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보는 조선왕조실록 4

전쟁이 끝난 후

by 제이티


바로 이 문제점을 전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세금도 안 내고 군대도 안 가는 지배세력은 오랑캐라고 무시했던 일본에게 호되게 당하게 됩니다. 왜구가 벌벌 떨었던 전쟁 영웅 이성계의 핏줄인데 선조는 도성을 버리고 도망을 갑니다. 하지만 조선에는 이순신이 있었고 그보다 더 큰 영웅인 의병이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은 나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자 그리고 이제 전쟁이 끝났습니다.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치 고려 말의 신흥 무인 세력이 고려왕조를 타도했듯이,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 조선은 또 한 번 수술을 거쳐야 되지 않을까요? 적어도 뼈아픈 자기반성을 통해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되지 않습니까? 난 이후 조선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전쟁이 휩쓸고 간 후 나라를 어떻게 재정비해야 할까요? 두 번 다시 못 쳐들어오게 성을 다시 쌓고 무기를 늘리고, 병사들을 훈련시켜야 하겠죠.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듭니다. 즉 다시 말해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죠. 전란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세금 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애석하게도 사대부 세력들은 그럴만한 의지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세력이 나타나지도 못했죠. 도망간 왕은 자기 자리 지키기에 급급했으며, 신하들은 다른 당파에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더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합니다. 나라를 위해 피 흘린 장수와 의병장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도망갔던 자들이 다시 돌아와 조정을 장악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임진왜란을 틈타 만주의 후금의 세력이 급격히 확대되고 명나라는 쇠퇴하게 됩니다. 달라지는 국제질서 분위기를 바로 읽고 제대로 대처한 이는 바로 광해군이었습니다. 떠오르는 신생국 후금을 자극하지 않고 명과 적대하지 않으려고 줄다리기 외교를 합니다. 당장 폐허가 된 조선 땅인데 또 한 번 전쟁을 겪을 순 없으니깐요.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정책이었지만 사대부 세력의 불만을 쌓게 됩니다. 감히 어떻게 부모의 나라 명나라를 등지고 오랑캐의 나라와 친하게 지내려고 한다면서 말이죠. 거기에 광해군의 잔혹한 옥사와 지나친 궁궐 건축으로 불만이 폭발한 사대부들은 결국 광해군을 왕좌에서 끌어내립니다. 연산군에 이어서 신하가 왕을 끌어내린 두 번째 사례가 발생한 거죠. 여기서 보듯이, 조선의 왕은 결코 신하보다 강하지 못했습니다.


왕을 끌어내린 사대부들의 명분은 무엇이었죠. 그렇죠. 명에게 잘 보고, 후금(오랑캐)을 무시하는 정책을 펼칩니다. 이런 분위기를 떠오르는 강자 후금이 곱게 볼리가 없겠죠. 새로운 챔피언이 된 후금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원하는데, 여전히 조선은 자기를 애송이 취급하는 거죠. 결국 화가 난 후금은 또다시 조선을 전쟁의 불바다 속으로 몰아넣었고, 인조는 삼전도에서 자기가 무시했던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맛봅니다.


거듭된 전쟁은 농토를 황무지로 만들고,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했으며 나라의 재정 또한 어렵게 했습니다. 이쯤 되면 혁명이 일어날 뻔도 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선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가 됩니다. 하지만 이미 이때부터 조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종대왕이 떠오르는 건강한 나라의 모습을 잃어버립니다. 서서히 몸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말도 안되게 약해진 조선의 국력의 원인이 어디였을까요? 하물며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두 번이나 전란을 겪었는데도 조선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떠날 때도 백성들은 원망도 했지만 어떠한 지원도 사사로운 마음도 없이 의로운 마음으로 싸웠습니다. 임금이 백성을 버렸지만 백성은 임금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죠. 지금의 사고 방식으로는 이해가 안가지만, 그 당시 백성들에게 있어서 머릿속에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한가지 입니다. 바로 왕이 있어야 나라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 비록 못나고 힘이 없어도 말이죠.


바로 '의병'이 그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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