 열이 올라온 탓에 새끼 손가락과 연결된 피부는 뜨거워지고, 전자파가 눈과 머리로 올라와서인지 이상하게 머리가 아픈 현상이 발생하는데 그게 정말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2학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때 공부한 내용들은 요상하게도 수업시간에 항상 잠을 자서 “회장 잔다” 라는 말을 수십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했던 내용들이 부분부분 기억이 나기도 한다. 사실은 내가 수업시간에 눈을 감으면서 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시험 기간의 스터디 카페 속 내 모습이 너무 초췌해보였음이 떠올라 그 생각을 즉시 지웠다. 내가 수업을 열심히 들었더라면, 인강을 들으면서 초면인 단어들을 5분에 한 단어씩 마주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 짤막한 기억력이 남아있는 이유는 시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래서 1학년 때도 시험을 봐야해.” 라는 국어 선생님의 피곤한 목소리를 듣고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해서 국어선생님이 짧게 설명해주신 1학년 때의 수업 내용을 다 까먹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 어떤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 지를 묻는 빈칸 문제에 대해 의외로 많은 학생들은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는 듯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결국 답을 뱉었다. 국어선생님은 예상 외의 모습이라는 듯이 놀라서 높아진 목소리와 갑자기 환해진 얼굴을 하셨다. 나 또한 잠을 자려고 자세를 잡다가도 아는 단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놀랐다. 그 때의 그 풍경이 떠오르고, 그 때 나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고, 외우면서 마지막으로 뿌듯하게 웃음을 지었던 내 모습도 정말 거짓말 없이 떠올랐다. 그 때의 태도를 지금은 볼 수 없었기에 더 신기했다. 왜 그 때는 그렇게나 자신감 있었고, 그렇게나 당당하게 답을 말하면서 웃었을까. 너무나 의아했다. 지금은 가벼운 질문 조차도 부담스러운 느낌이 나를 짓눌러서 목과 척추를 밑으로 눌러빼서 몸을 움츠리고는 숙인 고개 위로 눈을 올렸다. 현재의 내 모습과 비교되는 한결 가벼워보이는 작년의 내 모습이 신기했다.
마지막 자유학년제를 만끽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현재 시험을 봐야하는, 심지어 우리도 아직 보지 않은 서술형 문제마저 풀어야 하는 1학년들을 보면 당연히 부럽다는 생각보다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 우리들이 수행평가 시간에 잠을 자면서 더이상 졸음이 생기지 않는 기이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들은 1학년이라는 나이에서부터 졸음으로부터 맞서싸워야 한다. 사실 나는 2학년 첫 중간고사를 치르기 전까지는 수업시간에 제대로 자 본 적이 없었다. 졸리지도 않았고, 시험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수업에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침을 흘리고 자본 적도 이번 년도가 처음이었고, 에어팟으로 귀를 먹먹하게 막고 있지 않아도 종소리가 작게 들리고, 친구들의 소음이 자연스럽게 노이즈캔슬링 되는 현상도 이번 년도에 처음 느끼게 되었다. 자유학년제 덕에 많은 분야의 동아리에 참여했던 것, 그리고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자유로움이 부드럽게 감싸안아서 그런지 더 적극적이었던 나의 태도들을 떠올리면, 나에게 더 좋은 추억과 좋은 인식을 준 자유학년제가 제일 좋게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님들은 이 자유학년제가 나중에 있을 시험을 대비해주는 든든한 뼈대가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적이게 평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맞는 말이었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가끔, 학생들이 자신의 역할과 임무에 맞지 않는 길로 이탈하는 행동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1학년 때부터 실시하게 되는 시험이 학생들의 천재성과 높은 참여도, 그리고 열정을 높여주는 데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생각이 된다.
