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의 나라 조선
강력한 왕은 우리가 아는 태종 세종 세조 이후로 어느새 신하들의 세상이 돼 버린 것이죠. 태종과 세조는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는데 왜 다른 왕들은 그렇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단순히 무능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운이 안 좋았을까요? 아니죠. 태종과 세조는 건국 초기에 왕권이 강할 때 태어난 반면, 후의 왕들은 신하들이 더 입김이 강할 때 태어난 것이죠.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세종대왕이 대왕인 이유도, 무서운 아버지 태종이 있었기에 신하들이 꼼짝 못 했던 것이기 때문이죠.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들의 특징은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왕의 된 경우입니다. 이들은 첫째로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왕을 물려받지도 않았죠. 그들의 힘으로 직접 왕좌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형제와 친족 가족을 직접 제거하고 손수 왕으로 올라섰습니다.
형제와 부모를 져버린 패륜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왕권은 강화되고 나라의 재정은 튼튼해지고, 기강이 바로 서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점은 없을까요?
쿠데타로 왕이 되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이들은 목숨을 걸고 왕이 되었습니다. 과연 혼자 힘으로 반란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죠. 쿠데타의 옆에는 목숨을 같이 할 전우들이 필요합니다. 까딱하다간 역모로 몰려 죽을 수도 있으니깐 이들에게는 목숨과 바꿀만한 큰 보상이 필요하겠죠. 왕조시대의 당연 보상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땅이죠. 목숨 걸고 싸운 공신들에게 땅이 하사가 됩니다. 원래는 왕토 사상이라 수조권만 주는 것인데 이들에게는 아예 가지라고 주는 것이죠. 그럴만하니깐요.. 그렇다면 어떤 문제점이 발생하죠? 고려가 무너졌던 이유가 바로 왕토 사상의 붕괴 아니었습니까? 비슷한 과정을 조선도 겪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쿠데타는 또 다른 쿠데타를 부르기 마련이죠. 어린아이가 부모의 모든 행동을 따라 하듯이 학습효과가 생기기 마련이죠. 누구든 힘만 세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죠. 태종과 세조가 살아있을 때는 모르겠으나, 이들이 죽고 나면, 막강한 신하를 어린 임금이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을까요?
이들은 막강한 권력과 토지를 갖고 있는데 말이죠. 어린 임금 성종은 이 공신들이라 불리는 ‘훈구파’(공이 있는 신하)를 견제하기 위해 새로운 세력을 끌어들입니다. 바로 이들을 ‘사림’이라고 부릅니다. 사림(숲에서 공부하는 선비)라고 떠오르면 되겠습니다. 마치 고려 말처럼 훈구파는 권문세족처럼 막강하고 사림은 신진사대부처럼 똑같은 데자뷰가 발생합니다. 하늘과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없듯이 이들은 당연히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이 당시 여러분이 왕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리겠습니까? 막강한 훈구파의 편을 들것입니까? 아니면 새로운 견제 세력인 사림의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말솜씨나 글솜씨나 왕의 편애까지 권력은 사림으로 흐르게 됩니다. 하지만 원리원칙주의에 항상 입바른 소리만 하는 신하(사림)들은 왕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훈구파를 몰아내려고 했던 자리에 사림이 어느새 더 목소리가 커진 것이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왕 연산군은 이들은 역모로 몰아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립니다. 이른바 ‘사화’(사림들이 화를 입었다)를 통해 이들을 통제하고 신하가 아닌 왕이 중심이 아닌 절대 권력을 만들려고 했죠. 그런데 연산군은 종이나 조가 아니라 군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비슷하게 시도했던 선대왕 세조처럼 되고 싶었으나 결국 신하들에 의해 쫓겨났죠. 신하들에 의해 쫓겨난 왕이 연산군이라면 신하들에 의해 만들어진 왕이 중종이 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제 왕도 신하들이 마음에 들면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는 세상이 돼 버린 것이죠. 당연히 중종은 힘없는 왕이 됩니다. 힘없는 왕 주변에는 간신들이 득실거리죠. 하지만 중종은 세조나 태종이 아닙니다. 쿠데타는 성공했지만 주연이 아니라 조연의 자리로 겨우 버스 탄 것에 불과했죠. 그래서 핸들을 조광조라는 걸출한 신하에게 맡깁니다. 그런데 또 불안해집니다. 핸들을 잡은 조광조가 더 인기가 많아지는 것이죠. 사림들 즉 신하들은 이제 왕보다 더 신하를 높이 받들기 시작합니다. 신하들이 신하를 왕보다 우선시 하는 묘한 분위기가 되는것이죠. 불안한 중종은 조광조에게 사약을 내리죠. 그렇게 다시 사림들은 화를 입었고, 명종 인종 시기에도 왕실 외척(왕의 친척)의 권력 다툼 속에 화를 입지만 꿋꿋하게 살아남습니다.
여러 차례 사화를 딛고 대체할 수 없는 조선의 유일 세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간신이나 외척(왕의 친척) 환관이 아니라 신하들이 중심이 되는 나라로 다시 재 건국하게 됩니다. 4번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사화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제 더 이상 왕의 힘이 절대적으로 신하보다 세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왕은 하나지만 신하는 여럿이고, 왕의 귀에 들어오는 모든 정보도 이들의 입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신하에게 쫓겨나는 왕 신하들의 의해 만들어지는 왕 신하들의 총애를 받는 왕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들은 추구하는 이상이나 목표는 무엇일까요? 조선 초기의 신진사대부처럼 기백과 이상을 보여줄까요? 애석하게도 그들은 명확한 비전이나 구체적인 계획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단순히 2000년 전 책 속의 외침인 ‘공자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뻔하다 뻔한 주장만 남긴 채로 말이죠. 마치 훌륭하고 잘살고 모두가 함께 하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죠. 과거시험을 패스한 엘리트 인재들이었지만 현실 개혁의 필요성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공부하는 성리학에서는 고기를 잡고 농사를 짓는 법이 나오지 않으니깐 말이죠.
사림이 진출한 이래 집권에 성공할 때까지 조선은 어떻게 바뀌어 왔을까요? 대토지 소유가 일반화되고 어느새 양반은 신분 화가 됩니다. 과거에 합격해야 양반이었지만 마치 고려 말의 권문세족처럼 이제 고시 패스의 상징이 양반이 아니라 하나의 신분이 됩니다. 양반은 관리인데 마치 귀족처럼 변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다시 고려의 문제점이 똑같이 재현됩니다. 양반은 이제 세금은 내지 않고 군대도 가지 않습니다. 어느새 칼과 창은 천한 것이 돼 버리고, 붓이 귀한 것이 돼 버리죠. 양반이 세금을 내지 않고 군대도 가지 않는다면,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채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자연스럽게 세금은 평민들에게 넘겨지고, 군사력은 말도 안 되게 약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