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조선왕조실록 6

망해가는 나라 조선

by 제이티

나라는 왜 망할까요? 앞서 말했지만 결국 땅과 세금입니다. 고려가 망했던 것처럼 조선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19세기 조선의 시대는 14세기 고려 말의 시대랑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고려가 망할 때는 원나라가 지고 명나라가 뜨고 있었습니다. 조선이 망해갈 때는 청나라가 지고, 서구 열강들이 뜨고 있었죠. 서구 열강들은 동양과 비교가 안 되는 배를 타고 말도 안 되는 굉음을 내는 대포를 쏘아대면서 세계를 누비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총과 신식 문물은 마치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듯 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죠. 넘치는 힘으로 세계를 식민지를 삶고 통상과 무역을 요구했습니다. 옆 나라 청나라는 영국에게 아편전쟁에 패했고, 일본 또한 페리 제독이 이끄는 함대에 강제로 나라의 문을 열었습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으로만 알았던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 시작합니다. 그저 미개한 오랑캐라고 여겼던 실제로 문화 수준이 떨어졌던 서양이 이제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조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예전에는 지구인끼리 싸웠다면 이제 외계인이 쳐들어오는 이러한 상황이라면, 우선 일단 그들의 무기와 문물 등 모든 것을 연구하고 알아야 하겠죠. 적을 모르는데 이길 수는 없으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꾸준히 레이더를 켜고, 움직임을 주시해야 하는데 세도정치 시기에 조선은 그럴만한 의지와 능력이 없었습니다. 민생을 안정시키고 국가 재정을 넉넉히 해야 외부의 적에 대한 대응책도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정조는 상황을 알고 있었으나 근본적인 수술을 시도하지 않고 단순히 관리하고 단속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런데 정조가 아니어도 그 누구여도 근본적인 수술과 개혁이 가능했을까요?


정도전이 꿈꾸었던 나라는 500년이 지나자 빛바랜 깃발과 구호만 남았습니다. 정조도 해결책은 찾은 곳은 여전히 유교 경전에 불과했죠.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검약과 절제 쉽게 말해 몸가짐을 바로 하고, 안정과 질서를 중시하는 유교 시스템은 이제 급변하는 새로운 시대에 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검소하고 아끼는 게 미덕이지만, 만약 여러분이 똑같은 신발을 다 떨어질 때까지 신는 다면, 신발 가게는 다 망하겠죠.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조선을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16세기 서양의 청춘들은 나침반과 지도 하나를 들고, 홀몸으로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 바다로 떠났습니다. 가는 도중에 방향도 잃고, 목숨을 잃기도 했죠. 반면 우리의 청춘들은 2000년 공자 맹자의 말씀을 적어놓은 사서오경을 죽어라 외우면서 과거시험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당연 그 시대의 우리의 청춘이 서양의 젊은이보다 현명했으며, 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험심과 탐험심을 배우지 못했죠. 지금도 입시와 취업을 위해 학원과 독서실에 있는 학생들을 보면 조선의 사대부와 닮았다고 생각이 드네요.


시대는 흐르고 문제는 변화하는데 책 속의 정답은 늘 고정되어있습니다. 보는 책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몸이 크면 옷을 바꿔 입거나 새 옷을 입어야 되는데 말이죠.


조선에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서구문물을 가지고 귀국할 때 또한 정조 때 서양에서 서학과 신식 문물이 들어올 때 두 번의 문을 두드렸지만 조선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낯설고 두려웠던 것이겠죠.


조선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지 못했고, 아시다시피 그 후 역사는 안타깝게 흘러갑니다.


우리의 것이 소중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의 것은 소중하지 않을까요?

나라가 흥하고 망할 때 혹은 기회가 왔을 때 잡지 못하고 주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펜은 칼보다 강할까요? 아니면 칼이 펜보다 강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공자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보지 못했을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까요?



나침반 하나 들고 익숙한 여기를 버리고 낯선 저기로 떠나는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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