먼저 천재성의 용어 정리를 해보자면, 정해진대로 빠르게 문제를 푸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일컫는 말이 바로 천재성이다. 만약 우리가 1학년 때 시험을 보지 않게 된다고 치면, 확실히 우리들이 겪어야 할 부담감과 압박은 덜어질 것이다. 아무리 자유로운 의견을 통해 상호작용을 이어가도 대화 대신 점수로 그 태도가 평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시험이 두 달 남지 않았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을 직면해야 한다면, 과연 손을 들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에는 그런 행동을 취할 수 있긴 했다. 그러나, 눈치는 또 그만큼 배로 늘어난다. 다들 진도를 빨리 나가서 빨리 시험 준비를 할 시간을 마련하고 싶어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1학년들에게는 첫 시험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큰 압박을 통해 누군가가 빠르게 나가고 있는 진도를 막아서면 심장이 더 빠르게 뛸 것이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손을 드는 행위는 처음 경험하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4개월 남짓 느끼고서 바로 압박 당하는 1학년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학교에 적응하느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정착해야 하는 그 불안정한 시기에만 그 짧은 자유를 누리게 해주겠다니. 이것 자체가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다시는 느끼지 못할 자유를 진정으로 누리기 위해 바쁘게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2학기에 들어서자 바로 나를 마구 조이는 시험이 식은땀인지 진짜 더워서 나는 끈적한 땀인지 구분도 못할 만큼 무섭게 다가온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자유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구멍없이 숨 쉴 시간조차 가지지 못한 채 시험에 뛰어들게 만든다는 것이 너무나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두려움과 부담감과 압박감, 가장 무겁고도 나조차도 시험의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이 세 단어들이 어딘가 부족해보이고 제대로 무언가 하나를 다 채우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그들을 더욱 요동치게 만든다. 마치 자율 축구 연습 시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0분 주고는, 바로 실전 경기에 뛰어들게 만드는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이미 운동 신경과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여유롭고 마음을 굳게 다짐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아마도 엄청난 긴장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자유도 얻지 못했고, 그래서 제대로 된 연습도 못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자율 연습 시간을 일주일은 주었다면 그들이 그 시간동안 여유를 가질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며, 제대로 숨은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30분이라는, 적응할 시간조차 없이 너무나 짧은 그 시간동안 무작정 뛰는 미숙한 선수들은 효율적인 숨쉬기조차 까먹고 그저 가파른 숨만 내쉬면서 쉬는 것 조차 포기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의 결과는 뻔하다. 과로로 인한 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자유학기제라는 것이 너무나 비효율적이며, 오히려 학생들이 공부효율을 올리기 위한 시간을 없애서 그저 초등학교 7학년이라고 말해도 무색할 어린 아이들이 너무나 가파르게 많은 과정을 혼자 밟아내야 하기 때문에 자유와 천재성 이 두가지를 전부 전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차라리 한 학년동안 적응할 기간과, 어떻게 살아남을지에 대해 고민할 여유를 줌으로써 아이들의 뇌가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는 자유학년제가 가장 낫다고 생각되었다. 아무리 쓸모없는 질문이더라도, 예민하고 답답한 시험기간이 아니라면 더 다양한 시야에서 질문해도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손을 들어 말할 수 있다. 이게 오히려 문제의 진정한 본질을 재해석하고 스스로 이 문제를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천재성을 길러주지 않을까? 우리는 어쩌면 손 드는 것조차 눈치보는 사회에서 사는 셈인데, 이것들이 오히려 아이들의 어깨를 움츠려들게 만든다. 나는 아이들에게 1년의 쉼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개월 남짓의 자유를 주어도 적응 기간을 제외하면 진정한 자유와 편안함을 느낄 시간은 한 달조차도 없다. 졸음과 부담과 눈치를 온 몸으로 받아야 하는 그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나 뜬금없는 기대를 바라기보다는, 정말 쉬어갈 수 있는 쉼을 주어서 공부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물도 갑자기 많은 햇빛과 물을 먹으면 금방 썩어서 크게 자라야 한다는 기대를 져버리게 되는 것처럼, 너무 빠르고 바쁘게 세상을 알려주려는 태도는 오히려 반비례 상태인 학생들을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