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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티 Dec 16. 2024

 매트릭스-꿈

 김민하



  "나는 이 스테이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 이걸 내 입 속에 집어넣으면 매트릭스

가 나의 뇌에다 이게 더 많고 맛있다고 말해 주는 걸 알고 있다고. 9년이 지나고 나서

내가 뭘 깨달았는지 알아? 무지가 곧 행복이라는 걸.'' - 매트리스


  희끄무레한 윤곽이 어렴푸레 보이는 저 환상 속에서 잠든 나는 참담하던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 무의식의 세계로 잡입한다. 피폐해진 육체를 이끌고 들어간 이상함이 일상이 된 세계 속에서 나는 내가 주연으로 출연한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허구적이고도 인공적인 세계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2인칭으로 보였다가 3인칭으로도 보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세계에서 난 모든 감각이 마비되며 눈 앞에 보이는 시뮬레이션을 가만히 지켜만 본다. 꿈 속의 나는 매트리스와도 같은 세계에서 나만의 파란 알약을 제조 중이다. 현실에서 떨어지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말들이 꿈 속에 잠식되어 있는 나에게도 영향을 미쳐 침대에서 일어난 적은 분명 9번이 넘어가는 데 정작 일어나보면 끈임없이 달라지는 주위 풍경을 연상시킨다. 한 번 눈을 떴더니 혹등 고래가 뛰어오르는 바닷가 풍경을 보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내가 있고, 한 번 더 깨어나니 달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출발하는 서면역이 보인다. 이번엔 진짜겠지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니 마법의 세계에서 쿠키를 굽고 있는 내가 보이고, 급기야는 잔치국수를 마시다 싶이 들이키고 있는 내가 미소를 지으며 시원한 육수를 꿀떡꿀떡 먹고 있다. 다시 일어나니 대게 다리를 뜯고 내장에 밥을 비비는 나의 무명의 상태가 머리를 울리고, 마지막이겠지 싶어 일어선 곳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는 따스한 느낌의 거리에서 첫 눈을 만져보는 내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귀가 쨍하도록 울려대는 알람 소리에 잠이 깨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아스라이 사라져만 가는 꿈의 기억이 옷과 음식, 쓰레기, 장난감이 널브러진 차가운 바닥에 덧입혀 나를 마주한다. 분명 꿈에서는 진짜 사실이라고 받아들였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볼 한 번 안 꼬집어 보고 눈에 보이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믿어 행복했었는데, 왜 갑자기 내 눈 앞에 놓인 건 흑백 프린터기로 뽑은 차갑게 식은 수학 문제지인지... 그리고 들려오는 한숨소리인지....


