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문제>
정서윤
어린 시절, 해리포터를 읽으면서 가장 눈여겨봤던 장면이 바로 퀴디치였다. 그들의 고조된 긴장감은 나조차 껄끄러운 각 팀들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게 만들었고, 학자들의 지루한 선악의 각도를 따지지 않고 피 튀기는, 역동적인 동작들을 선보이며 시작되는 그들의 광기 어린 눈빛과 빛나는 라인업들, 튕겨나가는 빗자루의 공기의 속도와 진공을 연상시키는 듯한 숨막히는 장면의 연결성들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보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리포터를 주제로 한 사상 최대 크기의 박물관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일본을 찾아갔을 때 느껴지던 웅장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들의 아름다웠던 10년간의 결과들이 세상에 선보여지듯, 부모님이 손수 지어준 "다니엘 래드클리프" 라는 이름 자체는 이제 "해리"라는 대중적인 요소로 변질되어 우리에게 기계적으로 날아다니는 빗자루와 지팡이를 들고 저마다 다른 기숙사의 머플러를 매며 마법을 부리는 동작을 취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액체인 무언가에 푹 적셔져 있는 것 같이 보이는, 또 다른 의미로 "취한 듯해 보이는" 사람들의 진정한 기분의 의미는 아마.. 종의 기원의 한유진처럼 현실에 있는 모든 과학들을 이러한 마법같은 터무니없고 신비로운 것들로 치유하려 하는 듯 했다.
이렇게 취해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참 다양한 모습들이 영화처럼 필터로 각색되어 있듯 나타난다. 이렇게 그들의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아직까지 현실을 잊고 해리의 모습을 엿보며 자신도 그렇게 될까 의미없게 비싼 지팡이를 흔들어보는 나약한 인간들인데, 교활한 신은 그러한 인간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다. 물론 동양과 서양의 나누어진 성향에 따라 이것들이 조금씩 변모된 얼굴처럼, 예를 들어 눈동자 색이나 머리의 색깔처럼 나타나있듯, 그들의 "퀴디치"를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씩 다르다. 서양에서는 말 그대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운동"에 대해서 원론적으로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입장이었다. 공부만큼이나 체력이 중요하고 본질적인 성향을 키우기 위해, 끈기력과 인내심을 키우기 위해라는 의사들의 일반적인 진단에 논거한 것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아이비리그에서는 이 두 상충된 성질들을 병행하며 공부를 진행한다. 파리올림픽에 109명의 아이비리그 재학·졸업생들이 출전했다. 하버드대 26명, 프린스턴대 25명 등. 이들은 여자 1600m 계주 등에서 16개 금메달을 포함해 모두 32개 메달을 땄다. 결론적으로, 아이비리그 선수들은 역대 올림픽에서 500여 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그들은 야성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말했다기엔 지나친 통찰력과 5억의 비용을 들어 입학한 아이비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준 놓치기 아까운 인재들이었다. 서양은, 어쩌면 운동에 대한 좋은 의견을 바탕으로 섞여진 두 용액에서 이루 말할 이물질이 검출되지 않은 듯 완벽한 "결합의 정석"을 이룬 완벽한 예시라 기억할 수 있다.
반면, 동양은 이러한 서양의 주장과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운동보다는 공부"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나는 "아름다운 꼴찌"라는 책을 읽히게 해주고 싶다. 운동이나 이러한 분야에서는 남들보다 월등히 떨어지는 능력과 게이지이지만, 공부라는 인생의 목표에 모든 것을 집중하여 비율이 잘못 맞추어진 하나의 케이크를 만드는 행위를 우리나라는 강행하고 있었다. 케이크는 한쪽은 너무 낮았고, 한쪽은 너무 높았으며, 이는 운동과 공부에 대한 결합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둘의 당당한 의견과 그들을 받아들일 추호도 없다는 뜻의 "높이"라는 단위를 적용하여 케이크를 완성시켰고, 이에서 더 높은 높이를 차지한 "공부"라는 쪽은 우리의 사회에서 조금 더 우세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서울대생이 "만인의 꼴찌"여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공부만큼은 "만인의 일등"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학문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성적과 명성을 쌓는 주요 수단으로 여겨지며, 운동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학업에서 우수하지 않다면 동료나 교사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러한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열망을 표하는 학생들을 우리 주변에서 찾기는 참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공부를 잘 하지 않고 펜싱 선수로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선생님들에게 따갑디 따가운 눈초리를 받지만, 마음만큼은 니체의 3단계 중 어린아이의 단계를 실천한 듯 나른하고 빛나는 듯한 눈동자를 소유하고 있는 광인이다. 내가 이러한 친구들이 공부를 못해서 성공하지 못한다는 서양에 집중된 시선을 반영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님을 잘 생각해주길 바란다. 