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말 동북아시아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한 세기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다가 다시 한족 왕조가 들어선 것이죠. 중국과 마찬가지로 새 왕조로 말을 갈아탄 한반도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하지만 몽골이라는 공동의 적이 없어지자 두 나라는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만 했습니다.
형 아우 관계를 확실히 해야 쓸데없이 싸울 일을 만드지 않으니깐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훌륭한 무장이었지만 그도 왕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나라를 세우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필요한 법이죠.
바로 이성계가 조선의 건국자라면 정도전은 조선의 기획자였습니다.
당연 새 나라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총책임자는 정도전이었죠.
팔방미인인 만큼 할 일도 많았지만 가장 중요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나라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성계가 공식적인 건국 발표를 미룬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새 나라의 국호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이 중요한 국가 대사를 기획자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취지로 국호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나라의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는데요.
고려가 세워질 때 다시 말해 왕건의 시대는 중국이 분열기였으므로 한반도에 간섭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새 나라의 국호조차 중국의 허가를 얻어야 했고, 또한 이름 의미보다 중국의 허가 여부가 더 중요했죠.
고심 끝에 그는 두 개의 후보를 찾아냅니다..
하나는 ”화령“이라고 하는데요. 화령이라면 이성계의 출생지인데 중국의 경우 건국자의 출생지를 국호로 정하는 게 고대의 전통이니까 그에 따른 작명입니다.
물론 문제는 없지만 중국이 그 이름을 거부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을 받드는 처지에 중국의 전통을 따라 한다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화령은 불과 수십 년 전까지 원의 쌍성 총관부가 있던 곳이며 분쟁의 지역인데 그 이름을 썼다간 중국에서 쓸데없이 그 저의를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또 하나의 후보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조선
고조선은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국가였을 뿐 아니라 2500년 전 중국에서 주나라가 세워질 무렵에 무왕이 은나라 귀족 기자에게 봉토로 내어준 곳이다.
거기에 생각에 미친 순간 정도전은 무왕을 주원장에 비유하고 기자를 이성계에 비유하는 절묘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냅니다.
홍건적의 두목 출신 주원장을 무왕에 비교된다면 더없이 분명 만족스러울 것이고 당연
승인은 따 놓은 당상이었으니까 말이죠.
이때 정도전의 재치도 중요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새 왕조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중국관이 중국 한족 왕조에 대한 사대주의에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줍니다.
그야말로 동네에서는 큰소리치지만 서울 가면 안 먹히는 것이죠.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그야말로 강약약강입니다.
물론 아직 두 나라 국교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명은 국호 하나 가지고도 얼마든지 조선을 괴롭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심술궂은 명이라 해도 두 나라의 관계를 옛 주나라와 기자조선의 관계에 비유하는 정도전의 영리한 아부에 거부하기는 힘들었죠.
사실 정도전이 국호를 정하는 일에서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고려가 건국될 때처럼 분열되어 있던 나라들을 통일한 게 아니라 쿠데타로 이룬 새 나라였기 때문에.
그러므로 정통성의 문제는 오로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죠.
따라서 조선이라는 이름은 생긴 유례부터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깔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후 조선의 역사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역사와 거리가 먼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동북아시아 왕조 세대교체에 따른 자연스러운 처세술이었을까?
아니면 정통성이 부족한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려고 사대를 한 게 아닐까요?
“작은 사물이 큰 사물에 끌리는 것은 자연법칙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동시에 ‘자연현상’에 불과하다. 자연과 달리 의지를 가진 인간 집단은 그 자연법칙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