   시뮬레이션에 너무 중독되어 있던 나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 머릿속을 채워 동기부여만을 하는 영상들을 찾아보고 12시간 동안 반복재생하듯 틀어놓은 한숨소리와 훌쩍임에 지쳐 현실과 가짜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나는 무식과 무지의 상태에 미쳐 환상과 상상만을 불어넣어 하루빨리 미래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매트리스에서는 무지가 행복이라는 말을 한다. 만약 무지가 행복이라는 말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영원한 무의식에 빠져야 하지 않을까? 대왕 솜사탕을 들고 양껏 함박 미소를 지으며 뛰어오르던 과거의 나는 여러번의 그릿을 통해 더 이상은 챙겨둘 필요없는 허물 껍데기가 되어 핸드폰 속 이미지 저편으로 날아간다.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초등학교 이전의 나는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의 퍼즐들이 되어 카메라 안 만을 날아다니고 애써 노력해도 떠오르는 것들은 목마를 타서 행복했던 감정, 집에 설치된 그네를 타다가 심하게 넘어져 아프고 무서웠던 감정이 되어 이제는 기억이 아닌 한 편의 감정으로 남아 기억된다. 하지만 깊게 고뇌를 해보면 이 마저도 사진을 보고 말한 엄마의 말이 진짜인것 처럼 변해 나의 기억저장소에 흐릿해진 상태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이 떄 참 귀여웠었지. 볼도 뽈록하고, 배도 뽈똑해서 얼마나 통실통실 귀여웠었는데.. '' 라는 설명과 더불어 화면 속의 순수했던 나의 표정과 눈동자를 보면 어림짐작으로 그 떄의 기분을 실감나는 시뮬레이션로 체험할 수 있는 게 현재 고도로 발달된 sns를 통해 습득한 지식과 더불어 완성되는 기억은 너무나도 진실인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시뮬라크르가 되어 나의 머릿속 저편에 저장된다. 어쩌면 우리는 파란약과 빨간약을 섞은 보라약을 통해 기억을 제조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결합체가 되어 행복을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끔씩은 독립을 해서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는 것도 꽤나 신선하고도 짭짤한 인생일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기다리는 버스 앞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대신 잠깐 생각해보는 나의 미래는 소소하지만 완벽한 내러티브로 가득 차 있다. 부산대학교에 들어가서 학교가 끝나면 부대 앞 거리를 거닐며 놀다가, 방학이 되면 편의점 알바, 서브웨이 알바를 하며 하루 정도를 떼우고, 주말이면 놀이동산에 가 현실을 마음껏 도피하다가 평일이면 미니어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면서 혼자 만의 시간을 갖는다. 연애도 한 번 해보고, 영화관도 매달 한 번씩은 가면서 소소한 지출을 하다가, 대학교를 졸업하고나서는 투잡을 띠며 아나운서와 작가를 동시에 한다. 뒤처지지 않게 노래 연습도 중간중간 해주고, 피아노는 잊어버리지 않게 꼼꼼히 악보를 본다. 한 곡 정도는 외우는 것이 좋겠고 지금으로써는 All of me를 외우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 그저 그런 것 같지만 의외로 특별한 삶을 살며 친구들과의 관계도 다 같이 어울리며 웃을 수 있는 페르소나를 벗을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든다. 외모에는 관심을 여전히 쓰며 생기발랄한 현실을 완성한다. 매주 수요일에는 일주일 중 여유를 만끽하는 날로 정해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한다. 어느 멋진 달의 수요일은 목공으로 가득 채우고, 다음 달은 비누공예, 다음 달은 뜨개질, 그 다음 달은 물레와 같이 일 년을 나의 인생을 장식하기 위한 크리스마스에 달린 조명과 같이 꾸준히 밝혀주는 것이다. 글은 매일 쓰고, 필사도 기본으로 해준다. 너무 많이 하면 피곤하니 공부는 적당량하는 것이 좋다. 매일 거울을 보며 발음 연습을 하고, 어린 왕자 책 한 권을 통째로 암기한다. 친구들과의 선교는 두 달에 한 번 가령으로 하며 나에게는 쓸모 없는 연예인 포토 카드와 같은 예쁜 쓰레기들을 이로 인해 방출시킨다. 예전부터 기념일에는 행복하자는 것이 내가 5살때 세운 법칙이었음으로 20살이 되더라도 나만의 기념일들을 많이 많이 만들어 자주 입가에 미소를 띌 수 있게 한다. 대신 슬플 때는 울어도 된다. 사람은 한 번 씩 울게 되어있다. 오일과 향을 맡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많이 드니 자몽과 라벤더와 같은 상큼하고 향기로운 향수를 집에는 몇 개 정도 구입해놓는다. 내 방은 밝고 활기찬 노란색으로 꾸미며 책상 한 구석은 폼폼푸린 피규어들로 아담하고도 하찮게 꾸민다.... 이것이 나의 파란약 속 유토피아이다. 이상 나의 네러티브였다. 하찮고도 즐거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미리 희생해야하는 예방 접종을 맞으며 잠깐이나마 눈 감아 본 희망의 세계, 꿈과 행복의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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