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조선왕조실록 5

왕 보다 신하가 강한 군약신강의 나라

by 제이티


두 번의 전쟁이 휩쓸고 갔지만, 사대부들은 이번에도 혁신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항복의 치욕을 복수하겠다면서, 말 뿐은 북벌 구호를 내세워 정비하지만, 이미 황폐화된 땅에 북벌할만한 식량과 자원이 있을 리가 만무하죠. 전쟁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진정 복수를 하고자 한다면, 사대부들의 반성과 자진 세금으로 정비해야 되지만, 이미 칼보다 붓을 가진 자들은 이제 싸우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입은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현실 개혁보다는 계란을 위부터 깨 먹어야 할까? 아래부터 깨 먹어야 할까? 라고 싸우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닫습니다. 왕이 상복을 몇 년 입어야 도리에 맞는 것인지 싸움에 목숨을 걸고 매달립니다. 현종은 신하들의 말싸움 속에 내편 들어주다가 힘없이 생을 마감했죠. 다음 왕 숙종은 결심합니다. 아버지처럼 신하들에게 휘두르지 않고, 강력한 왕권을 갖겠다고 말이죠. 강력한 군주 숙종은 자신의 사랑과 결혼을 정치에 이용합니다. 장희빈에게 눈이 팔려 인현왕후를 쫓아냈다가 다시 장희빈을 쫓아내고 인현왕후를 찾죠. 전 여자 친구를 못 잊은 건지 왔다 갔다 하는 숙종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모든 걸 다 줄수 있는 것처럼 하다가 차갑게 돌아서는 눈빛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장희빈이든 인현왕후든 훗날 영조가 되는 무수리 최 씨든 누구든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사랑을 이용해서 신하들을 누르고자 했던 것이죠. 그렇게 강력하게 왕권을 누립니다. 자신의 왕권을 위해 연인들을 이용했죠. 그렇다면 그 강력한 왕권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신하들의 반대로 하지 못했던 것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시대 진정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요?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려면, 조선의 전성기 세종이 했던 것처럼, 정확하고 합리적인 세금 징수와, 농업생산력을 늘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당시 조선은 세금을 어떻게 거두었을까요? 땅을 가진 사람이 내는 세금, 그리고 군대를 가거나 대신 세금을 내야 했고, 마지막으로 특산물을 직접 거두었습니다. 지금처럼 시장이 활성화되고 화폐경제가 싹트지 않았기에 직접 전국 각지에 나는 특산물을 임금께 올리곤 했죠.


왕에게 진상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3가지 세금 중 특히 특산물 세금이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매년 달라지는 기후와 풍토에 따라 특산물인 인삼이나 전복이 나오기도 하고 나오지 않기도 하잖아요. 횟집에 가도, 자연산 회는 시가라고 표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사정을 조정에서는 알리가 없죠. 전복이 잡히든 안 잡히든 매년 똑같은 세금을 징수합니다. 세금을 보내면 큰 일 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죠. 누군가에게 전복을 사서 대신 내야 하겠죠. 그 누군가들이 그런데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르고, 횡포를 하는 것이죠.


이를 ‘방납의 폐단’이라고 합니다. 이를 해결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특산물 대신 쌀로 세금을 걷으면 되는 것이죠. 걷어 들인 쌀로 시장에서 필요한 특산물을 사면 되니까요. 이 간단한 해결책을 ‘대동법’이라 하는데 전국적으로 시행되는데 는 무려 100년이나 걸립니다. 방납업자들과 연결된 관리, 신하들이 쏠쏠한 재테크 수단을 쉽게 양보할리가 없었죠. 광해군때 처음으로 건의 되었으나 효종때 가서야 전국으로 시행되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올바른 정책과 방법을 알고 있어도 이를 시행할 힘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로운 취지와 사명감에 걸맞는 힘이 필요한 법이죠.


또 다른 세금은 군역(군대 가는 것)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숙종은 침묵합니다. 강력한 왕권이라 생각했지만, 괜히 사대부 전체의 미움을 샀다간 자신도 연산군이나 광해군 꼴이 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죠. 강력한 힘으로 연애를 했지만, 세금 개혁은 못했고, 결국 영조 26년에 이르러서 양반은 세금을 내지 않는 반쪽짜리 개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영 정조는 강력한 군주로 기억하지만, 이미 임금보다 당파와 공자를 우선시하는 신하들 사이에서 힘들기 마찬가지이었죠. 왕은 한 명이지만 신하는 여러 명이고, 무리 짓는다면 힘이 언제든지 세질 수가 있죠. 여러분이 왕이라면 이제 어떤 정책을 해야 할까요? 무리하게 신하들을 제거하려 했다간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고, 누구만 편애했다가는 다른 반대파에 미움을 삽니다. 설령 자신을 지지해줬던 정당이라 하더라고 말이죠. 공정하게 신하들을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기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탕평책’이라는 기가 막힌 묘수를 떠오르죠. 왕이 심판이 되어서 저울질을 다음 시작합니다. 이렇게 정조는 세종처럼 조선을 또 한 번 듯 높일 거라 기대했죠. 하지만 시대의 한계일까요? 떠오르는 조선의 세종과 지고 있는 조선의 정조는 달랐습니다. 정조의 시대에는 어느새 세계는 급변하고, 서양의 세력들이 동양을 호시탐탐 노리는 시기였죠.


정조 이후 메시가 없는 축구팀처럼 이제 더 이상 왕의 이름은 역사책에 보이지가 않습니다. 완전히 신하의 시대가 온 것이죠. 말이 이 씨 왕조이지 사실상 김 씨 왕조가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만 모든 장관과 시장 군수까지 안동 김 씨가 아니면 될 수 없었죠. 그렇다면 내가 안동 김 씨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관직에 올라야 할까요? 그렇죠. 그들에게 돈을 주고 관직을 사면되겠죠. 그렇다면 내가 만약 5천만 원 주고 관직을 샀다면, 답은 뻔한 거죠. 투자금은 뽑아야 되니까요. 그렇게 해서 더 백성들은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이제 신하 아닌 신하 중의 신하 특정 가문이 지배하는 세도정치 시대가 오면서 조선은 외적이 쳐들어오지 않아도 이미 망할 징조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민란입니다. 이제 농민들인 예전처럼 그저 당하고 무시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들고일어나 나라에 반기를 들고일어났습니다. 밟히면 밟고 세금 뜯어가면 그저 당하기만 했던 민중이 이제 일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유교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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