난 그저 이렇게 높이라는 단위와 공부라는 원론적인 지식에만 집착하여 정작 전략을 짜지 않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비판하는 것 뿐이다. 공부는 "체력"이 필요하듯이, 전략을 잘 짜지 않으면, 특히 그러한 것들도 경험을 해 보지 않는다면 잘 알 수 없다. 송나라의 어떠한 병사들도 병법을 책으로 공부하였다는 역사의 기록이 남아있단 걸 책에서 본 적이 있으니, 공부라는 제한된 지식에서 습득하는 지식의 범위도 제한되어있을 뿐더러, 경험하지 않은 뻣뻣한 몸으로 전장터에 나가 창이라고 간신히 가눌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을 것이고, "싸우는 행위 자체.", 난 그것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머리를 태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몸을 태워서 자신의 한계를 증명하는 것이 파리올림픽에서의 성과라는 것을 서양의 아이비리그는 누구보다도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해리포터의 가정된 "퀴디치"라는 스포츠의 수색꾼으로써 다른 사람을 최연소라는 타이틀, 꼬리표로 능력으로써는 최장자라는 이름에 맞을 만큼 비범한 실력들로 모두를 이끌어 그리핀도르에게 승리를 거머쥐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을 지지하는 팬들과 신뢰를 형성하게 되고, 자신의 단순한 별명인 "볼드모트를 이기고 살아남은 유명인"이라는 명성을 넘어서 친구들에게 신뢰받는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퀴디치를 통해 해리는 용기와 침착함을 드러내며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학교에 조금 더 잘 적응하게 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의 몸 구조가, 그들의 식습관과 같은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닌, 내 생각에는 "한계를 믿는 신념의 강약조절"이 동양과 서양의 가장 상반된 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서양은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아이비리그에 입성하고, 파리올림픽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서사는 영원히 기억될 것은 물론이요, 더 많은 다각형의 변을, 그리고 그 변을 대표하는 하나의 능력을 원하는 사회로써 이러한 사람들은 사회라는 영화의 입장권을 미리 받아놓은 셈이 된다. 세상은 동양의 한계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공부를 잘 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내 친구는 물론 공부까지 잘했더라면 전형적인 서양의 섞여진 용액에 대비되는 아름다움으로 나에게 언급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열망적인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던 내 친구는 "동양의 사상적 의미에 포함되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 밖에 없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물론 사회의 진정한 가치라고 여기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우린 아직 서로가 결합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케이크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두 낙화의 시기를 겪는다면, 서양에서 열심히 퀴디치를 했던 학생과 한국 대치동에서 12시간동안 공부를 하며 기력이 쇠약해져가는 한국 학생 중 더 낙화의 시기를 빨리 맞이하는 쪽은 여러분이 판단하지 않으셔도 대충 짐작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낙화의 시기를 아직 우리나라 맞이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수 천년의 역사를 피와 응집된 피멍으로 물들였던 우리에게 드디어 정화할 기회가 찾아왔는데, 이러한 공부의 제재로 인한 독창적이고 이상한, 엉뚱한 생각들을 마음껏 뿌리고 내뱉지 못한다는 것이 나로써는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의 잠재적인 생각들이 아직 응고된 소금이 되어 운동이라는 염분 가득한 땀과 결합되어 하나의 "소금물"이라는 것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며, 상상에 젖어 퀴디치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한국 사람들이 그 웅장하고 장엄했던 일본 박물관에 얼마나 오셨는지 나는 세어볼 만큼의 숫자의 단위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단지 취한 사람들의 황혼을 마주친 듯한 표정에서 난 그들의 진정한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고, 사람들의 통찰력이 한계에 맞닥뜨리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은 이미 아름다운 용액을 만들어서 세상을 향해 상공하듯 날아오릅니다. 우리에게는 날 수 있는 빗자루도, 잡을 수 있는 골든 스니치와 피해야 하는 블러저도 없기에 이것이 실현될 수 없습니다. 암울한 낙화의 시기를 "운동"이라는 공식에 대입해보십시오. 당신은 남김없이 떨어지는 낙화의 잎사귀를 지켜보고 싶지 않으실 것이고, 난 그렇게 믿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제정한 법률안은 과학시간에 배웠던 방해석처럼 우리의 결합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난 우리들이, 심장에 박혀있는 방해석을 제거하고, 운동이라는 땀방울을 곁들인 하나의 용액을 창조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그 용액의 이름은 아마 "개화"가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