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교과서 말고 밖에 있어> - 자유학기제 문제
홍지호
오늘 4시 미국의 대선은 막을 내리고 도날드 트럼프가 새로운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런 큰 뉴스를 마침 6교시에 있던 사회 시간에서는 언급 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곧 있을 기말고사를 위해서 열심히 환율에 대한 이야기들을 설명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읊고 있는 것에 가깝다. 환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미국의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는 쥐뿔만큼도 하지 않으면서 “저환율이 되면 미국에서 물건을 안 산다 외워”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수업은 나에게 있어서 야속하기만 하다. 왜 우리는 사회를 뉴스가 아니라 교과서로 보려하고,수학을 가게에서 계산하려 하지 않고 문제집에서 계산 하려 하는지 참 의문이다. 세상은 교과서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그러나 이를 아는 사람은 몇 없는 듯 싶다.
내가 자유학년제를 할 무렵에,그리고 지금도 자유 학기제는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마치 새장의 문은 열려 있지만 정작 새의 다리에는 끈 하나가 묶여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새에게 자유롭게 훨훨 하늘을 날아라고 명령한다. 나는 이게 어딜 봐서 자유이고 경험인지 잘 모르겠다. 시험을 안 본다뿐이지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국어 2단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배우고 있는 건 ‘담화’이다. 담화는 생각을 문장단위로 표현해낸 발화의 집합이라고 말한다. 자유학기제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당연히 선생님께서 2명씩 짝을 지으라고 하시길래 발화와 발화를 오가며 직접 담화를 해보는 것을 체험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짝으로 하는 건 담화가 잘 들어나는 글인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을 역할을 나눠 2명이서 번갈아 읽으라는 것뿐이었다. 내가 선생님께 물었다. “그냥 담화를 한번 해보면 안돼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은 “너희 곧 기말이잖아”였다.
자유학기제가 이렇게 변질된 이유는 간단하다. 학부모가 싫어해서이다. 자유학기제가 완전히 체험적으로 변하게 되면 다양한 경험을 준다는 자유학기제의 취지와는 다르게 다양함이 다름이 되고 다름은 곧 틀림이 되어 지필고사를 보는 ‘우리 아들’의 성적이 곤두박질 칠 것이라는 주장이 학부모의 주장이다. 진로와 미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그저 공부할 시간에 노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 5학년 때 담임선생님또한 수학이나 사회를 교과서로 수업하기보다는,진도를 뺴기 보다는 매일 매일 PPT를 준비 해오신 뒤 인문학에 대해서 수업하시고 글을 써오라고 하였다. 그런 경험이 나의 인생을 바꿔 놓았고 나의 진로를 어느 정도 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 고마운 수업의 나날이였지만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무렵 5학년 담임 선생님은 학부모의 민원 전화로 시말서를 쓰고 있단 말을 듣게 되었다. 사유는 “글을 쓰라 시키지 말고 교과서 수업이나 해라”는 요구였다. 그 어머니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진로로 정할 수도 있는 기회와 길을,인생을 오로지 공부 하나로 퉁 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들은 정말로 우매하다. 수시와 정시,대학이 전부인 줄 안다.
사실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공부가 다일지도 모르지. 좋은 학교 좋은 성적이 다 일 수도 있지. 그러나 나는 동의하진 못하겠다. 맹목적으로 공부만을 수행하는 학생들이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에 간다고 해서 인간다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수능을 위해서,시험을 위해서 암기만을 하고 주입식으로 공부를 한다면,그렇게 좋은 기회들을 얻는다면 그들은 그 좋은 기회를 잘 써먹을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학부모와 교육 시스템의 반대로 사고력과 암기력을 바꿨고 그들은 절대로 좋은 사고력을 가질 수 없다. 학생들은 좋고 창의적인 사고를 도출해내면 오답이라고 빗금이 쳐졌기 때문이다. 이러면서 어떻게 한국이 이공계열로 노벨상을 받는단 말을 하는 겐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런 교과서에 집중된 학생들의 시선을 축구로,책으로,실험으로,토론으로 등 등으로 옮겨져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학생들이 교과서에만 집중해야 했던 그 눈의 방향을 일탈이나 방황이란 말 대신 진로 탐색이란 명분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자유학기제의 역할이다. 그런데 모두가 방황을 방조하는 게 자유학기제의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어째서 자유학기제가,학교가 직접 나서서 그들이 공부 이외의 삶도 존재한다고 홍보하게끔 하는 지에 대해서,PC방을 가면 프로게이머의 꿈이 있는지 물어 보는 게 아니라 패배자가 되고 싶니? 라고 묻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 인생을 두려워 하고 있다. 마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한스 기벤라트가 방학에 밖에 나가 놀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라틴어를 공부하여서 전교 1등이 되기 위해서,공부로 좋은 삶을 영위하고 싶단 마음에,정확히는 그래야 하는 상황에 좋아하는 강가에서 산책을 하고 낚시를 하는 소소한 취미와 “나중에 어부나 해볼까?”라는 생각을 원천 차단 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한스는 제한되어 버린 꿈에 몸 부림 치다가 제한되지 않은 무한한 꿈을 위해서 강과 하나가 된 것이다. 이 세계에서는 무한한 꿈과 희망,창의력과 사고력은 취급 불가다. 그걸 잘 알았던 한스를 위해서라도 우리들은 자유 학기제를 시행해야 한다. 언제까지고 학생들을 외우기 머신으로,AI의 하위 호환으로 키울 생각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